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AMA Museum의 안네 프랑크 전시.
벽장의 모습을 한 문을 지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안네에게로 가는 경험이 아주 강렬했다.
길을 걷다 울컥했다. 난데없이 얼마 전 본 영상 하나가 생각 나서다.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 속에서 마스크가 없어 곤란해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그러다 생각은 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확장되어,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뭘 어째야 하지, 다른 누구도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그런 때에는 또 어째야 하지, 싶었고, 자꾸 그 누군가의 표정이며 몸짓이 떠올라서 감정이 복받쳤다.
책이든 영화든 뉴스든 왜 이런 일들에는 이렇게 빠르게 마음이 요동치는 걸까. 감정이 조금 가라앉자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드라마든 뭐든, 작정하고 울리려고 만들었네 뭐야 이거 할 때, 옆에서 어떤 사람은 같이 툴툴거리면서도 눈물 콧물 닦고 있지 않은가. 그게 나다.
나는 세상 차가운 무신경한 인간인데 왜 이러는 걸까. 과거에는 너는 너 나는 나, 니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너에게 발톱을 세우지는 않을 거야. 불필요하니까. 에너지 낭비라고. 하는 것이 내가 가진 기본 태도라고 생각했고, 스스로가 관계에 대해 상당히 담백한 편이라고 여긴 적도 있는데 가까운 사람의 직언을 듣고 깨달았다. 깔끔하고 보기 좋게 포장했을 뿐, 나는 내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신경하다는 것을. 나는 그런 사람인데 왜 이러지. 심지어는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의 일인데. 그리고 새삼 알게 된 것은 유독 상실 아픔 슬픔 등에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 누군가의 기쁨을 보면 덩달아 좋은 기분이 되긴 하지만 나의 기쁨으로까지 쉽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럼 나는 남의 불행에만 마음이 동하는 사람인가. 다른 이의 아픔에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다만 얄팍한 만족감을 얻고있는 것은 아닐까.
비탄에 잠긴 사람은 비탄에 잠긴 다른 이들을 아주 예민하게 알아본다. 그러고 싶지 않을 때조차도. 에밀리 디킨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 마주치는 모든 슬픔
분석의 눈으로 저울질하네.
그 슬픔들도 내 슬픔처럼 무거우려나.
아니면 더 가벼우려나.
슬픔에 빠진 다른 사람을 보면 예기치 않게 이미 겪은 일들이 모두 떠오를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은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슬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여되어 있을지 모르는 공감 능력을 얻는다. 공감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시대가 약화시키는 한 가지 본능을 회복시킨다.
우리는 자극은 과도하고 윤리는 힘을 잃은 문화 속에서 산다. … … 우리가 과학기술에 의지해서 순전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순전히 개인주의적으로 보내는 시간을 늘려가는 기세를 함께 생각해보라. 개인용 컴퓨터와 아이팟, 텔레비전과 취향에 맞게 직접 만든 웹사이트. 조지 해리슨이 노래한 것처럼 “하루 종일, 나는 나”다. 슬픔은 좋든 싫든,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 75-76쪽
자신에 대한 의심을 덜어내고 보면, 타인의 비극에 반응하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 슬픔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그것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키우고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뚜렷한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슬픔은 무의식 중에 아주 강한 인상으로 스스로에게 새겨진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슬픔도 그 나름의 이유와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있다.
어쩌면 슬픔은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라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사정에도 우리는 쉽게 우리 자신을 이입하고 또 어렵지 않게 개인의 슬픔을 꺼내어 보게 되며 그것으로 하나의 공통된 마음과 생각을 갖고 행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슬픔은 (단면적으로 떠오르는 그것의 이미지처럼)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중요하다지만 그렇기에 그런 내가 속한 ‘우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판단이 필요한 때에 슬픔 그리고 유사 고통과 상실, 거대한 벽 앞에 선 무력감 등은 마땅한 연대를 끌어낸다. 미약하나마 세상 모든 슬픈 이들에게 지지를 보낸다. 저요, 여기, 같이 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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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위안브라이언 셔프, 론 마라스코 공저/김설인 역 | 현암사
슬픔이 삶의 곳곳에서 벌어지며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밝힌다. 그리고 슬픔 자체를 주인공 삼아 여러 양상으로 표출되는 슬픔의 국면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스케치하고, 과잉되거나 부족하거나 왜곡되지 않게 기록한다.
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