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트레이너들이 꼭 봐야 할 책
여성 회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트레이너들. 운동에 관심은 있는데 불쾌한 경험을 할까 두려웠던 여성들. '여자라면 평생 다이어트 하는 거'라고 굳게 믿는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
글ㆍ사진 프랑소와 엄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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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며 숨가쁘게 읽은 책은 오랜만이었다. 작년 여름, 작정하고 운동을 해보려고 PT 상담을 했던 날, 트레이너에게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을 책 제목으로 맞닥뜨릴 줄이야.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는 여성들을 위한 생활 미디어 <핀치>의 기자인 신한슬이 쓴 ‘자기만족 운동 에세이’다. 저자는 사회초년생이었던 신입 기자 시절, 오로지 건강을 위해 자발적 ‘PT 푸어’가 됐다. 하지만 헬스장에서 여성혐오적 장면들을 마주한 후, 성차별적인 헬스장 문화를 꼬집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핀치>에서 ‘트레이너와 나’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글들이 눈밝은 편집자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나는 운동으로 내 몸의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일상을 더 잘 살아갈 힘을 기른다”고 말하는 신한슬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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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었다. 좌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책 제목을 힐끗 쳐다보더라. 책 제목은 어떻게 정했나?

 

사실 책 제목 정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출판사에서 문장형 제목으로 짓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먼저 제안을 주셨다.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는 PT를 받을 당시, 내가 트레이너에게 여러 번 반복했던 말이다. “살려고 운동합니다”라는 제목도 최종 후보 중 하나였다.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운동하는 거라고. ‘살 빼려고’에서 ‘빼’라는 글자에 ‘돼지 꼬리’ 표시를 하는 안이었는데, 디자인적으로 너무 복잡해서 바뀐 게 아닐까 싶다.

 

표지에 달린 타이틀도 인상적이었다. ‘자기만족 운동 에세이’라니. 이 책도 만족하고 있나?


멋진 표지, 멋진 제목으로 내 책이 나온 것 자체로 매우 만족스럽다.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PT 푸어에서 벗어난 후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가끔 수업에 지각할 때도 '결석은 안 했으니 잘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편이지만, 아쉽게도 최근에 자기만족에서 멀어졌다. 추석 때 작은 교통사고를 당해서 3주 째 수영 강습을 못 가고 있는 중이다.

 

표지에 운동하는 여성의 모습이 일러스트로 실렸다. 당신은 닮았나?


전혀 닮지 않았다! 이 캐릭터가 보통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나와 닮은 것 같기도,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얼굴이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나는 다크 서클이 더 짙다. 특히 운동할 때 더 그렇고. 일러스트 작업을 한 이아리 디자이너는 <핀치>에서 ‘트레이너와 나’ 시즌2를 연재할 당시 처음 만났다. 여성들의 원데이 스포츠 클래스 '여가여배(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를 취재하며 강소희 기획자와 이아리 디자이너를 인터뷰했다. 그때 본 여가여배 포스터가 인상 깊었던 터라, 금방 이아리 디자이너의 팬이 됐다. 표지 일러스트를 의뢰한 건 편집자였다. 책 내용에도 등장하는 분이니 딱인 것 같다고. 담당 편집자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직장인이 PT를 받기란 쉽지 않다. 우선 너무 비싸다! 자발적 ‘PT 푸어’가 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꾸준히 PT를 받은 강력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내게 운동은 집안일과 같다. 집이 엉망진창이 되면 마음을 다잡고 대청소하기 마련이다. 이후 최소 한 달간은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게 된다. 내게 운동이 그렇다. 잦은 회식과 야근, 출장으로 건강을 잃고 난 후, 월급의 20퍼센트를 PT에 쏟아부었다.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6개월 동안 아등바등 헬스장에 갔다. 중간중간 운동을 못 할 때도 있었는데, 금방 몸이 안 좋아지더라. 그러니 그 다음 주엔 좀 더 열심히 가게 되고.. 그렇게 버텼다. ‘꾸준하다’는 형용사는 약간 겸연쩍다.

 

숨가쁘게 책을 읽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책은 트레이너들이 우선 일독한 후, 헬스장에 무조건 비치해야 한다’고.


많은 트레이너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여성이 헬스장을 찾는 이유가 꼭 살을 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여성의 몸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이를 잘 모르는 트레이너라면 꼭 읽어주면 좋겠다. 요즘은 당시보다 운동 환경이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최근 PT를 받기 시작한 친구가 말하길, 첫 세션에서 남성 트레이너가 조심스럽게 생리주기를 물어봤단다. 그 얘기를 듣고 이 업계도 발전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트레이너의 노동 구조 파트는 “우리 체육관은 안 그런데?” 하고 팩트를 '검증'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조심스러웠다. 헬스장마다, 트레이너마다 상황은 다 다를 테니, 너그러이 봐주면 좋겠다.

 

PT를 받기 전, 여성 운동자들이 꼭 고려해야 할 사항, 팁 같은 게 있을까?


체크포인트라면, 첫 세션에서 생리 주기를 물어보는지, 안 물어보는지 여부가 되겠다. 이를 바로미터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우리 몸은 호르몬의 영향을 '빡세게' 받는다. 월경과 월경전증후군 기간이 한 달 중 평균 2주나 된다. 이를 확인하지도 않는 트레이너가 내 몸과 건강에 얼마나 세심한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 든다. 이외에는 트레이너가 유능하고 상대하기 편한 사람인지가 제일 중요하다. 남성 운동자에게나 여성 운동자에게나 똑같다. 운동하면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불편한 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피드백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남성들도 그런 트레이너를 원하지 않을까? 당연히 가격이나 시설도 잘 맞아야 하고.

 

문장이 시원시원하다. 성격도 그러한가?


그러면 좋겠다. 시원시원한지는 모르겠는데, 말투가 너무 직설적이라는 지적을 30년째 듣고 있다. 지금은 많이 둥글둥글해진 거다.

 

하하. 지인들도 책을 읽었을 텐데,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던가?


어떤 분은 책 제목을 보더니 “한슬이가 맨날 하던 말을 책으로 냈구나”라고 하셨다. 한 친구는 책장을 덮자마자 슬로우 버피테스트를 100회나 했다고! 정말 대단하다! 다른 친구는 이 책을 읽고 운동이 하고 싶어졌단다. 어머니께 “나 다시 운동할래!”라고 말하니, “그래, 너 살 좀 빼는 게 좋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책 표지를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동생과 함께 다닐 만한 헬스장 추천을 부탁한 친구도 있다. 나도 헬스장을 여러 군데 다녀본 건 아니라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책은 재밌다. 하지만 난 운동은 못 하겠다”라고 말한다면, 저자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운동이라는 게 그렇다. 꾸준히 하면 진짜 좋은데, 그게 너무 힘들다. 가끔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병이 날 거 같은(?) 아이러니한 기분도 든다(그냥 집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게 더 오래 사는 길일까?).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생활인이 아닌가. 어떻게든 생활 체력을 만들어야 하는 슬픈 존재들에게 운동은 필수조건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니 본인에게 최선의 방식으로 지금의 건강을 유지해보면 어떨까? 하루 30분 산책도 좋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것도 방법이겠다.

 

필자가 가장 크게 동그라미를 친 부분은 에필로그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헬스장의 상관관계’에 실린 글이다. 특히 이 문장! “살아갈 힘도 없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헬스장에서까지 그런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했다.”(149쪽)


당시 주변인들에게 헬스장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누구는 “그렇게 트레이너가 싫으면 헬스장을 옮기지 그랬어”라고 했고, 누구는 “그 말을 듣고 그냥 참았어?”라고 되물었다. 내가 웬만해선 ‘참지 않는’ 사람이라 더 그런 말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여성이 성차별을 경험할 때 그 자리에서 ‘사이다’처럼 쏘아붙이거나, 경찰을 불러서 ‘인생은 실전’임을 보여주거나, 그도 아니라면 상대를 감화시키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그럴 기력이 없었다. 헬스장을 옮긴다해도 그곳이 더 나을 거란 보장도 없었고. 그래서 더더욱 내가 겪은 일들을 꾸미지 않고 쓰고 싶었다. 이렇게 큰 소리로 불평을 하면,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세상이 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요즘 어떤 책들을 읽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최근에 체스터 하임즈의 장르 소설을 신나게 읽었다. 미국에선 아주 유명한 작가인데, 한국에는 아직 번역서가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킨들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영어 단어에 열심히 밑줄 쳤다. 한 작가에 꽂히면 그의 작품을 다 읽는 편이다. 제일 좋았던 작품은 다. 는 미완성 유작이라는 점이 아쉬운데, 인종차별에 대한 ‘미러링’ 느낌이 짙은 편이라 기억에 남았다. 는 할렘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살인자의 정체와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핀치>는 구독 플랫폼이다. <핀치>의 기자로서, <핀치>를 홍보한다면.


한국 사회는 남성이 기본 인간형이다. 반면 여성은 젠더화된 존재다. 핀치는 반대다. 핀치에는 여성이 쓴 글, 여성을 인터뷰한 글, 여성이 그린 일러스트와 웹툰만 있다. 여기에서 남성은 젠더화된 존재다. 성평등한 세상이 되기 전까지, 핀치 같은 공간이 어느 한 구석에라도 존재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여성을 기본 청자로 상정한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자신과 비슷하거나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가 고픈 이들에게 핀치를 강력 추천한다!

 

어떤 독자들이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를 읽으면, 가장 좋을까?


책 제목을 보고 “맞아! 나도 그래!”라는 말이 튀어나온 사람들. 여성 회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트레이너들. 운동에 관심은 있는데 불쾌한 경험을 할까 두려웠던 여성들. '여자라면 평생 다이어트 하는 거'라고 굳게 믿는 분들.

 

두 번째 책을 쓰게 된다면, 어떤 글을 쓰고 싶나?


산부인과에서의 경험. 산부인과는 여성의 건강을 위한 곳임에도 여성들은 산부인과를 마음 편히 찾아가지 못한다. 이와 관련한 담론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제 여성의 입장에서 쓴 글은 드물다. 나의 경험과 친구들의 경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에 관해 써보고 싶다.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신한슬 저 | 휴머니스트
여성혐오적인 헬스장 문화와 날씬한 몸만을 강요하는 광고 마케팅을 꼬집고, 여성 트레이너가 성장하기 어려운 헬스 산업구조를 파헤친다. 운동에 푹 빠진 여성과 여성들이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판을 벌인 기획자들을 찾아 나선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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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신한슬 작가 #트레이너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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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소와 엄

    알고 보면 전혀 시크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