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오해받고 있다. ‘자존감이 높아야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지난 몇 년간 ‘자존감 높이는 방법’, ‘자존감이 낮은 이유’와 같은 이야기들이 TV, 책, 강연을 통해 쏟아졌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자존감에 주목하게 됐다는 정신의학전문의 전미경은 “많은 사람이 가짜 자존감의 함정에 빠져 있다”며 ‘가짜 자존감’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자존감을 오로지 트라우마의 문제로 접근하게 되면 그런 문제를 야기한 원인, 즉 타인과 과거에 집중하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50쪽)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는 부정적 감정과 과거의 트라우마에 집중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연대감을 바탕으로 자존감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이동할 것을 권한다. 천안에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운영 중인 전미경 저자는 직장인들을 위한 인문서 시리즈 『퇴근길 인문학 수업: 관계』(공저), 『퇴근길 인문학 수업: 멈춤』 (공저)를 출간하고, 아이들의 심리 문제를 다룬 『괜찮아 괜찮아』 『어린이 감정 사전』의 감수를 맡았다.
자존감은 규정되지 않은 단어
심리학자나 상담전문가가 아닌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자존감 이야기에요. 특별히 자존감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어요. 증상이 호전되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자존감 때문이더라고요.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않으니까 힘든 거죠.
자존감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근 몇 년간 자존감이 화두였어요. 이런 현상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데요.
맞아요. 자존감은 이미 익숙한 단어죠. 남발되기도 하고요. 제가 『퇴근길 인문학 수업: 관계』 (공저)에서도 자존감에 관해 썼는데요. 책을 소개하는 출판사 블로그 게시물에 어떤 분이 ‘개나 소나 다 자존감을 팔아먹는구나’라고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걸 알았어요.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자존감은 규정되지 않은 단어예요. 심리학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요. ‘정의’라는 단어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를 보면 학자마다 정의를 다르게 이야기하잖아요. 벤담의 공리주의, 칸트의 정언 명령,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론 등 아주 다양해요. 자존감도 마찬가지예요. 규정되지 않은 가치이기 때문에 자존감에 대한 내 생각이 곧 자존감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명확하면 편하니까요.
자존감이나 정의같이 규정되지 않은 단어들의 특징이 긍정적 개념이라는 거예요. 긍정적 개념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반면에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개념은 그렇지 않죠. 명확히 정의되어야 해요. 법 또는 사회문화적으로 문제 될 때가 많거든요.
이를 테면요?
『퇴근길 인문학 수업: 멈춤』 (공저)에서 이야기한 안락사나 동성애 같은 경우가 그런데요. 안락사는 법적, 의학적인 정의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어요. 동성애의 경우 아직 한국에서는 정서적으로 불일치하는 면이 있지만, 계속 논의 중이죠. 미국에서는 사회, 문화적인 합의가 있는 편이고요. 이렇게 문제가 될 만한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합의가 필요해요. 반면에 긍정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죠.
그럼 저자님께서 생각하는 자존감은 뭔가요?
자신의 효용과 가치에 대한 평가가 바로 자존감이에요. 자존감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총론적으로 자존감은 행복이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방향은 다를 수 있죠. 그래서 더 규정하기 어려운 단어죠.
자존감을 높이는 의외의 요소 ‘지성’과 ‘도덕성’
자존감이 왜 시대의 화두가 되었을까요?
신자본주의 열풍과 맞물렸다고 생각해요. 절대적 빈곤은 해소됐지만, 상대적 빈곤이 두드려지면서 사람들이 ‘나는 왜 행복하지 않나’ 생각하기 시작했고,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부각되지 않았나 싶어요. 혈연 가족 중심, 조직 중심 등 기존의 가치들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의 변화와 함께요.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자존감에서 해답을 찾은 건지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흔히 심리학을 ‘자본주의의 시녀’라고 하잖아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를 도외시하고 개인의 책임에만 집중하는 경향 때문인데요. 특히 노년 우울증 같은 경우가 그래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행복하지 않은 건 네 탓이야’, ‘네가 자존감이 낮아서야’라고 하면 안 되죠. 개인의 노력이나 역량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자존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가짜 자존감’을 추구한다고 하셨어요. 가짜 자존감의 특징이 뭔가요?
자존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과도한 칭찬이나 인정, 자신감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가짜 자존감이죠. 진짜 자존감은 본질에 대한 좋은 능력이에요. 이 능력은 ‘지성’, ‘긍정 정서’, ‘도덕성’, ‘자기 조절력’으로 기를 수 있고요. 이 네 가지 요소에 집중하고 갈고 닦으면 진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어요.
가짜 자존감과 진짜 자존감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면요?
나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봐야 해요. 기준이 타인이나 외부 환경에 있으면 안 돼요.
자존감을 높이는 요소로 ‘지성’을 꼽은 게 의외였어요.
그런 반응이 많은데요. 일단 지식과 지성을 구분해야 해요. IQ같이 타고난 머리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광범위하게는 지성이고요. 더 좁게 하면 이성, 더 좁히면 당시 상황에 대한 사고 분별력을 말해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하에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이요.
‘도덕성’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도 새로웠어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자존감 높은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도덕성이 높다는 거예요. 도덕성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긍정적 자기 개념을 쌓는 출발점이 되는데요.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기게 돼요. 이때 말하는 도덕성은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것 이상의 가치 지향적인 거고요.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비건을 지향하거나 기부를 하는 등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요. 실제로 임상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환자 중에 자신을 ‘문란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분이 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을 “쓰레기 같다”고 해요. 친구든 연인이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앞에서 떳떳하지 않다’라고도 하고요. ‘나는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탑재되는 거죠.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모델’이 되어주세요
‘현실의 자아’랑 ‘이상적 자아’의 차이가 클수록 자존감이 낮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차이를 줄일 수 있을까요?
장점에 집중해야 해요. 한국 사회는 못 하는 부분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아이가 수학을 못 한다 싶으면 즉시 수학 과외를 시키는 등 못 하는 부분을 잘하게 만드는 데 집중해요. 잘하는 걸 더 잘하게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잘하는 능력이 사장돼요.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이런 경향을 자주 느끼는데요. “성격이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모르겠대요. 장점도 잘 몰라요. 그런데 단점, 못하는 건 너무 잘 알아요. 이럴 때 보면 한국 사람들은 내가 못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를 평생 고민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자존감 키울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죠.
이상적 자아가 유독 비대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특징이 있나요?
자신에 대한 객관성이 없어요. 내 말만 옳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꼰대들이 그래요. 물론 비대할 수는 있죠. 내가 잘하는 영역에서는 조금 비대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에 맞는 노력을 해야 해요. 자존감을 키우는 요소로 ‘자기 조절력’을 꼽은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찾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요.
전혀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과거에 트라우마에만 집중하거나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그런 문제를 일으킨 원인, 즉 타인과 과거에만 집중하게 돼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거죠. 그보다 개인이 갖는 내면의 인지 패턴을 수정하고 성취와 몰입의 경험을 쌓는 데 더 집중해야 해요. 내 생각이 왜곡되어 있다는 걸 비춰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거울을 가져야 하고요. 외부 세계와 더 많이 소통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차원까지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내 자존이 떨어졌을 때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돌고 돌아 나의 자존을 높여 줄 수 있으니까요.
흔히 ‘자존감이 높다’, ‘낮다’라고 하는데 과연 자존감이 둘 중 하나고 정의될 수 있는 건가 싶어요. 높음과 낮음 사이에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당연하죠. 모든 사람은 자존감의 높음과 낮음을 왔다 갔다 해요. 만약에 내가 갑자기 직장을 잃고 돈도 떨어지고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자존감이 낮아지겠죠. 그런데 내로라하는 좋은 곳이 아니더라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인정받고 사랑하는 연인도 생긴다면 자존감이 올라갈 거고요. 엄밀히 말하면 세상에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 자존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어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든요.
유년기가 자존감을 결정한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유년기는 중요하죠.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자존감은 모든 시기에 여러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고요. 인간이 갖는 목적과 의지,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특정 시기, 특정인이 자존감을 결정한다고 보지 않고요. 그 이후에도 얼마든지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님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엄마가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면 돼요. 아이에게 모델이 되어 주는 거죠.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찾고 거기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아이의 자존감을 파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나의 자존감을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대승적으로 사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괜찮다’ 대신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퀴어플렌들리 확정 병원으로 선정되셨다고요. 배경이 궁금해요.
스스로 퀴어프랜들리 병원을 표방한 건 아니고요. 성 소수자 커뮤니티내에서 공유하는 병원 정보가 있는데 거기에 ‘퀴어프랜들리 확정 병원’으로 기재돼 있다고 들었어요.
선정된 비결이 뭘까요?
『퇴근길 인문학 수업: 멈춤』 (공저)이라는 책에 동성애에 관해 쓰면서 관련 책이나 논문을 많이 봤어요. 사실 정신과 의사들도 동성애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게 되면 평소 선입견이 드러날 수밖에 없죠. 노력하고 공부해야 해요. 그리고 제 병원이 퀴어프랜들리 병원이라는 사실보다 사람들이 정신과에서도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 즉 퀴어언프랜들리 병원이 그만큼 많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해요.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온전히 수용해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가는데 이게 안 된다는 말이니까요.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만의 시그니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죠. 시그니처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간단해요. ‘나답게 살자’라는 거예요. 타인을 존중하면서요. 누군가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색깔, 감성 같은 것들 있잖아요. 자기만의 뚜렷한 철학이나 가치관이 있는 사람이요. 이런 사람들이 시그니처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외양이나 재산 같은 게 아니라 내적인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시그니처를 가진 사람들이 매력적이에요. 시그니처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낙담할 필요는 없어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요. 여러 경험을 통해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알기 힘들어요.
‘자기 위로’(나는 괜찮다)를 ‘자기 판단’(나는 잘못되지 않았다)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좋았어요.
모욕적인 일을 겪으면 불쾌하잖아요. 하지만 그 감정을 느끼는 것과 ‘나는 모욕적인 일을 당할 만큼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건 달라요. 그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난 건지 저 사람은 왜 나한테 그렇게 행동했는지 나는 그 순간에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를 중심으로 사고하면 자존감이 훼손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감정을 살피는 일과 자존감을 분리하자는 거죠. ‘나는 괜찮다’라고 아무리 다독여도 훼손된 자존감은 회복되지 않아요. ‘괜찮다’는 감정의 문제잖아요. 그러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과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여있게 만들기도 하고요.
주의할 점은 없나요? 잘못하면 ‘아전인수’ 격의 태도를 갖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주변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책하는 걸 경계하라는 거죠. 또 한 가지, 실패의 경험을 과도하게 인식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어떤 일에서 실패하면 인생 자체가 실패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럴 때 필요한 게 ‘나는 괜찮다’가 아니라 ‘나는 또는 내 인생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자기 판단이에요.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할 때 쓰이는 개념이기도 한데요. 인지행동치료라고 과하고 왜곡된 인지 패턴을 교정하는 치료예요. 이런 치료의 핵심을 저는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한 문장으로 표현한 거고요.
자존감을 키우는 요소로 언급한 ‘지성’이 이때 꼭 필요하겠네요.
맞아요. 객관과 이성은 자존감을 키우는 데 아주 중요해요. 실제로 자존감이 낮은 분들은 이게 부족한 경우가 많고요. 단, ‘모든 게 잘될 거야’라는 낙관주의도 경계해야 해요. 개인의 노력과 의지가 아닌 외부의 운에 자신을 맡기는 무책임한 태도이니까요.
자존감이 왜 중요하냐는 물음에 답한다면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의 본질, 가치이고 행복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세상이 계속 변화잖아요. 산업구조부터 직업관, 가족관이 바뀌면서 기존이 가치들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되고요. 그뿐인가요? 빈부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어요. 과거의 가치들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행복하게 하려면 자존감을 지켜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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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전미경 저 | 지와인
아픈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한발씩 나아가게 하는 책.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고, 나아가 다른 이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여섯 가지 레슨이 시작된다.
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