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적나라한 변호사 이야기
정의의 대변자,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변호사도 좋지만 솔직히 제 깜냥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다만 남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해줬던, 나름 선량한 변호사 정도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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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조 1번지’라는, 몹시 거창하고 유난스러운 별칭을 가진 서초동. 365일 우울하고 시끌벅적한 이곳에 의뢰인들과 매일 지지고 볶고 옥신각신하는 한 남자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멋지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지는 변호사들의 일과 삶, 하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이 땅의 변호사 중 하찮은 1인으로서 냉혹한 바닥의 생존 경쟁에 치여 살다 보니 어느새 원활한 생계유지가 인생 제1 목표이자 제1 관심사가 되어버린 그의 존재는 먼지같이 가볍고도 하찮기만 하다. 『오늘도 쾌변』은 ‘오늘도 별 탈 없이 수습해서 다행이야’를 되뇌며 나름의 유쾌함과 해학으로 매일을 ‘존버’하는, 그저 그런 변호사의 파란만장한 일상과 단상을 담은 에세이다. 오늘도 마법 같은 정신 승리로 꽉 막힌 기분을 뻥 뚫으며 서초동으로 출근한, 박준형 저자를 만났다. 



‘변호사가 이렇게 글을 잘 쓰면 작가들은 어쩌냐’는 김민섭 작가님의 추천사처럼, 정말 유쾌하게 술술 읽혔어요. 언제부터,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굉장히 바쁘게 돌아갈 것 같은 변호사의 삶 안에서 이렇게 일상과 단상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매일 이 법원, 저 법원 기웃거리며 재판 다니는 생활을 하다 보니, 다 늦은 밤 야근을 핑계로 혼자 멀뚱히 사무실에 앉아 잡생각이나 하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 별 탈 없이 넘겼는데, 스스로에게 무언가 재미난 보상 한 가지는 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온라인 세상을 헤집다 우연히 ‘브런치’라는 곳을 발견했지요. 그 속에서 다른 분들이 쓴 글도 읽어 보고, 또 하잘것없지만 제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배출하기도 하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꼈던 것이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학창 시절에도 가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절반가량이 장난인 글을 썼지만 본격적으로 연재 형식을 취한 적은 없고요.

많은 분들이 ‘변호사’라 하면 항상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원칙주의자를 떠올리시더군요. 그래서인지 변호사가 쓴 글에 대해서도 어려운 용어 잔뜩 써가며 지식을 전달하는 내용, 혹은 영화 같은 에피소드 속 눈물콧물 쏙 빼놓는 감동 실화를 기대하고요. 하지만 어떻게 전부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꾀하며 거대 담론이나 던지고 살겠어요. 개중에는 병맛을 즐기고 하나 마나 한 잡담이나 던지는 인간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모아 책으로 펴내는 일은 솔직히 말해서 좀 힘들었습니다. 필명 뒤에 숨어 누구 눈치도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의 자유로움 대신 다양한 독자를 상대로 수준 미달인 글을 쭈뼛쭈뼛 내밀 때의 부담감이란 여간 버거운 게 아니더라고요. 기성 작가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절감하였습니다.

자칭 ‘생계형 변호사’로 본인을 소개하셨는데요. 그만큼 짠한 에피소드들이, 많은 직장인 독자들로 하여금 동병상련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기 전 일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셨다고요. 혹 어떤 일을 하셨는지, 살짝 들려주실 수 있나요?

사실 거의 모든 직장인은 ‘생계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 겁니다. 직장 생활의 이유를 물으면 ‘자아실현’ 같은 모범답안을 내놓는 이도 있겠지만, 그 저변에는 ‘생계유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전제가 깔려 있지 않을까요. 이런 사정은 저 역시 전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보통 생략하고 마는 수식어를 과감히 드러내서 필명을 지어봤습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은행에서 잠시 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도 특별한 장래 희망 하나 없이 살았고 은행원이 되겠다는 꿈 역시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졸업을 앞두고 너나없이 뛰어드는 취업 경쟁에 별수 없이 끼어서 이 회사 저 회사 가릴 것 없이 수십 군데쯤 입사지원서를 냈고, 정말 말 그대로 수십 군데쯤 떨어지다 간신히 시중 은행 한 곳에 취업을 하게 됐죠.

근무 기간이 지극히 짧아서, 딱히 기억날 만한 업무도 없습니다. 다만, 어느 날인가 신입행원끼리 모여서 모의 지폐를 100장씩 띠지로 묶는 연습, 계산기 자판 안 보고 두드리는 연습 같은 걸 하다가 동료들의 장래 포부를 들었는데, 저처럼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와서 시키는 거나 대충 하고 있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내색은 안 했지만 부끄러웠습니다. 멋진 금융인을 꿈꾸는 사람들 옆에서 그저 나는 민폐가 아닌가 싶었고, 이곳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얼마 못 가 퇴사하게 되었죠.

책에서 실제로 수임한 사건의 에피소드를 많이 이야기해주셨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잊지 못한 의뢰인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사망한 화학공장 생산직 근로자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거부당한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사인(死因)과 작업장 환경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이미 1심에서 그 증명에 실패해 패소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도무지 의욕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게다가 겨우 2년 차밖에 안됐지만 어쩐지 변호사라는 직업이 저와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갈팡질팡 번뇌만 쌓아가던 때라, 사건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미 절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분의 부인께서는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시더군요. 지레짐작만으로 전의를 상실해버린 변호사를 대신해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숱한 증거들을 모아오는 모습에 많은 걸 느꼈습니다. 사건은 결국 승소했습니다. 돌아가신 분께서는 가족들에게만 유산을 남긴 게 아니라, 철없고 의지박약이던 애송이 변호사에게도 큰 교훈을 남겨주신 셈이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비교적 초기에 변호사로서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던 일이라 아직도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잘 몰랐던 변호사들의 현실을 알게 해준 책이기도 해요. 독자 리뷰를 살펴보면 ‘적나라하다’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등 놀랍다는 반응인데요. 왠지 경직되고 보수적인 집단일 것 같은 변호사 사회에서, 이 책을 펴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걱정은 없으셨을까요? 주변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변호사 사회는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문화가 지배적이고, 선비 정신과 예의범절, 명분, 형식 같은 것들을 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멋대로 ‘실상은 이렇습니다!’ 하고 떠벌릴 경우 노골적으로 불쾌히 여기거나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반박하려 들 것 같아서, 솔직히 동종업계 사람들은 보지 않길 바라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단 출간되고 나니,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사무실 동료들을 비롯해 동종업계 사람들이 먼저 보고 한마디씩 평을 해주더군요. 글의 수준이나 내용의 부정확성, 무례함, 비매너 등을 지적당할까 봐 은근 걱정 많이 했는데, 의외로 마치 자기 얘기 같다며 깊이 공감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한편으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연배와 경력이 높으신 변호사님들은 또 다른 평가를 내리실지 모르겠으나, 아무쪼록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해주는 사람이 변호사 아니냐’고 묻는 의뢰인에게, 속으로나마 단호하게 “아닌데요”라고 하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변호사란 어떤 사람일까요? 혹은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으신지요.

물론 저도 안 되는 걸 되게 해주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요. 어떤 분들은 변호사도 판사나 검사처럼 무언가 강력한 권한 내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던데 실상 ‘변호사’라는 직업 그 자체만으로 갖게 되는 권한이나 권위는 거의 없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변호사는 차라리 될 만한 걸 빠르고 정확히 해주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예전에 어떤 선배가 “변호사는 남의 일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간단히 정의하신 적이 있는데, 무미건조해 보일지언정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대리인 혹은 조력자로서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도와주는 사람일 뿐인 거죠. 정의의 대변자,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변호사도 좋지만 솔직히 제 깜냥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다만 남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해줬던, 나름 선량한 변호사 정도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려 9년째 막내로, 변호사 생활을 계속하고 계세요. 이 정도면 은근 성실한 사람 아닌가 싶지만, 어디나 그렇듯 현타가 오고 회의감이 들었던 순간도 이 ‘서초동 바닥’에선 많으셨다고요. 

서초동은 대법원, 대검찰청을 위시해 이 나라 법조인의 태반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에서 가장 정의가 바로 선 곳이라 할 수도 없죠. 오히려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슈가 터질 때마다 서로 정반대의 정의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법대로’, ‘원칙대로’를 외치는 통에 비좁은 동네가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하곤 합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거국적인 이슈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개인적인 송사거리가 생겨 이 동네 변호사를 찾은 분들 역시 상당수는 ‘법대로 하자’를 최선이자 최고의 가치로 여기시더군요. 하지만 ‘법대로 하자’가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는 건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겠지만, 한 번쯤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봤으면 싶어요. ‘법대로 하자’는 전가의 보도 같은 게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며 어쩌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요.

마지막으로 『오늘도 쾌변』이 어떤 분들에게, 어떤 책으로 읽히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남겨주세요. 

어느 업종에 계시건 오늘도 생계를 위해 어금니 꼭 깨물고 하루를 버텨낸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슬쩍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보시는 분들과 저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일 거고, 앞으로도 어지간해서는 마주칠 일이 없을 테지만, 우리는 모두 생계형 직장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힘들었지만 부질없는 하루를 마감하고 퇴근하는 길에 문득 ‘나만 이렇게 사나’ 싶은 생각이 차오르고, 그래 봐야 마땅히 갈 데도 없으니 그저 동네 놀이터에 대충 주저앉아 투덜거리고 있을 때 생면부지의 직장인 하나가 똑같은 소릴 읊조리며 옆에서 투덜거린다면 어쩐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애잔한 동병상련이 피어오르지 않을까요.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주제에 감히 남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둘 생각도 없고, 따스한 감성 나눔 같은 거는 더욱 젬병이라 누굴 다독여주지도 못합니다. 다만, 손 번쩍 들고 ‘여기 오늘 하루 존버한 사람 추가요!’라고 외침으로써 생면부지의 동병상련이 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 박준형

1982년생, 낼모레 마흔이 되는 별 볼 일 없는 아재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특별한 꿈이나 장래 희망 없이 살았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 역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365일 시끌벅적한 서초동 주변을 9년째 맴돌며 이 법원 저 법원 기웃거리고 있다.

모태 아웃사이더인 데다가 주야장천 삽질에 바쁜지라, ‘정의를 바로 세우고 봉사와 희생 속에 고고하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 같은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원활한 생계유지가 인생 제1 목표이자 제1 관심사.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약속, 이루지도 못할 포부를 당

연한 것인 양 떠벌리며 허세 부리는 것도 못 한다. 다만 함께 지지고 볶고 옥신각신하던 의뢰인들이 조금이나마 만족을 얻길 바라고, 다시는 같은 송사로 나를 만나지 않길 바라는 소소한 희망이나 품고 살 뿐. 

수만 명에 달하는 이 땅의 변호사 중 하찮은 1인으로서 냉혹한 바닥의 생존 경쟁에 치여 살다 보니 이러쿵저러쿵 하고픈 이야기가 제법 쌓였고, “사실 사정은 이렇습니다”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다.

brunch.co.kr /@junpanic



오늘도 쾌변
오늘도 쾌변
박준형 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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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