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묻는 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 연극 <왕복서간>
나는 어디로 간 적이, 없어. 한 번도.
글ㆍ사진 임수빈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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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낯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연극  <왕복서간>  은 십오 년 된 연인인 준이치와 마리코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그들의 평온했던 일상은 돌연 남태평양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가겠다는 준이치의 폭탄선언을 시작으로 깨지기 시작한다. 남태평양과 일본을 넘나들며 편지로 마음을 전하기 시작한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묵혀왔던 비밀을 하나 둘씩 꺼내기 시작한다. 작품은 같은 상황을 겪었던 두 사람의 다른 증언을 통해 십오 년 간 그들의 관계 속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극 중 마리코의 대사인 “전화나 메시지는 주고받을수록 당장 만나고 싶어지니까. 그건 만나고 싶을 때 바로 볼 수 있는 사이에서나 좋은 것 같아.”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요즘은 생각날 때 바로 바로 메시지를 보내고, 또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전화를 하는 시대이다 보니 긴 글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주고받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아날로그 감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서로의 편지를 읽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어렸을 때 꾹꾹 눌러쓰곤 했던 손 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 편지를 쓰던 설렘, 편지를 기다리던 설렘.  <왕복서간>  은 그런 아날로그 감성을 전달하는 동시에, 아날로그 감성 뒤에 가려져있던 미스터리한 기억들을 드러내며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밀을 밝히는 과정은 십오 년 전 중학생 시절의 준이치와 마리코, 현재의 준이치와 마리코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어렸을 적의 그들과 현재 그들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연극만의 쏠쏠한 매력이다. 거기에 오랜 시간 가장 가깝게 지냈던 연인들이 서로의 비밀에 접근하는 방식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결국은 가장 낯선 사람이 되고 마는 아이러니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준이치가 남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떠나고 싶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마리코가 모르는 그들 사이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이 드러나는 과정은 서스펜스 그 자체이자,  <왕복서간>  을 단순한 로맨스 장르에서 뛰어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숨겨져 있던 비밀에 대해 더 언급하는 것은 작품의 스포일러기에 조심스럽지만, 이 작품은 그 과정 자체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진 연인들의 혼란, 그 안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감정. 작품은 과거의 추적을 통해 두 사람 각각의 존재에 대해 낱낱이 밝혀나가면서도, 관객들이 두 인물 모두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여지를 남겨준다.

 

이따금 관객들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그저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 말고, 비현실적이지만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낭만적인 이야기를 꿈꾸곤 한다.  <왕복서간>  은 관객들이 꿈꾸는 판타지의 일부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접목시켜 흥미를 유발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함께 해서 서로의 소중함을 조금씩 놓치고 있지만, 존재만으로 고마운 연인과 함께 보면 좋은 연극이다. 연극 <왕복서간>  은 2019년 11월 17일 일요일까지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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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