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 “철학은 삶의 언어를 갖는 공부”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먹고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나를 괴롭히는 감각이 분명 있잖아요. 그러니까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삶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는 힘을 갖는 거죠.
글ㆍ사진 성소영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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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서 김겨울 작가와 함께하는 북클러버 3기가 시작되었다. 예스24의 오프라인 독서모임 서비스인 북클러버에서 김겨울 작가는 ‘소풍을 떠난 철학’이라는 주제로 3개월간 참가자들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순서로 김겨울 작가는 한상연 교수의 책 『철학을 삼킨 예술』 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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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클러버의 주제는 ‘소풍을 떠난 철학’입니다. 일부러 철학을 주제로 하지만, 철학사는 아닌 책 세 권을 골랐어요. 철학사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잖아요. 그리고 무척 어렵죠. 이런 책으로 독서모임을 시작하면 우리가 『수학의 정석』 에서 집합만 공부하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에 누가 살았는지만 보고 끝날 거 같은 거예요.(웃음) 그래서 철학을 다루되, 조금 더 실생활에 관련이 있거나 다른 장르와 연관된 응용편을 보실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오늘 다룰 책은  『철학을 삼킨 예술』 입니다. 분명 철학 사조나 예술 사조를 쭉 설명하는 책은 아닌데,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셨을 거예요. 오늘 저의 설명을 듣고, 추천해드리는 다른 책들을 읽어 나가시면 조금씩 내용이 보충될 거라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을 전부 다 이해하겠다는 마음보다는, 한 권당 하나의 생각을 해보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철학은 왜 오해를 받는가


오프라인 모임에 앞서 김겨울 작가는 참가자들에게 ‘설명은 쉬워야 하는가?’라는 사전질문을 던졌다. 수많은 학문 중에서도 특히 철학은 어렵고, 난해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김겨울 작가는 이러한 오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철학이라는 주제가 되게 근사해 보이고, 왠지 내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줄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하지만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철학 또한 들어가서 공부를 해보면 지지부진하고, 힘들고, 치열합니다. 그런데 왜 철학만 일종의 오해를 받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그것이 한국어로 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철학의 언어라는 것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아요. 그래서 ‘분명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고 쉬운 단어인데 왜 이렇게 이해가 안 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시간성’이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매일 시간이라는 단어를 쓰죠. 그런데 ‘시간성’을 이야기할 때의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같을까요? 완전히 다른 용어로 익숙한 단어를 쓰기 때문에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즉 우리가 쓰는 단어와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겉모습이 같더라도 그 의미는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겨울 작가는 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담긴 의미와 역사를 알면 철학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면 ‘힘’이라는 단어를 재정립하잖아요. ‘그 사람은 힘이 세’라는 말 속에서의 힘과 물리학에서 말하는 힘은 다르죠.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철학도 비슷한 거예요. 분명 같은 단어이지만, 철학 속에서는 그 단어가 좀 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철학사적으로 굉장히 많은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인 말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훨씬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되는 거죠. 누군가 ‘철학을 쉽게 설명하라’는 요구를 했을 때, 물론 쉽게 설명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에 필연적으로 전체의 내용을 아주 범박하게, 혹은 아주 다른 의미가 될 정도로 요약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철학은 너무 어렵게 말한다’는 오해는 철학의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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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김겨울 작가는 참가자들에게 왜 철학책을 읽고 싶었는지 물었다. 참가자들은 ‘좀 더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이공계 전공자로서 그동안 배운 학문과 다른 점에 매력을 느껴서’ 등 다양한 답을 들려주었다. 김겨울 작가는 강유원 박사가 책에 쓴 문장을 토대로 철학에 대한 갈증을 설명했다.

 

“우리가 ‘고전을 왜 읽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하죠. 그것에 대해 『인문 고전 강의』 의 강유원 박사는 책의 서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은 입이 무거운 스승이다’라면서, 고전을 가르칠 때 성경의 어느 구절을 떠올릴 때가 있다고 해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차려놓고 예수에게 드시길 권했는데, 예수가 말을 합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수군거려요. 그 양식이 뭘까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예수가 다시 말하길, “그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가 말한 양식은 음식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어떤 것이죠. 그 이야기를 하면서 강유원 박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고 더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태도로 고전을 읽어 나가기로 합시다’라며 책을 시작해요. 정말 그렇죠.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먹고사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나를 괴롭히는 감각이 분명 있잖아요. 그러니까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삶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는 힘을 갖는 거죠.”

 

나의 상황을 추상화시켜 더 높은 차원에서 내 삶을 바라보고,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은 철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힘이다. 단순히 철학사를 외우고 공부하는 것보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나의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를 얻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언어를 얻지 못한 경험이나 감각은 사유의 계기가 되지 못해요. 그래서 언어를 얻는 건 소중한 거예요.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것도 여성이 언어를 가지는 것이잖아요. 그 사람의 경험을 서술할 언어가 없을 때, 그는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우리는 공부를 통해 얻은 언어를 가지고 개별의 경험을 강렬하게 되살리고, 의미를 붙일 수 있어요. 혹은 각각 서로 다른 경험을 추상화 시켜볼 수 있죠. 이런 경험들을 보니 ‘나는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나아가 ‘나의 세대는, 주변 사람들은, 이 사회는, 국가는, 세계는, 인간은’ 이렇게 추상화 시켜보는 거예요. 이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고, 철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각이기도 해요. 이를 통해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아보자는 거죠. 나와 다른 사람의 세계 혹은 욕망은 어디에 있는지, 불편함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동기가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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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예술을 생각하다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라리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 『철학을 삼킨 예술』  들어가는 말 중.

 

『철학을 삼킨 예술』 은 예술 작품이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이야기한다.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예술품이 왜 나에게는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지, 나는 보지 못하고 그들은 볼 수 있었던 어떤 것은 무엇인지를 철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김겨울 작가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작가의 서술방식이 철학적 글쓰기의 일환임을 전했다.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철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런 이야기도 전해요. ‘실용적 목적, 먹고 사는 것에만 매몰되면 우리 삶은 도구가 되어버린다’고요.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나를 들여다보면 존재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거예요. 이런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철학을 공부할 팔자인 것입니다.(웃음) 책이 결코 술술 읽히거나 쉽게 이해되진 않으셨을 거예요. 이 작가는 하이데거를 공부한 분인데요. 만약 ‘나도 죽기 전에 철학자가 쓴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하이데거나 니체의 책을 열면, 이 책에 사용된 서술방식을 500배 정도 강화시킨 문장을 만나게 되실 거예요.(웃음) 그러니까 작가의 서술방식은 철학적 글쓰기 중의 하나이고요. 마지막에 추천드릴 책들을 함께 읽어 나가신다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뒤이어 ‘존재’와 ‘생성’, ‘정신’과 ‘물질’, ‘합리론’과 ‘경험론’ 등 철학에서 중요한 대립적 개념과 ‘시간성’ ‘존재자’ 등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서 말했듯,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참가자들은 사전에 『철학을 삼킨 예술』 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았던 단어의 의미를 질문하며, 혼자 책을 읽으며 느낀 빈틈을 촘촘히 채워나갔다.

 

“책에서 ‘존재’라는 말이 계속 등장하는데요. 이건 철학자들이 아주 많이 사용하는 단골 소재 중 하나예요. 철학에는 ‘존재론’이라는 게 있는데, 말 그대로 ‘있음’에 대한 철학입니다. 그런데 존재가 어째서 생성과 대립 관계가 될까요? 고대 그리스로 올라가 봅시다. 당시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가 있었어요.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철학자인데요. 즉 만물은 계속 생성하고 소멸한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은, 강물이 계속 변한다는 거죠. 세상은 운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고 했어요. 너무 당연한 말이죠?(웃음) “있는 것은 없을 수 없고,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식의 논리를 통해 존재라는 것만이 유일하게 영원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만물이 계속 변하느냐’, 아니면 ‘영원불멸한 무언가가 있느냐’는 서로 상반되는 입장인 거죠. 이 대립관계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무려 12세기까지 서양철학의 메인 이슈 중 하나가 됩니다.”

 

철학적 개념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한 뒤, 김겨울 작가는 『철학을 삼킨 예술』 에 담긴 의미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으로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하이데거 읽기』 『초기 그리스 철학』을 추천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책을 읽으며 떠오른 의문이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종이에 적고 토론했다. 김겨울 작가도 참가자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웠다”는 토로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예술과 철학의 관계를 생각하는 범위까지 번져가며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김겨울 작가의 북클러버 3기는 오는 2월과 3월에도 계속된다. 다가올 모임에서는 『식탁 위의 철학』『과학자의 철학노트』 를 함께 읽고 못다한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철학을 삼킨 예술한상연 저 | 동녘
예술과 예술 작품들을 다루며 이러한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우리는 예술을 보고 예술을 감상하지만 예술이 왜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그 순간 일어나는 순간적인 감정이겠지’ 하고 그 신기한 기분을 그냥 내버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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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