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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련의 엇갈린 관계] 엄마와 딸 사이, 어떤 파국적인 관계에 대하여

<월간 채널예스>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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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현실 속에서 ‘혹시 우리 사회가 엄마를 너무 엄마로서만 살도록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한 여자가 엄마가 된 후 엄마 이외의 여자로서의 다른 삶을 남길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2020.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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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레비(Alexandre Levy)라는 정신분석가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서른 살, 마리아의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청소년기에 있었던 그녀 인생의 결정적인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늦은 귀가로 혼나던 중 엄마에게 ‘더러운 화냥년’이라는 욕을 들은 것이다. 그때 마리아는 자기가 추락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타락해서 버려진 느낌. 그때까지 마리아는 엄마가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고 둘은 더없이 친밀한 모녀였다. 그런 엄마가 자신을 더럽다고 했다. ‘내가 더러운가?’, ‘내가 즐거운 게 더러운가?’ 마리아는 계속 질문했고, 결국 자신은 즐길 자격이 없다,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여기게 되었다. 엄마와 딸이 이루었던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관계는 엄마의 욕설로 산산 조각나고, 딸은 세상 밖으로 ‘쓰레기처럼 버려졌다(마리아의 표현).’

 

엄마와 딸의 관계는 특별하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도 심한 애착이 생길 수 있지만, 서로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가 생기고, 엄마가 아들에 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딸은 다르다. ‘나는 너를 다 알아’라는 입장인 엄마들이 꽤 많다. 그런 생각은 자신과 딸 사이에는 외모, 성격, 환경, 유전자 등등 부모자식 간에 공유하는 것들 이외에도 같은 여자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데서 온다. ‘우리는 서로 같고, 나는 너를 다 알고 있어.’ 이렇게 딸을 자신의 일부처럼 여기고 바짝 밀착한 채 살아가는 엄마들이 있다.

 

일본의 사이토 다마키 박사는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는 어떤 문제를 초래할까요? 아주 다양한 패턴이 있습니다. 학대 관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 지나치게 간섭하는 관계, 일란성 모녀 관계 등등. 이 다양한 관계를 세세하게 분류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저는 굳이 그런 방법은 택하지 않겠습니다. 관계의 발현은 다양할지언정 그 본질은 비교적 심플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딸을 지배하는 어머니, 바로 이것이 모든 패턴의 공통점입니다.”라고 지적한다.

 

자신과 딸을 같은 존재로 여기는 엄마의 지배력은 사실 대부분 우리가 미덕으로 여기는 것들을 통해 키워지고 행사된다. 사랑하고 공감하고, 생각을 비롯한 여러 대상을 공유하는 것. 자식을 키우려면 엄마가 꼭 실행해야 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과도하지 않아야 하고, 어느 시기가 되면 중단되거나 약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엄마의 딸에 대한 지배력이 점점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이 통했다’, ‘서로 같은 것을 느꼈다’, ‘너와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함께 나누어 쓴다’. 이런 공감과 공유는 사람들을 연결해서 서로 의지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 서로 분리되기 어려운 융합으로 향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어린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아직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서로를 혼동하여 나를 지우고 남에게 완전히 의존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게다가 그 상대가 엄마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엄마의 세계다. 엄마가 주는 것, 엄마가 느끼는 것, 엄마가 생각하는 것을 아이는 그대로 수용하고 따른다. 그것이 엄마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존재 가치가 가장 먼저 정해지는 방법은 바로 엄마가 원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계속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것의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찾아 엄마의 삶과 분리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때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유독 갈등이 핵이 되는 부분은 바로 ‘여자로서 딸이 바라는 것’이다.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강화된 밀착 관계는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더 큰 파국을 일으키는 갈등으로 변질된다. ‘같은 여자’라는 공통분모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부권과 남성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것을 제외한다면 본질적인 답을 내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인간 문명의 테두리 안에서 여성성이라는 주제는 사회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적인 수준에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심연으로 남아있다. 특히 여자가 원하는 것, 여자가 욕망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다. 우리는 여자가 진짜 원하는 것, 한 명의 여자로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여자가 원하면 좋을 것, 원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에 대해 알고 있을 뿐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이 심연과도 같은 ‘여자가 원하는 것’의 문제가 놓여있다. 아이의 탄생과 생명의 유지는 엄마가 원하는 것 안에서 이루어진다. 엄마의 보살핌 안에서 자식들은 맨 처음 엄마가 원하는 것이 되고자 한다. 이것은 부모의 역할에 속하는 엄마가 원하는 것의 차원이다. 그런데 엄마와 딸의 관계에는 다른 한 가지가 덧붙여진다. 바로 여자인 딸에게 여자인 엄마가 바라는 것. 말하자면 ‘딸이 여자로서 원하는 것’에 대한 엄마의 개입이다. 이때 엄마가 ‘나와 딸은 같다’는 입장으로 딸에 대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딸이 여자로서 원하는 것을 통제하고 조정하게 된다. 


엄마가 원하는 것, 딸이 원하는 것, 딸이 원하기를 엄마가 원하는 것. 어느 때는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또 어느 때는 전혀 가늠할 수 없이 가려져 있는 그 원하는 것들의 한복판에 엄마와 딸의 몸과 마음이 서로 뒤엉켜 있다. 이 난해한 상황은 부성과 남성성이 대립하지 않고 수렴되는 것과 달리 모성과 여성성은 대립하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여자인 엄마가 원하는 것에는 조화롭게 하나로 묶일 수 없는, ‘엄마로서 원하는 것’과 ‘여자로서 원하는 것’이 양립해 있다. 문제는 ‘충실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억압된 ‘여자로서 원하는 것’이 자신의 일부와도 같은 딸을 통해 노출될 때, 엄마는 더이상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게 남아있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내적 갈등의 봉합이 터지면서 드러난 자신의 분열을 ‘자신과 딸의 문제’로 바꾸어버리면서 딸과의 갈등을 폭발시키기 때문이다. 

 

알렉상드르 레비가 소개한 마리아의 사례가 정확히 보여주는 바가 그것이다. 사춘기에 이른 마리아는 엄마가 원하는 것들만을 따르던 순종적인 딸의 모습에서 조금씩 일탈하기 시작한다. 사춘기의 본질적인 질문,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봉착하여 그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이때 마리아의 엄마가 택한 태도는 ‘여자가 되지 말고 계속 내 딸로 있으라는 것’이다. 사춘기에 이른 딸이 겪는 성숙한 여성으로서의 변화를 거역스러워하고 혐오하는 엄마들이 있다. 이를테면 극단적인 형태의 모성을 품고 있는, 100% 짜리 엄마다. 여자이기를 멈추고 온전히 엄마로서만 살아가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아이는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 주는 유일한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아이가 딸일 경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신 이루어주는 분신이기도 하다.

 

그런 분신이 자신이 정한 궤도에서 일탈하면 그때까지 주어졌던 자격과 가치가 사라져버린다. 소중했던 딸에게 ‘화냥년’이라는 독한 욕설을 내뱉은 그 순간만큼은 마리아가 느꼈던 감정 그대로 엄마에게 딸은 잘라내 버려야 할 한낱 더러운 대상이었다. 그 전까지는 완벽하게 하나였던 이상적인 모녀관계가 깨지면서 딸을 추락시킨 것이다. 

 

‘100%짜리 모성의 엄마’는, 지면상 다루지 못한 ‘100%짜리 여자인 엄마’와 더불어 모녀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극단적인 엄마의 모습이다. 이런 엄마의 형상들은 보통은 각 개인의 심리상태로부터 연유하여 만들어진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사적인 이유 이외에 사회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출현하는 일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모녀들의 삶에 마리아와 그녀의 엄마와의 관계가 감추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현실 속에서 ‘혹시 우리 사회가 엄마를 너무 엄마로서만 살도록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한 여자가 엄마가 된 후 엄마 이외의 여자로서의 다른 삶을 남길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딸에게 줄 수 있는 훌륭한 선물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아들 혹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되기도 하겠지요.” 사이토 다마키가 언급한 이 구절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엄마들이 많아지려면 우리가 어떤 길을 일구어나가야 할지 깊이 고민해보아야 하겠다.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사이토 다마키 저/김재원 역 | 꿈꾼문고
각종 임상 사례와 언론 보도 사례, 소녀 만화 등을 소재로 여성 특유의 신체 감각과 모성에 대한 강박을 정신분석학적으로 고찰하고, ‘어머니 죽이기’의 어려움을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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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수련(정신분석학 박사)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에서 정신분석 임상을 실천하고 있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썼고,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 등을 번역했다.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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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신체성을 매개로 한 엄마의 통제욕과 딸의 죄책감 엄마의 딸 지배는 정말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엄마 죽이기’는 왜 어려운 것일까 과도한 기대로 딸을 속박하는 엄마, 남자친구나 진로 선택에 개입하는 엄마……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어째서 딸은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일본의 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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