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시대이고 감염의 시대다. 자가 격리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고 비대면이 주목받고 있는 요즘이다.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과 대면 접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지금,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크게 감각한 적이 있나 싶다. <#살아있다>는 코로나 시대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우리가 처한 상황의 절박함을 장르로 풀어낸 좀비물이다.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했는지 아침 늦은 시간에 일어난 준우(유아인)는 가족 모두가 외출한 집에 홀로 남는다. 소파에 철퍼덕, 습관처럼 리모컨을 손에 쥐고 딸깍 텔레비전을 켜니, 긴급 속보가 뜬다. 도시가 통제 불능에 빠졌다! 베란다 창문으로 아파트 바깥을 내다보니 사람이 사람을 공격한다. 물어뜯긴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 다시 살아나 제정신인 사람을 먹잇감 삼아 무섭게 뒤쫓는다.
걸음아 나 살려라~ 준우는 도망가고 싶어도 고립된 처지에 괜히 밖으로 나갔다가는 변을 당할 것만 같다.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지겠지 희망이 무색하게, 가족은 연락 없고 모든 통신은 끊기고 식량은 바닥나고 삶의 의지도 꺾인다. 그 순간, 건너편 아파트에서 날아든 누군가의 시그널. 살아남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던 유빈(박신혜)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준우를 보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해시태그’를 붙인 이 영화의 제목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를 전제한다. 그럼으로써 회복하려는 관계를 향한 욕망. 관계는 인간의 삶, 즉 사회를 이끄는 기본값이다. <#살아있다>와 같은 좀비물이 대세인 건 관계를 위협하는 수많은 변수 중에서 감염이 상수와 같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서다. 관계를 파괴하는 좀비의 창궐 앞에서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한 준우는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준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계 잇기다. 유빈이 레이저 포인트로 가상의 선을 연결하여 관계 잇기를 시도하는 것 또한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아서다. 준우에게 있어 유빈은, 유빈에게 있어 준우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의 요구에 ‘#살아있다’는 생존 증명으로 서로의 필요성에 화답하는 이 시대의 관계의 핵심인 셈이다.
인간에게 삶은 생존의 이야기다. 각자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살아있다>의 아파트 배경이 한국 사회의 예사로운 풍경이면서 동시에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천편일률의 구조에 인간 개별성은 거의 무(無)로 수렴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세대별로 천차만별의 사연과 속사정이 개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인간과 좀비를 구분하는 차이가 발생한다. 인간은 개인의 특징을 틀에 가두지 않고 개별성으로 산포하고 좀비는 집단을 이뤄 하나로 움직인다. 그 지점에서 좀비와는 차별되는 인간의 ‘이야기’가 생성된다. 좀비물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등장인물의 사연을 물고 뜯고 인간을 맛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좀비와는 다르게 기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묘사하는 데 있다.
<#살아있다>는 준우와 유빈이 통제 불능의 상황에 임하는 태도로 나름의 사연을 부여하고 있는데 자기 함정에 빠진 듯 모순적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듯한 준우와 각종 캠프 용품으로 집 안을 작은 요새로 꾸민 유빈을 대비시킨 설정이 기계적일 정도로 개성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 이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배경이 누락된 설정은 이 장르를 기능적으로 대하는 감독의 태도를 드러낸다.
시의적절한 좀비물이라고 의미 부여할 수 있겠지만, <#살아있다>는 <부산행>(2016) 이후 인기 장르로 부상한 좀비물의 유행에 편승한 듯한 인상이 더 강하다. 청춘남녀가 재난 상황에서 생존하려고 아파트와 같은 빌딩 숲을 거점 삼아 분투하는 설정은 <엑시트>(2019)의 여운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까지, ‘#잘_맞춤한 #그러나 #개성은_떨어지는’ 이 영화의 관객을 향한 흥행의 관계 잇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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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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