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일어나 남편 도시락을 싼다. 남편은 부탁한 적 없지만, 내가 원하므로 싼다. 작은 통 안에 일용할 양식을 담는 것은 어느 면으로 따지고 보나 유의미하지만,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도시락은 그냥 귀여움 그 자체다. 식량이 든 작은 통이라니. 도시락 안에 음식을 담는 나도 귀엽고, 먹고 살겠다고 밥통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귀엽고, 혼자 책상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모습도 상상해보면 귀엽다. 그래서 도시락을 만드는 일은 기쁘다.
도시락을 싸고 남은 음식들로 둘이서 아점을 먹고 나면 남편은 느릿하게 설거지를 하고, 느릿느릿 씻고, 저렇게 느릴 수 있구나 싶은 속도로 출근을 한다. 느린 그가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고요한 집이 나만의 것이 된다. 조용한 집에 혼자 있으면 신이 나 차를 끓인다. 내가 가진 유일한 좋은 습관, 차. 차라면 BMW보다 TWG가 좋다. 속을 따뜻하게 데운 후 어제 받아온 책 한 권을 누워서 읽기 시작한다. 이럴 때 이 직업은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출퇴근의 자유도가 높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게 일에 포함 된다니. 이건 행운이다. 참고로 ‘인간이든 직업이든 가끔은 좋은 점도 생각해 주자‘는 올해의 목표다. 고요한 오후를 맨바닥에 누워 만끽하며 일본 소설을 읽었다. 바닥이 딱딱해서 등이 아파 불판 위 꽁치처럼 몇 번을 뒤척이다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한테 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물건이 생각난 것이다.
한 달 전 목돈이 들어왔다. ‘부모님아, 걱정 마십쇼. 딸도 돈이라는 것을 법니다‘ 의 의미로 뭐라도 거나하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하필 지금 집을 마련하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으고 있는 상황이라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기 장판처럼 따뜻하면서도 폭신하기까지 한 ’온열 토퍼‘ 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엄마는 낮에는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시지만, 밤에는 전기매트 위에서만 딱 붙어 지내신다. 좁고 딱딱한 전기매트는 엄마의 안식처, 엄마의 우주. 나 아니면 엄마의 우주는 계속 딱딱할 것 같았고, 내가 엄마의 우주를 포근하게 바꿔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당장 엄마에게 우리가 지금 따뜻하면서도 푹신하기까지 한 제품이 나오는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고, 내가 이 시대의 과학을 체험시켜 주겠노라 통보를 했다.
통보를 하고 보니 4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를 위해 40만 원은 결코 큰돈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큰돈이기도 하고 뭐랄까 40만 원의 생색이 안 나는 제품이 아닌가 하는 이과 출신다운 계산이 시작된 것이다. 차라리 돈을 좀 더 보태어 명품 지갑이나 백을 사주면 주변 사람들에게 돈 못 버는 영화감독 딸의 신분을 세탁할 수 있겠지만, 하필 내가 명품 쪽에 큰 욕망이 없어 지출 경비만큼의 보람이 잘 안 느껴진다. 어디 들고 나가 자랑거리도 되지 못하고 집에서만 사용하는 담요 같은 것이 이 정도 가격일 거라고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 고민만 하다가 치운 일이 한 달 전이었다. 생각이 실용과 허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큼 등산을 했으면 몸짱이라도 됐을 텐데, 엄한 시간만 까먹고 허언이나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입도 문제고, 나의 쪼잔함도 문제다.
엄마가 나를 키울 때 쓴 식비부터 교복값, 과외비, 학원비 등등 40만원 정도 할 것 같은 품목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고, 이 태세라면 하루 종일 끝도 없이 품목이 지나갈 것 같아서 얼른 책을 덮고, 맨바닥에 누운 채로 40만 원짜리 온열 토퍼를 주문했다. 자기 등이 배겨 봐야 엄마 등이 생각이 나는 이 참을 수 없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반성하며 얼른 결제를 하려는데 또 다시 손가락이 주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원래 딱딱한 바닥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실용적이고 생색도 낼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 그래. 차가 있었지! 어디 보자 차는 얼마인가. 아니 가격은 알겠는데, 왜 하필 내가 좋아하는 TWG가 BMW보다 안 유명한 것인가. 영화 취향뿐만 아니라 차 취향도 비주류라니. 지긋지긋한 비주류 취향!’
어떻게든 결제를 미루면서 이런 일기를 쓰고 있는 말만 할 줄 아는 말만 한 딸 같으니라고! 사실 내 몸집은 말보다도 작은데, 생각해보니 그게 이 문제의 메타포가 아닐까. 작은 사람. 심지어 나는 입이 작은데 이빨은 크다. 이빨만 큰 작은 사람이라니. 분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상은 메타포라고 그랬는데, 그분 소설가가 아니라 역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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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운(영화감독)
영화 <소공녀>, <페르소나> 등을 만들었다.
안암골호랑이
202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