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 말줄임표의 정서가 담긴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 톨콩이 ‘어쩔 줄 모르며’ 빠져든 책 『마르타 아르헤리치』 를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더글라스 케네디 저/조안 스파르 그림/조동섭 역 | 밝은세상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오로르’는 열한 살이고 언니 ‘에밀리’와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각자 애인이 있어요. 이들 네 사람은 에밀리, 오로르 자매와 소통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오로르는 자폐아예요. 자폐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고 하는데요. 오로르의 경우에는 말을 하지 않아요. 말을 하려고 하면 입술이 움직이지 않고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요. 오로르는 일반 학교에 다니지는 않고 ‘조지안느’ 선생님과 시간을 보냅니다. 선생님은 오로르가 말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동시에 태블릿 PC를 이용해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오로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지만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남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 실제로 타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데요.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오로르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르는 상대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에밀리의 생일을 맞아서 에밀리, 오로르, 엄마, 그리고 에밀리의 친구인 ‘루시’가 함께 놀러가게 되는데요. 오로르가 ‘괴물 나라’라고 부르는 그곳은 놀이공원으로 보여요. 놀이기구와 수영장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루시가 사라져요. 루시는 몸집이 조금 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있는데, 자신을 놀리는 나쁜 아이들의 무리와 수영장에서 마주쳐요. 그 아이들을 피해서 달아나다가 오로르 일행과 헤어지게 됩니다.
루시의 실종이 소설의 가장 큰 사건인데요. 그 과정에서 작가는 조금 달라 보이는 사람들을 계속 보여줍니다. 오로르는 자폐아이고, 루시는 과체중 소녀이고, 괴물 나라에는 콰지모토로 분장한 직원과 키가 2m 넘는 거인이 있어요. 그리고 이 놀이공원의 정원사는 한쪽 눈에 인공 안구를 장착하고 얼굴의 반에 흉터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예요. 이들은 ‘괴물’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외모를 이유로 억울하게 범죄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하는데요. 이 소설은 ‘다름’의 문제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단호박의 선택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정지돈 저/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은 짧은 소설집입니다. 정지돈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내가 싸우듯이』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 『야간 경비원의 일기』 가 있고 금정연 서평가와 같이 문학평론집 『문학의 기쁨』 을 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에세이 느낌의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되게 웃겨요. 왜 웃긴지 알 수 없는데 웃긴 지점이 있습니다. 그 에세이를 보면 금정연 서평가랑 오한기 소설가랑 굉장히 절친처럼 나와요. 매번 셋이 같이 돌아다니는데 세 사람이 말할 때 말줄임표가 되게 많아요. ‘그러나 우리는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하는 식인데 그 말줄임표가 희한하게 웃겨요(웃음). 이 소설집에도 그러한 정서 같은 것이 조금 드러납니다. 말줄임표로 쓰는 경우는 별로 없고요. 그 정서가 문장이나 이야기로 체화된 게 많이 보입니다.
작가님이 프롤로그에서 ‘써보지 않은 형식이라 부담스러웠는데 쓰다 보니 즐거워졌다’고 말하면서 ‘친밀한 사이에서 오간 실없지만 웃긴 대화 같은 그런 글을 생각하고 쓴 건 아닌데 쓰고 보니 그렇게 됐다’라고 쓰셨어요. G. K. 체스터턴의 말을 인용해서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다.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다 읽고 나면 ‘도대체 내가 무슨 소설을 읽었지?’ 싶은 기분이 들어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고,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괜히 실없이 웃겨요(웃음). 이 작품집을 읽어 보시면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남는 건 사실 없어요. 작품에 나오는 모든 영화와 감독들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실없이 웃깁니다. 웃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약간 웃기고 ‘이거 너무 재밌다!’가 아니라 ‘허허, 그렇군’ 이런 느낌이에요.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은 짤막짤막한 소설들로 채워져 있고요. 이 소설은 <월간 채널예스>에 연재되기도 했었습니다. 휴가철에 읽어도 좋을 소설집인데, 마감 앞두고 읽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약간 자신의 인생에 회의가 들고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 읽으면 ‘인생이란 마치 정지돈 작가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웃음), 재밌을 것 같습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마르타 아르헤리치』
올리비에 벨라미 저/이세진 역 | 현암사
기가 막히게 재밌는 책 한 권 가지고 왔습니다. 제목은 『마르타 아르헤리치』 ,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죠. 표지에 흑백 사진이 실려 있는데 짙은 눈썹과 눈썹 사이의 찌푸린 주름, 웃지 않는 입술, 뭔가 광의가 있는 눈빛 같은 게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책을 읽어 보면 이 사진에서 보이는 느낌이 마르타 아르헤리치라고 하는 예술가의 느낌과 참 닿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상반기에 가장 빠져들어서 읽었던 책이 『배움의 발견』이었거든요. 그 책만큼이나 어쩔 줄 모르게 빠져들어서 읽었던 책이었어요.
지금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70대이실 텐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시고 이미 10대 때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너무나 스타였기 때문에 평생을 스타 아니게 산 기간은 거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이 들어서 어떤 공연을 하는데, 그 공연을 앞두고 평생을 따라다닌 무대공포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열망하고 기다리는 무대이지만 직전에 취소한 적도 많아요.
처음 인트로에서도 유명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하는 공연을 앞두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아르헤리치가 무대 뒤에서 초조해하면서 ‘나는 이걸 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바도가 맑고 정다운 음성으로 대기실 문을 열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르띠따, 왜 두려워 해? 우리는 그저 이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할 건데’라고 달래주고, 아르헤리치는 겨우 손이 떨리지 않게 되고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20분간 기립박수를 치고 어떤 젊은이는 감격에 겨워서 이렇게 속삭이죠. ‘이 이상의 연주는 없어.’ 하지만 아르헤리치는 나중에 녹음본을 들어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흠, 조금 지나치게 기교를 부렸네’ 하고 이야기하고 다음 연주로 넘어갑니다. 인상적인 인트로였어요.
책의 목차를 보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빈, 함부르크, 베른, 뉴욕, 바르샤바 등등 지명으로 되어 있어요. 그 지명에 얽혀있는 아르헤리치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데 꼭 시간 순으로 되어 있는 건 아니고요. 빈에서 1930년대에 있었던 일, 60년대에 있었던 일, 70년대에 있었던 일을 묶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그래서 약간 들쑥날쑥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읽을거리로써도 너무 최상급이에요. 저는 사실 ‘클.알.못’입니다. 클래식을 그렇게 잘 알지 못해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이름과 스타일 정도만 알고 있었지 클래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너무 재밌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올리비에 벨라미라고 하는 프랑스의 클래식 기자 출신인데 팟캐스트 진행도 하고 클래식에 대해서 해설을 잘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해요. 이 책이 그렇게까지 두껍지 않은데, 제 생각에는 이걸 다른 사람이 썼으면 두 배 정도 두께가 됐을 것 같아요. 이 저자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이 거장, 이 위대한 예술가의 면면을 사람들에게 재밌고 깊은 곳에서부터의 본체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했구나 라는 게 느껴져요. 밀도가 엄청나고 너무 속도감 있게 잘 읽히는 데다가 명언이 속출해요. 너무 재밌습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