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는 ‘옆집 어린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인데요. 이 주제를 정하게 된 이유가 백희나 작가님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수상 소식이죠. 이 상은 작품 한 편에 주는 게 아니라 작가가 지금까지 어떻게 활동해왔는지 총체적으로 평가한 다음 주는 상이라고 해요.
프랑소와 엄: 정말 멋진 상이잖아요. 우리나라도 이런 멋진 상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상으로 작가들을 지지해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채널예스>에 백희나 작가님 인터뷰도 있으니까 함께 읽어주세요.
캘리: 그림책은 정말 훌륭한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림 한 편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값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가 있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마크 펫, 게리 루빈스타인 글 / 마크 펫 그림 / 노경실 역 | 두레아이들
금요일 아침입니다. 주인공 ‘베아트리체’가 여느 때와 같이 하루를 시작했는데요. 사실 이날은 특별한 금요일이에요. 저녁에 동네에서 진행하는 장기자랑 대회가 있는 날이거든요.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베아트리체는 장기자랑 대회에서 저글링으로 3년 연속 우승을 한 대단한 어린이고요. 모닝 루틴도 가지고 있는 어린이입니다. 마을 유명인사이지만 사람들은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잘 모릅니다. 그냥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라고 불러요.
학교에 간 베아트리체가 친구들과 빵을 만드는데요. 냉장고에서 달걀 4개를 가지고 오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수를 하려던 순간에 저글링 선수인 베아트리체는 달걀 4개를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받아냅니다. 실수를 하지 않았죠. 그런데 베아트리체는 실수할 뻔한 사건조차 너무 마음에 걸려서 종일 시무룩해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연못에서 스케이팅을 하자는 친구들의 제안도 거절하고요. 실수할까봐서요. 저녁에는 밥도 못 먹어요. 이따 장기자랑 공연에서 실수할까봐 그런 거예요. 그래도 베아트리체는 소금통, 물풍선, 험버트를 챙겨 공연 준비를 하고 학교 강당으로 갔고, 이제 저글링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소금통에서 나오는 가루가 흰색이 아니에요. 후춧가루였던 거죠! 그 바람에 햄스터 ‘험버트’가 엄청난 재채기를 하고, 제 재채기에 놀란 나머지 풍선을 터뜨리고 맙니다.
베아트리체는 험버트를 올려다보고, 험버트는 베아트리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흠뻑 젖은 험버트의 털에 찢어진 풍선 조각들이 잔뜩 묻어 있었어요. 베아트리체가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낄낄거리며 웃다가 결국 크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중략) 나중에는 다들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베아트리체도, 사람들도, 왜 웃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어요. 그날 밤, 베아트리체는 여느 때보다 훨씬 깊고 편안하게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베아트리체를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그냥 “베아트리체!”라고 부르죠. 정말 좋죠? 만약 처음부터 이름으로 베아트리체를 불러줬다면 그토록 강박적으로 모닝 루틴을 실행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이고, 실수하기 때문에 배운다는 가치를 공유하면 좋겠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두더지의 고민』
김상근 글그림 | 사계절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의 첫 그림책이에요. 『두더지의 소원』 도 아주 인기가 많거든요. 두 책 중 어느 책을 가져올까 고민하다가 어린이는 물론이고 성인이 봤을 때도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림책이라서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첫 장면에는 두더지가 정말 작게 그려져 있어요. 숲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데요. 눈이 펑펑 내리는 밤에 두더지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대요. 그 고민 때문에 머리 위로 눈이 쌓이는지도 모르죠. 주변에 있는 동물도 전혀 보지 못해요. 그렇게 걷다가 문득 머리에 눈이 쌓인 걸 발견합니다. 그 눈으로 작은 눈덩이를 만들면서 할머니가 해준 말을 떠올려요. “얘야, 고민이 있을 때는 말이지. 고민을 말하면서 눈덩이를 굴려보렴. 그러면 고민이 다 사라질 거야.” 두더지가 눈덩이를 굴리는데요. 그제야 고민이 등장합니다. 고민은 ‘난 왜 친구가 없을까’였어요.
눈덩이 속에 토끼가 들어가지만 두더지는 눈치 채지 못해요. 피리 부는 여우도 눈덩이 속으로 들어갔는데 몰라요. 고민 때문에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거죠. 또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는데도 냄새를 맡지 못하고 눈덩이를 굴려서 이번에는 멧돼지가 눈덩이에 들어갔어요. 눈덩이는 너무너무 커지고 두더지는 점점 작아집니다. 그때 “살려주세요!” 하고 희미한 소리가 들려와요. 두더지는 그제야 자신이 만든 눈덩이를 파고 들어갑니다. 보니까 까만 코와 뾰족 귀가 쑥 튀어나왔어요. 여우인 거죠.
“너 누구야?”
“난 피리 연주를 들려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커다란 눈덩이가 나타났어.”
두더지가 눈을 파고 들어갈 때마다 동물들이 계속 나타나요. 토끼도 나오고, 멧돼지도 있고, 개구리도 있어요. 동물들은 눈덩이를 함께 파나가고요. 드디어 눈덩이 밖으로 모두 나와서 봤더니 아침이었어요. 두더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다 혼자 있던 친구들이 만난 거예요. 그리고 이들은 말합니다. “우리 이제 뭐하고 놀까?” 두더지와 친구들은 이제서야 행복한 고민에 빠졌어요.
두더지가 몸을 움직였잖아요. 고민이 생겼을 때 그 고민에 빠지기보다 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했을 때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그림이 정말 따뜻하고 반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라 단순한 스토리 같지만 그림과 같이 보면 정말 좋은 그림책입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윤은주 글 / 이해정 그림 / 서한솔 감수 | 사계절
이 책의 부제가 ‘멋진 사람이 되는 법’인데요. 소녀는 이렇게 해야 한다, 소년은 이렇게 해야 한다, 보다 멋진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입니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같은 말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이 말은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죠. 이 책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을 의심해보라는 책이에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에게’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요. 그 다음 챕터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너희에게’예요.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어떤 가치를 강요 당하고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주기 때문에 이 책을 옆집 어린이가 읽는다면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레고가 우주비행사, 소방사 등은 남자 캐릭터만 있고, 여자 캐릭터는 없었대요. 샬럿이라는 친구가 편지를 써서 “신나고 재미있고 중요한 일을 하는 여자 인형들을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했는데요. 레고 회사가 여자 과학자 세트를 만들었고, 그 인형들은 불티 나게 팔려나갔죠. 어린이도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거예요. 또 여기서는 여자 아이들에게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하죠. 특히 아주 좋아하게 된 그림이 있는데요. 축구장인데, 입체예요.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여기서 남자 아이는 말합니다. “그냥 공이 차지네?” 여자 아이는 말합니다. “분하다. 올라갈 수가 없어.” 경사가 졌기 때문에 올라갈 수가 없는 거예요.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아. 반대로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이 아주 잘 보여. 밝고 크고 강한 편에 속해 있으면 어둡고 작고 약한 편이 어떤지 모르기 쉬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강한 편에 속해. 물론 남자가 날 때부터 강하기 때문이 아니야. 여자들을 계속 억눌러 왔기 때문이야.
이 책을 어른들이 읽고, 어린이에게 같이 읽어준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남자라서, 여자라서 같은 말이나 여자 직업과 남자 직업을 구분하는 말이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했고요. ‘다움’이라는 말로 행해지는 폭력들이 근절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
신연선
읽고 씁니다.
숲
2020.04.23
나무늘보
2020.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