임지호는 방랑식객으로 잘 알려졌다. 세계 고위급 인사들이 그의 음식을 먹고 기립박수를 보내는 유명 셰프이면서 전국 각지를 돌며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길에서 만난 이들을 위해 대가 없이 음식을 만든다. <밥정>은 임지호의 ‘방랑’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그의 방랑의 면모를 영화로 만든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연이 필요할 터.
시작은 제주의 해녀 할머니를 만나 청각을 얻어 음식을 만들어주는 임지호의 모습이다.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아무리 험한 날씨라도 쉬는 법 없이 걷고 또 걸으며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만든다. 그 광경을 스크린으로 편하게 바라보는 관객에게는 좋은 볼거리이기는 해도 카메라가 바짝 붙어 포착한 임지호의 표정은 복잡한 데가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짓는 환한 웃음의 주름 한 편에 고행의 성격도 감지된다.
가벼운 차림새로 이동하는 듯해도 그가 등에 걸쳐 맨 가방 하나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듯하다. 지게를 들어준 게 고마워 임지호의 가방을 대신 맨 어르신은 무게가 만만치 않다고 우스개처럼 실토한다. 목적지 없이 떠도는 듯한 임지호의 방랑은 천성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무거운 ‘사연’의 짐을 부러 이끌어 이를 내려놓을 곳을 찾아 헤맨다는 인상이다.
임지호가 <밥정>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르신, 그중에서도 할머니, 임지호에게는 어머니 뻘이다. 임지호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이다.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가 있다. 그의 방랑은, 아니 그의 방황은 낳아준 어머니를 찾겠다고 집을 뛰쳐나온 12살 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느라 마음으로 임지호를 낳아준 어머니와 내외하게 됐고 임종도 지키지 못해 그게 한(恨)으로 남았다.
임지호의 표현에 따르면, 눈물값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돈을 주지 않아도 음식을 만들었고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돈은 필요 없었다. 그게 다 어머니에게 못다 한 효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부채감에서 비롯된 임지호의 삶의 이유였다. 길러준 어머님을 향한, 또한 만나지 못한 생모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을 채우기 위한 여행, 방랑, 그리고 밥을 통한 정(情) 나눔의 여정.
<밥정>에서 임지호가 특히 더 ‘밥정’을 표현하는 대상은 지리산의 노부부다. 꽃과 풀이 음식의 재료가 되고 돌과 나뭇가지가 음식을 꾸미는 접시가 되는 임지호에게 우연히 만나는 모든 인연은 다 소중하다. 세상의 모든 식재료가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이루듯 길에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 정을 통할 수 있는 인연이다. 부모님을, 어머님을 생각하게 하는 연세라면 임지호에게는 더욱 특별하다.
임지호의 사심 없는 배려에 웃음 짓고 또 울음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음식을 나누는 순간이면 상대에게 품고 있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때부터 우연은 인연이 되고 식구가 된다. 그 순간 임지호는 자유를 얻은 듯 편안해 보인다. 만남과 이별이 예정된 길 위에서 임지호는 음식으로 원을 그려 정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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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