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마음
개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단순하고 깊을 것이다. 
글ㆍ사진 박연준(시인)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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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고양이보다 더 이기적이다. 애타게 ‘바라는 게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양이는 집사를 향해 ‘이것 좀 해줄래?’ 하고 바라다가도, 반응이 영 시답지 않으면 토라지거나 무시하는 걸로 응징한다. 개는 그렇지 않다. 개는 애절하게, 한결같이, 줄기차게, 열렬히! 원하는 바를 드러낸다. ‘내가 그걸 바라거든? 제발 좀 이렇게 해줘. 혼자 두지 말고, 나, 나를, 나만을 사랑해주지 않을래?’ 물론 관계 집착은 동물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종의 성향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개는 고양이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에 더 집착하고, 매달린다.  

 

사랑할 때 고양이는 여러 겹의 외투를 입는다. 우회적으로 마음을 드러낸다. 슬쩍 몸을 부비고, 눈을 깜빡이고, ‘당신을 좋아해!’라고 암시한다. ‘비유와 상징’에 능한 고양이들은 어쩌면 ‘시’ 자체일지 모르겠다. 그들은 느슨함과 무심함을 포크와 나이프처럼 쓴다. ‘영원한 것? 그런 게 있을까? 그냥 지금을 생각해. 과거와 미래는 이곳에서 멀리 있잖니…’ 이런 식의 태도.


과거는 개의 얼굴에 지도를 그린다. 슬픈 얼굴은 슬픈 과거를 암시한다. 개는 ‘영원한 사랑’에 목을 맨다. 그런 게 없을지라도, 아니 없다는 게 밝혀진 뒤에도 ‘다른 영원’을 필요로 한다. 침울한 고양이보다 침울한 개가 많은 이유는, 개는 ‘깨진 영원’에 상처받는 종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목을 매는 개는 스스로를 위해 그러는 거다. 그러니 개 앞에서 충성심을 논하며 추켜세울 일이 아니다. 충성심, 그건 당신의 개가 드러내는 자기 사랑에 대한 믿음, 영원성, 나르시시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명한 ‘개’과 인간이다. 내 안의 ‘개’를 (도무지) 숨길 수가 없다. 점잔을 빼다가도 좋아하는 것 앞에 서면 사정없이 꼬리를 흔들어 들통 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얼굴 근처를 서성인다. 연신 혀를 내밀어 맛을 보고(키스가 아니다), 날름날름 핥고(진짜다), 물어뜯고, 상대의 심연에 다가가고 싶어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얼굴을 들여다본다. 먼 곳에서 그가 돌아오면 개처럼 펄쩍 뛰어, 반긴다. 나는 개들이 반가우면 왜 앞발을 들어 그의 몸에 올라타는지, 왜 꼬리를 흔드는 지 안다. 왜 먼 곳을 향해 하울링을 하는지, 왜 당신이 옆에 있어야 마음을 놓는지, 왜 그토록 산책을 좋아하는지 안다. 화가 나면 왜 사납게 송곳니를 드러내고 물어뜯으려 하는지 안다. 고양이처럼, 펀치를 날린 후 지켜볼 만한 마음의 ‘여력’이 개에겐 없다. 개는 감정의 보폭이 좁고, 당장에 화를 ‘집어던지는’ 일에 맹렬하다. 당신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봐, 생기는 ‘안달’, 이 때문에 개는 조바심을 태운다.  
 
당신은 개다운 기색을 잃어버린 개를 본 적 있을 거다. 상심에 빠진 개.


어떤 이유든 믿었던 영원성에 상처를 입거나 제 충직함을 바친 상대에게 배신을 당한 개는 시름시름 앓는다. 상심 때문에, 개는 죽을 수도 있다. 고양이는 쉽게 마음을 접을 수 있지만, 개는 자꾸 열리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그것을 끝끝내 유지한다. 개의 마음은 단심(丹心)이다. 사랑에 몸을 날리는 개들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고양이는 타자를 주시하고, 개는 자아(와 자기 주인)를 중시한다. 개는 당신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여유도, 능력도 없다.


언젠가 식당에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는 개를 본 적 있다. 사색에 잠긴 듯, 창밖 풍경에 빠진 개의 모습을 보고 의젓하다며 감탄했다. 식당에서 키우는 개라고 했다. 개의 옆과 뒤에 서서, 휘파람 소리까지 내며 불러보았지만 개는 내 쪽으로 눈길조차 안줬다. 개는 의자에 올라앉아 망부석이라도 된 듯 창밖을 보았다. 저렇게 몰입해서 밖을 보는 일이 개한테 가능한가, 신기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별안간 개가 펄쩍 뛰어 의자에서 내려오더니 문 앞으로 달려갔다. 번개처럼 빠른 행동이었다. 장을 보고 돌아온 주인의 기척을 알아챈 거다.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그 사람’이 들어오고, 격한 상봉이 이루어졌다. 주인은 주방으로 향하고, 개는 쫄래쫄래 따라갔다. 내겐 눈길조차 안 주고, 식당에 있는 누구에게도 볼 일 없다는 듯이, 개는 세상에 ‘단 하나의 존재’만 있다는 듯 굴었다.


개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단순하고 깊을 것이다. 가끔은 그게 슬퍼서 울고 싶다. 기다리는 개의 뒷모습보다 더 애절한 게 있을까? 기다림은 개에게서 배울 일이다.


“나는 종종 개를 보면 슬프다. 포인핸드 같은 곳에서 입양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의 불안하고 처량한 눈빛을 볼 때도 당연히 그렇지만, 가족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개조차도 잠깐 가게 앞에 묶여 혼자 남겨지면 출입문만 바라보며 시선을 못 떼는데, 나는 그런 개의 뒤통수를 볼 때도 슬퍼진다. 개는 왜 사람 따위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개의 중심은 제 안에 있지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사람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We don’t deserve dogs’라는 말처럼, 많은 경우 인간들은 개의 맹목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 김하나 ‘개의 슬픔’,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21쪽 중에서.


세상에 의뭉스러운 개는 없다. 두 개의 패를 쥔 채 상대를 속이는 개도 없다. 개는 오직 한 방향을 본다. 그게 전부다. 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김하나, 이슬아, 김금희, 최은영, 백수린 저 외 4명 | 문학동네
동물과 함께 살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는,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리고, 유기와 학대로부터 구조된 동물들의 삶에 관심을 촉구하고자 한다. 동물에 대한 깊은 시선과 아름다운 기억을 글로 담아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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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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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516

2022.07.20

박작가님의 평범한 글을 읽다보면 나 자신 역시 '특별 해진
방청객이자 여행자가 된 듯함을 느낍니다. 최근 몇몇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놓고 거절의 회신을 받는 가운데, 절실히 작아진듯한 나를 느끼며. . 위의 글에 공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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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19.11.17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개, 슬픔 -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함께 살았던 멍멍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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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