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명의 상담자들이 동일한 불만을 토로했다. 가깝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고민을 고백했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건 누구나 그래” 혹은 “나도 똑같은 일을 겪었어.” 상담자들은 그런 말을 듣고 나서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되물어 보았다. 혹시 다른 사람이 본인에게 그런 고백을 했을 땐 어떤 말을 해주었었냐고. 그러자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자기도 비슷한 말을 해주었던 것 같다고 했다. “너무 고민하지 마, 너만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로 힘들어.”
내 얘기를 할 때와 다른 사람 얘기를 들을 때 입장이 다른 것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원래의 입장은 그리 다르지 않다. 내 어려움을 타인에게 말하는 건 그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는 고통스러운 일을 혼자 겪어야 할 때다. 혼자 감당하고 혼자 해결해야 하는 고통. 어려움에 외로움이 더해지면 그만큼 가혹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통 자체는 같이 겪을 수 없더라도 그것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나의 고통을 나만의 고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 이야기를 듣는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내게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그 사람 혼자 부둥켜안고 있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나누어 갖고자 한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래.” 네 고통은 나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고통이니 너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말한 사람과 말을 들은 사람이 동일한 입장으로 마음이 통한 것인데 왜 서운한 마음이 들까?
내 고통을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힘들다고 하고 다들 그렇다고 하면서 내 고통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 표현이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표현들이 응답으로 돌아와도 서운함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예문은 꽤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래, 네가 정말 힘들겠다”라고 해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알겠어’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너는 그냥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또 “그렇게 힘들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라고 해결책을 제시해도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라고 뛰어들어도 ‘내 문제를 네가 어떻게 해결하겠어’로 결론이 난다. 요컨대 상담자들의 말은 내 고통을 나누고자 타인에게 상의한다고 해도 결국 제대로 이해받기는 어렵고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사회, 같은 환경, 같은 조건들 속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여도 각각의 개인 한 사람은 오직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통해 독특하고 고유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고유한 고통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두 사람이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각자는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일을 겪기 때문이다.
“즉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의 괴로움의 성질과 정도라는 것이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략)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에서 주인공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각자의 고통을 외롭게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편으론 그렇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란 것이다
『인간 실격』의 화자는 연이어 바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략)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 가족에 대해서조차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고, 그저 두렵고 거북해서 그 어색함을 못 이긴 나머지 일찍부터 숙달된 익살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즉 저는 어느 틈에 단 한마디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진실을 나누며 살아가진 못했지만 그 대신 익살이라는 또 다른 대화의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면서 관계를 이어나갔다. 다시 말해 이해받지는 못했지만, 고통을 외롭게 끌어안고 살아가지는 않을 수 있었다. 풀리지 않는 자신만의 큰 고통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겪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고 평가하면서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가 그 증거다.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1년 동안의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임레 케르테스는 이후 자신의 경험을 자전적인 소설로 남긴다. 그의 소설 『운명』마지막 부분은 전쟁이 끝나면서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소년이 고향의 이웃 노인들과 나누는 대화를 보여준다. 이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끔찍한 일이라거나 지옥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해하려고 하는 노인들에게 소년은 자신이 겪은 건 그런 것이 아니라며 ‘시간’과 ‘단계’에 대해 설명한다. 노인들과 소년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만 상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내가 그들에게 계속 설명하려 했다. “그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그들이 물었다. 그들은 이미 인내심을 잃은 듯했다. “단계들에 대해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대답했다. 나 역시 점점 화가 치밀었다.“
노인들은 소년이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소년이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났다는 사실이다. 소년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금, 여기 현실 속의 노인들’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경험 속에 함몰된 채로 있지 않고, 그 노인들의 몰이해에 대해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한다. “해봐야 소용없는 말”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듣는 노인들에게 아우슈비츠를 회상하고 정리해서 설명했다. 요컨대 더 이상 힘겨운 경험 속에 빠져 있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대상으로 삼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이다.
상담자들의 불평으로 돌아가 보자. 그들이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이야기한 후에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을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면 상담자들은 상담 시간에 자신의 고통에 관해 이야기했어야 했다. 자신이 고통에 빠져 얼마나 괴로운지, 그리고 그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하지만 그들은 그 대신 자신이 고민을 나눈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서운했다고 하면서 왜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는지, 왜 자신을 더 이해해주지 못하는지를 불평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이 남들이 이해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면서 설명하기도 했다. 자기 자신과 남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다고 하면서. 달라진 것은 이것이다. 상담자들의 말처럼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아니, 아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각자의 경험, 각자의 고통은 특별하고 고유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몰이해가 아무 결과도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담자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 속에 빠진 채로 괴로움과 싸우기를 중단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처럼 고통을 고백하지 않아도, 『운명』의 주인공처럼 고통을 이해받지 못해도 우리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자신의 고통에 홀로 짓눌러 살아가지 않는 방법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달라지는 것이 생긴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의 태도다. 우리가 그것을 고마워하지 않고 불평하는 것은 오해 때문이다. 그건 애초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했던 목적에 대한 오해다. 내 이야기의 목적은 내 말을 듣는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바꾸고 싶었던 건 바로 고통에 빠진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후 그 목적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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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련(정신분석학 박사)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에서 정신분석 임상을 실천하고 있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썼고,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