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간호사로 산다는 것
내일도 반복될 ‘애증’의 출근길 앞에서 스스로에게, 또 저마다의 길을 치열하게 걷고 있을 이들에게 몸으로 터득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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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기준 간호사 평균 연령은 28.7세, 전체 활동 간호사의 76.4%는 20대, 평균 재직기간은 6.2년이다. 입사 시기는 빠르지만 근속 연수는 매우 낮은 편이다. 경력자가 버티지 못하고 나간 자리를 신규 간호사로만 채우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누구나 경력이 쌓이기 전에 신규 시절을 거친다. 경험을 쌓고 요령을 터득해나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건 당연하지만, 유독 간호사에게는 그 시기가 혹독하다. 작은 실수 하나로도 환자 상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이다. 저자는 한국 간호사 평균 나이에 이 책을 썼다. 지금도 많은 간호사들이 혹독한 신규 시절을 견디지 못해 업계를 떠나고 있고, 그 역시 한 해에만 스무 명이 넘는 간호사들의 떠나는 뒷모습을 봐야 했다.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의 저자 이라윤 간호사는 ‘사회생활 5년 차’. 경력이 아주 많다곤 할 수 없지만 일을 막 시작한 단계도 아니다. 이제 손으로는 제법 능숙하게 루틴 일을 다루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직을 하느냐, 이민을 가느냐, 업계를 떠나느냐 깊이 고민하게 되는 시기다. 그는 지난 신규 시절을 돌아보며 간호사라는 직업을 미워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 못했을 거라고 고백한다. 하루하루 다양한 사연이 있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상황을 겪는 만큼 자신의 새로운 면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소득이 있다고 말한다. 이 일이 도저히 감당하기 벅차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다른 것에 휩쓸리듯 떠나지는 않겠다는 나름의 다짐으로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 내일도 반복될 ‘애증’의 출근길 앞에서 스스로에게, 또 저마다의 길을 치열하게 걷고 있을 이들에게 몸으로 터득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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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라는 제목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분들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말 같아요. 제목에 담은 의미가 궁금합니다.

 

저는 병원의 여러 부서 중에서도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 직장이 다른 직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입사하자마자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하는 게 ‘죽음’이라는 것인데요. 죽음 직전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들이 수시로 생기다보니 업무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어요. 특히 간호사 간의 위계질서는 ‘여자 군대’라 불릴 만큼 엄격하고요.

 

간호사들은 보통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4~25살의 나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린 나이에 경직된 환경에서 일하며 처절하게 무너지는 순간들을 경험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 극한의 상황도 반복해서 겪다보니 점점 무뎌졌습니다. 한번은 이렇게 누군가의 아픔과 죽음 앞에 무뎌진 스스로가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말이 ‘무너지지 말자. 그렇다고 무뎌지지도 말자’였습니다. 책 제목은 그렇게 탄생했는데, 이 말이 다른 일을 하는 분들에게도 공감이 된다면 좋겠어요.


작가님에게 ‘중환자실’이란 어떤 곳인가요? 중환자실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진 환자분들을 만나게 될 텐데,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중환자실은 제게 일터이자 삶과 죽음을 배우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사연을 만나다보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자연스레 저만의 가치관을 세우게 되었어요. 특히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일상적으로 깨닫게 되어요. 예를 들면 ‘내일은 장담할 수 없으니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 함께 숨쉬고 있는 것은 기적이다’ 같은 생각들이요.

 

이런 생각을 깊이 하게 해준 결정적인 환자가 있었습니다. 군대를 갓 제대한 젊은 남성분이었는데,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공이 높은 곳으로 넘어갔고 공을 들고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머리부터 추락해 중환자실로 실려왔어요. 뇌에 출혈이 많아 가망이 없었으나 가족의 부탁으로 수술까지 진행했습니다.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분은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렇게 비슷한 나이대의 환자를 보거나 평소 건강하다가 갑자기 임종을 맞이한 환자를 보면 마음이 특히 더 아픕니다.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니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자’라는 경각심을 또 한번 갖게 되고요.

 

책에서 간호사에게 맡겨지는 다양한 업무와 역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 쓰셨습니다. 말 그대로 병원의 ‘그물망’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나치게 많은 업무가 유독 간호사에게 집중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간호사가 되기 전에는, 간호사를 그저 ‘주사를 놓는 사람’이라고 인식했어요. 저 역시 TV에 흰색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간호사들을 보고 ‘백의의 천사’라는 단어를 떠올렸고요. 그런데 실제로 간호사가 되고 나서는, 주변에서 간호사 되고 싶다는 말을 하면 절대 하지 말라고 말려요. 그저 취업 잘된다는 생각만으로 병원에 입사한다면 대학에서 힘들게 공부한 것들이 다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고요. 그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곳이 병원입니다. 취업하고 끝이 아니라 일하면서도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간호사의 경우 의사처럼 전공분야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에 아주 방대하게 알아야 하고, 또 의사만큼이나 잘 알아야 합니다. 간호사가 잘 알아야 환자의 문제점이 바로 보이거든요.

 

그러면서도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잡무가 너무 많습니다. 병원에는 간호사만 있는 것도 아닌데도요. 점점 서로 조심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역할과 책임 들이 당연히 간호사만의 의무인 것처럼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환자와 24시간 붙어 있기도 하고, 그저 환자가 더 편해졌으면, 더 아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간호사들이 어쩔 수 없이 많은 일들을 떠맡아서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 이를 두고 ‘콩쥐 간호사’라 표현하기도 했어요.

 

많은 일화들이 간호사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의 이야기도 상당합니다. 환자와의 라포 형성 과정이나 보호자의 민원사건들을 상세히 기록해서 마치 중환자실에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격무에 시달리면 이런 일들을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을 텐데 꾸준히 기록해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루에도 수많은 죽음을 보고, 선배들로부터 ‘태움’을 겪고,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듣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것들이 무덤덤해졌어요. 상처받지 않으려고 몸을 최대한 웅크려 스스로를 보호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당장은 몰라도 그 순간순간이 전부 마음에 상처로 남더라고요.

 

돌보던 환자가 임종을 맞으면 사후 처치와 할 일들을 바쁘게 처리하다보니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그 잔상들이 하나하나 떠올라요. 꿈에도 종종 등장하고요. 그럴 때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괜찮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죽음이, 남은 가족들의 슬픔이 쉽게 지워지지 않아요. 이런 감정들을 그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잊지 않고 싶어서, 또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꾸준히 기록했던 것 같아요. 살기 위해 무뎌진 듯해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영역도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여전히 많은 분들이 미디어에 묘사되는 모습만으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인식하고 있는 듯해요. 몸에 딱 달라붙는 짧은 흰색 유니폼을 입은 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동료 간호사나 의사와 여유롭게 수다를 떠는, 그런 이미지로요. 실상은 간호사들이 위급상황 속에서 뛰어다녀야 하니까 헐렁한 유니폼을 입어요. 물 한 모금 화장실 한 번도 큰맘 먹어야 가능해요. 제 책에서 이런 현실적인 간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이 일을 하면서 겪는 감정들을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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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규 시절을 거쳤으니 후배 간호사들도 꽤 많을 거 같아요. ‘프리셉티(신규 간호사)이기만 했을 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 어떤 게 있을까요? 또 신규 간호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신규 시절, 매일 울면서 퇴근하는 딸을 보고 부모님은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거야”라며 달래셨어요. 그러다 하루는 제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까지 나오자 같이 울면서 너무 힘들면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무조건 3년은 해보겠다는 오기로 버텼고, 5년이 된 지금까지 일하고 있지만요.

 

후배들이 예전의 저처럼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다가 결국 병원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혹시 자기를 태우는 선배가 있다면 인격이 그냥 그 정도인 사람이라고, 자기 얼굴에 침 뱉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부디 그것이 내 부족함과 잘못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기를 바라요. 물론 태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분위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사실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의 속도는 아주 느려요. 나쁜 전통이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당장은 스스로의 일터와 마음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적으로 지적 받는 부분만 마음에 새겼으면 해요. 폭력에 가까운 태움을 겪을 때는 반드시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 나서고, 내 일과 삶을 포기하지 말고 꼭 지켜냈으면 좋겠어요.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극한의 상황을 계속 마주하다보니 간호사에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평소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

 

신규 시절에는 집에 오면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멍하니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친구를 만나 병원 이야기가 아닌 일상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요즘에는 주로 책을 읽어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고, 독서를 통해 그 답을 모색하고 있어요. 이런 순간적인 집중이 업무 모드를 꺼버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직장생활에 지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어요. 류시화 선생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라는 책인데요. 이 책을 통해 ‘나다움’이 무엇인지, 마음이 복잡할 땐 어떤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문장만 소개할게요.

 

“필연적인 변화를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사과를 마지막 사과인 것처럼 최대한으로 음미하는 일이다.”

 

올해로 5년 차, 여러 고민이 드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딱 지금 시기에 펴낸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신규 시절은 지났어도 여전히 많은 혼란 속에서 일하고 있어요. 임상이 ‘간호업계의 중심’이라고들 하지만, 3교대로 굴러가는 시스템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많이 포기해야 합니다. 일이 숙달되어도 환자의 욕설이나 보호자의 무례한 요구들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한평생 신규 간호사이기만 했다면 일찍이 무너져버렸을 거예요. 다행히 모든 일은 지나가게 되어 있고, 일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다른 취미생활에 몰두해보면서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제 책을 통해 저마다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간호사가 아닌 분들은, 간호사가 이런 일들을 하고 이런 고민을 하며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닌다는 것을 알아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다보니 익숙함 속의 소중함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계속해서 다짐하게 됩니다. 하루는 그냥 아침에 해가 떴으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 앞에 주어진 순간순간이 모두 기적임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이라윤 저 | 문학동네
내일도 반복될 ‘애증’의 출근길 앞에서 스스로에게, 또 저마다의 길을 치열하게 걷고 있을 이들에게 몸으로 터득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누군가의 슬픔과 죽음 앞에 부디 무뎌지지 않기를,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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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