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원래 마법사 천지였다. 약한 사람을 위해 마법을 쓰는 게 미덕인 시대였다. 마법사들이 점점 사라진 건 편의를 위한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다. 불을 피우는 마법은 가스레인지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불빛은 전기가 대체하다 보니 마법사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공룡으로 전락했다. 마법과 함께 세상 신비로웠던 유니콘도 도시를 화려하게 밝히는 현란한 볼거리 앞에서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골칫덩이 신세가 되었다.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이하 <온워드>)은 현대 배경의 ‘픽사’ 판타지다. 판타지는 픽사의 특기다. 우리가 쉽게 상상하지 못한 세계를 첨단의 기술력으로 구현해 눈을 현혹하고 그 안에 가족애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불어넣어 감동의 연기를 지핀다. <코코>(2018)에서는 사후 세계를 삶과 연결해 화합의 축제를, <인사이드 아웃>(2017)에서는 머릿속 감정을 구체화하여 점점 멀어지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화해를 이끌어 공감대를 형성했다.
<온워드>에서는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의 중간계를 현대로 가져와 그 안에 각종 신화 캐릭터를 섞어 놓은 것 같다. 버섯 모양 지붕을 한 현대의 주택에 엘프가 살고 있고 고층 빌딩 사이로 난쟁이 요정과 트롤이 배회하며 유흥가 주변의 치안을 책임지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가 순찰을 맡아 돌아다닌다. 도시와 그리 멀지 않은 불모의 땅 지하에는 마법의 공간이 누군가의 모험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이안(톰 홀랜드 목소리 출연)과 발리(크리스 프렛)는 성격이 영 딴판인 엘프 형제다. 일찍 철이 든 동생 이안은 숫기가 없어 과보호하려 드는 형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철이 덜 든 형 발리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안을 생각해 아버지 역할까지 하려는데 쉽지 않다. 반응하지 않는 동생 덕에 늘 역효과를 낸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형제의 서로를 향한 사랑이 시험대에 오르는 사건이 벌어진다.
생전에 아버지가 맡겼다며 어머니는 이안의 생일에 마법 지팡이를 서프라이즈! 선물한다. 주문을 외우면 아버지가 살아나 24시간 동안 함께할 수 있다는데 이안이 재능이 있는지 마법이 통한다. 딱 절반만. 아버지를 소환하던 순간, 갑자기 마법이 효력을 잃으면서 몸의 반쪽, 하체만 남았다. 발리는 마법의 세계에 가면 아버지를 온전히 소환할 수 있는 주문을 찾을 수 있다며 반신반의하는 동생의 등을 떠밀어 모험에 나선다.
마법이 실생활에 하등 도움 안 되는 오락거리 정도로 치부되는 시대에 <온워드>는 걸맞지 않게(?) 마법이 지닌 가치의 복원에 나선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영상 통화하고 민간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마법의 지팡이가 웬 말이냐! 효율성이 초(初) 시대의 합리적인 역량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에 <온워드>는 마법이라는 기적의 가치로 보편의 감정이 지닌 힘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생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의 발달과 이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첨단의 도시화는 가족과 같은 집단의 효용을 파편화함으로써 개인으로 고립시켰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웃사이더 취급받으며 <온워드>의 세계로 치면, 이제는 잊힌 마법사나 환상성을 잃은 유니콘의 존재처럼 방치되거나 배제된 세상의 풍경으로 일종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어머니는 좀체 세상에 융화하지 못하는 이안이 걱정스럽다. 남들은 놀이로 대하는 마법의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발리는 유별난 행동으로 경찰에 쫓기는 처지가 된다. 결국, 이들 형제가 세상에 증명해야 하는 것은 기적이다. 마법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데 성공했지만, 남은 반쪽을 온전히 복원해야만 하는 상황을 기적과 결부한 <온워드>가 가닿는 최종 지점은 형제의 서로를 향한 사랑이다.
이안은 엉뚱한 형이 아버지 역할을 하려 드는 게 못 미덥고, 발리는 형의 마음과 노력을 믿어주지 않는 이안이 야속하다. 마법을 행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할 수 있다 믿어야 한다. <온워드>에서 형제애는 마법의 가치다. 동생이 형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형이 동생의 믿음을 얻는다면 마법이 힘을 잃은 시대에, 이들을 경계 밖으로 내몬 세상에 기적을 행하는 일도 어렵지 만은 않을 거다. 마법과 판타지가 현실에서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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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