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寶石). 본질은 땅속에서 파낸 돌이지만, 그 귀중함에 따라 보석은 인류사마다 등장해 인간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를 식초에 타서 마셨다는 클레오파트라, 약혼반지로 만들어 ‘결혼반지=다이아몬드’라는 인식을 만든 최초의 다이아몬드 반지, 무굴 제국의 부흥과 쇠락을 함께 한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과 영국을 맞붙게 한 신대륙의 진주와 에메랄드, 보석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드는 연애시…. 『세계를 움직인 돌』은 고대 이집트의 끝자락부터 러시아 혁명까지 약 2천 년간 역사의 전환점에서 보석이 등장한 중요한 순간을 다룬다.
책을 쓴 윤성원 교수는 뉴욕의 GIA(미보석감정원)에서 공부한 것을 시작으로 주얼리 컨설턴트와 주얼리 칼럼니스트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보석학적 정보와 역사, 트렌드, 디자인, 마케팅 등 보석의 모든 분야를 다양하게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한양대학교 보석학 전공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보석업계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사람과 자연의 협업
『잇 주얼리』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등의 책을 써왔어요. 기존 책과 이번 『세계를 움직인 돌』이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잇 주얼리』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은 실용서였고,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는 역사 인문서였는데요. 이 책은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변이 넓으면서 깊이도 있는 책을 만들자는 각오로 뉴욕에서 한 달 동안 박물관을 다니면서 자료조사를 했어요.
도판이 많이 들어갔어요.
이전 책에도 주얼리 사진은 많이 넣은 편이에요. 보석 사진은 이제 저작권을 협의하는 게 익숙해져서 요청하기가 한결 수월했어요. 보석을 다룬 명화들은 저작권이 풀린 게 많이 있어서 더 쉬웠고요. 고를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책 후가공도 공을 들이셨더라고요.
편집자님이랑 영혼을 갈아넣은 책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어요. 자세히 보시면 꼼꼼하게 준비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보석마다 어울리는 그림을 찾는 과정은 어땠나요?
지난 십 년 동안 소더비 경매를 많이 나갔었어요. 특정 보석을 이야기할 때 어떤 그림을 예시로 들면 좋을지 그동안 미리 노트에 체크를 해뒀어요. 모자란 부분은 저작권을 가진 회사에 요청하기도 하고요.
‘돌’을 공부하면서 점점 디자인에 흥미를 갖게 됐고, 나중에는 재밌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요. 일반인 대상으로 보석을 알리고 싶은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보석의 매력에 빠져들어서 공부하다 보니 우리가 평소에 보석에 대한 편견이 강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보석이 사치품 중에서도 대표로 꼽히는 건 사실이지만, 과거의 보석을 파헤쳐 보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 역시도 몇 년씩 공부하면서 스스로 생각이 변하기도 했고요. 보석은 사람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존재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지구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게다가 보석은 사람들의 몸에 지닐 수 있잖아요. 사람들이 모으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 보석은 그 어떤 물질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특징과 매력이 있어요. 원시시대 사람들도 조개껍데기 등을 모아서 목에 걸기도 하고, 땅에서 나온 어떤 물건을 몸에 지님으로 자기의 소원을 이루려고 했었죠. 보석을 통해서 우리가 인류의 발자취까지 돌아보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게 됐는지 돌아보자는 취지였어요. 책 제목도 그래서 정했고요.
어릴 때 예쁜 돌을 보면 본능적으로 주워서 애지중지하죠. ‘예쁜 돌’을 좋아하는 DNA가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주워서 점점 다듬는 방법을 배웠어요. 주얼리는 어떻게 보면 사람과 자연의 협업이 아닐까요? 원석만으로는 장신구로 만들 수 없어요. 장인이 연마하고, 또 다른 금속을 입혀서 착용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거죠. 어떤 분들이 이 책이 또 하나의 미시 세계사 책이 아니냐 하시기도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패션은 시즌마다 변하지만, 주얼리는 패션보다 느리게 변화해요. 패션은 섬유가 삭으면 쓸 수 없지만, 보석은 몇백 년이 지나도 그 특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죠.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요.
오해가 쌓인 보석
서양에는 보석에 대한 일화와 역사가 잘 남아있지만, 동양의 보석 역사는 잘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요. 책에는 비취와 중국의 역사, 무굴, 중동 영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씀하신 대로 서유럽과 동유럽 중심의 책이긴 해요. 보석의 역사 자체가 서양에 치중되어 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동서양이 보석을 인식하는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쇄국 시기와 일본 강점기를 거치면서 보석을 누릴 여유가 없었던 영향이 강하죠. 주얼리 역사 자체가 서양 역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틀을 확 벗어나진 못했어요. 제가 나중에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석이 박힌 장신구가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요.
‘백의민족’이라는 말처럼, 한국에서는 색을 즐기는 문화가 적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억상 문화 때문에 만들고 파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도 있고요. 소수의 부유층만 누리다가 1970년대 이후에 잘살게 되면서 보석을 누리려고 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오해하게 된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보석은 일단 사기를 조심해야 하고, 사기일 수 있으니까 가격을 깎아야 한다는 인식이 먼저였죠. 조상에게서 계속 보석을 물려받아 온 문화였다면 보석에 감성적인 의미도 부여했을 테지만, 서양 문화가 갑자기 들어오면서 피해의식이 생기고, 나라에서도 사치품으로 보고 세금을 많이 물리기도 하죠.
유색 보석을 기피하는 문화도 있어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예전 빨강 파랑 초록 보석의 디자인이 너무 촌스러웠던 문제도 있을 거예요. 튀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성도 있고, 파티 문화가 아닌 상황에서 주얼리가 생겨도 자랑할 데가 없었잖아요. 그리고 유색 보석의 도매 가격은 다이아몬드만큼 뚜렷한 기준이 매겨져 있지 않아요. 미묘한 색 차이로, 원산지로 가격이 달라지죠. 일반 소비자가 보면 처리를 한 건지 아닌지 육안으로 보기 힘들어요. 오로지 전문 보석상만 해석하다 보니 오해가 많이 쌓였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떤가요?
최근에는 많이 바뀌고 있어요.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비싸진 않더라도 다양한 색 중 원하는 색의 보석을 사서 착용한다거나, 소셜미디어 문화를 통해 보여줄 곳이 생겨서 노출도 많이 하고요. 지난 5년 동안에만 해도 많이 변하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지금 20대~30대는 전 세대에 비해 가격과 브랜드를 덜 중시하고 나에게 맞는 걸 찾겠다는 의지가 강하죠. 모조 보석을 이용하는 층도 많고요.
자기 개성에 맞는 주얼리를 고르다 보니까 가격대가 다양해졌고, 모조 보석도 큰 시장을 이루고 있어요. 주얼리 시장 자체가 활성화되었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죠. 다양한 색의 보석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에 다양한 스톤이 유통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유색 보석은 외국보다 제한적이에요. 그렇지만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발달로 외국의 딜러와 직접 거래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그러다 보니 종류가 늘어난 것 같아요. 저는 긍정적으로 봐요. 하늘색, 분홍색, 무늬가 있는 보석 등 다양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자기와 어울리는지, 자신이 어떤 보석을 좋아하는지 20대 때 파악하면 나이가 들수록 더 고급스럽게 자기 개성을 나타내는 주얼리를 즐길 수 있게 될 거고요.
탄생석 마케팅이 유행했던 기억이 있어요. 1990년대 이후로 보석 마케팅도 활성화된 것 같아요.
15년 전쯤만 해도 보석업계 사람들이 탄생석에 주로 쓰이는 하늘색 보석이나 자주색 보석을 ‘잡석’이라고 표현했어요. 제 귀를 의심했었죠.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가 아닌 ‘semi-precious’를 잡석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잡’이라는 의미가 상당히 부정적이잖아요. 그 보석들도 다 땅속에서 우리 인류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어떻게 보면 지구의 장인 정신이 깃든 존재인데 이걸 자질구레하다고 일컫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사실 ‘semi-precious’라는 표현도 요즘에는 잘 안 씁니다. 귀하다고 부르는 기준이 이제는 달라졌다는 거죠. 탄생석은 결국 자기가 태어난 달을 상징하는 보석을 몸에 지니면 행운이 온다는 마케팅이잖아요. 마케팅인 건 다들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잖아요. 나와 관련이 있다고 믿으면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다이아몬드보다 가치가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보석은 무엇인가요?
블루 사파이어를 좋아해요. 그다음으로는 투르말린 중에 파라이바 투르말린을 좋아해요. 지역의 이름을 딴 보석인데, 형광을 띈 파란색이죠. 실제 착용하고 햇빛에 나가면 마치 제가 수영장 안에 햇빛이 내리비칠 때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시원하고 아름답고 청량감이 들어요. 시원한 색에서 주로 마음의 정화를 얻는 것 같아요.
감성으로 다가가야 한다
책에서 유대인이 운영하는 보석샵에 가서 무작정 부딪친 에피소드도 나와요. 대개 외부인에게는 잘 보여주려 하지 않을 텐데요.
뉴욕의 유대인 보석샵은 우리나라의 종로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지하부터 위층까지 이중 삼중 문으로 보안을 하는 건물이 늘어서 있고, 도매 업자와 커팅사, 세공사가 다 모여있죠. 보통은 도매를 하는데 가끔 소매도 하기 때문에 소매 고객이 왔다고 내쫓지는 않아요. 저는 갈 때마다 GIA 학생이라는 걸 밝히고 가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웠던 귀한 보석을 실제로 보기 위해 가기도 했고요.
유명 브랜드의 보석샵도 많이 참고하셨다고요.
5번가의 티파니 매장에서는 세팅된 주얼리의 형태를 본다거나, 47번가 다이아몬드 가에서는 다이아몬드 세팅을 보는 식이죠. 티파니나 백화점에 입점한 주얼리 브랜드는 이미 검증된 세련된 디자인이기 때문에 디자인이 되었을 때 보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수 있었고요. 세계적 경매장인 소더비나 크리스티도 많이 참고했어요. 경매장은 모두가 구매 가능한 사람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희소한 유물을 제외하고 몇억 대까지는 웬만하면 시착이 가능해요. ‘이걸 언제 껴보겠나?’ 하면서 다 시도해봤던 것 같아요. (웃음) 경매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오늘날 이런 책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제가 평생 다시 보지 못할 보석들을 경매에서 보면서 역사를 배웠거든요.
보석을 배우러 유학을 하러 갈 당시 동급생들은 대개 보석을 가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요. 아무 연고가 없었을 텐데, 어려움을 딛고 계속 보석을 공부하고 알리는 원동력이 있다면 뭘까요?
GIA도 원동력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아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이후 한국에 들어와서 보석 소비자를 경험하고, 디자인도 같이하게 되면서 전반적인 주얼리업계를 다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사업을 하면서도 사업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무언가 알리고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칼럼니스트로 진로를 틀었는데, 다양한 면을 경험한 이력을 보고 대학에서 불러주셔서 보석학 융합 수업도 하게 된 것 같아요.
강의에서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학교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강의를 많이 했는데요. 요즘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매니저 교육과 소비자 대상 강연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게, 방패와 창이거든요. 보석을 파는 사람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보석을 사는 사람을 가르쳐야 하죠. 그래도 특장점을 잘 살려서 팔 때는 어떤 포인트로 다가가야 하는지, 살 때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나름 차이를 두면서 진행하면서 보람을 느껴요. 없었던 분야를 새로 하는 거니까요.
보석학 대학원생을 가르칠 때와, 일반인 대상으로 가르칠 때 차이를 두는 게 있나요?
일반인은 최대한 쉬운 용어로 설명하고 있어요. 보석학과 학생들은 할 수 있는 한 깊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죠. 일반 소비자에게 강의하는 게 더 쉽진 않아요. 보석을 업으로 해야겠다거나, 관심이 많아서 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보석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에피소드를 섞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만큼 보석을 스토리로 풀어가는 데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예측이 많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보석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글로벌 차원에서 주얼리 시장이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어요. 특히 미국 시장에서 샵 자체를 열지 못해서 백화점은 거의 파산 상태예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온라인 쪽으로 바뀌는 추세는 확실할 거예요. 힘들다고 해서 사람들이 주얼리를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도 사람들은 보석을 찾아왔어요. 다만 구매하는 방법이나 경험하는 채널은 확실히 달라질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몇억짜리 보석이라 할지라도 결국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건 어떤 감성이거든요. 그게 주얼리의 특징이죠. 결국 소비자가 경험하는 체험으로 보석의 가치가 달라지는데, 비대면으로 보석을 알려야 한다면 남들이 다 아는 평범한 등급이나 경도 같은 정보로는 안 될 거예요. 사람들마다 특화된 스토리를 찾아내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사람들에게 위로도 되고, 힘을 주기도 해요.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것도 주얼리가 부피 대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요.
책을 쓰면서 바라는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책은 정말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초등학생 6학년 남학생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 나이대 분들도 열심히 읽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남녀노소 읽을 수 있는 책이길 바라요. 이 책을 통해서 보석을 사라고 하는 메시지는 전혀 아니에요. 그저 보석이 가진 편견을 깨고 보석을 가지고 토론하는 문화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세계사 속에서 보석이 어떻게 역할을 해왔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추천기사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cyprus
20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