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의 빈자리 :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려고 했을 뿐인 이의 부재
정확히 무엇이 그를 좋지 않은 선택지로 몰아세웠는지 난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우리 곁에 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끊임없이 무례하고 잔인했다는 사실만큼은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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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가 지난 2월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동영상 캡처. 그가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자 이 사진을 택했다.

 

 

 

우리 곁에 있을 때에도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한 사람을, 그가 떠난 뒤에 뒤늦게 이해할 수 있다 말하는 건 오만일 것이다. 우리는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알지 못하며, 나는 섣불리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말할 만큼 뻔뻔하지 못하다. 그의 깊은 속내는, 이제 온전히 그의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환상을 채워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억누를 것을 요구당하는 업계의 불문율을 깨고 자기 자신으로 살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는 꾸준히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야기해 왔고, 남들 눈에 보기 좋으라고 자신을 치장하는 대신 자신이 편하고 자연스럽다 여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친구들과 허물없이 노는 사진이나 장난스레 찍은 셀카는 그저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이었을 뿐, 그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TV 속에 나오는 연예인들에게 제 욕망을 투사한다. 쇼 비즈니스의 원리 자체가 그런 것이니 그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연예인이 자기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남들의 욕망을 대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사람들이 보내던 환호성은 비수로 돌변한다. 내 욕망을 대신 살아줘야 하는 네가 왜 자아를 가지고 내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려 하냐고, 이는 계약 위반이라고 외친다. 특히나 그 대상이 젊은 여자 연예인일수록 비수는 더 날카로워진다. ‘인형’이나 ‘여신’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 내 눈에 거슬리는 일 없이 마냥 내 욕망을 안전하게 덧씌우기 좋은 존재가 되어 주길 바라는 대상이니 말이다.
 
세상이 그가 속옷을 갖춰 입었느냐 아니냐를 놓고 연예면 헤드라인 기사를 써가며 논쟁하고, 그가 찍은 셀카가 악의적인 도발이라며 품평을 벌인 이유도 사실은 그것이리라. 편하게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텅 빈 스크린이어야 할 사람이, 자꾸만 제 주장을 캔버스 위에 그리며 그림을 그리려 했던 게 괘씸했던 것이다. 속옷도 우리의 허락을 받고 벗어야 하고, 섹슈얼해 보이는 셀카도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맥락으로만 찍으라고, 그게 우리가 너에게 환호했던 이유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이야기를 하거나, 누군가를 부당하게 공격해서 세상의 공격을 당한 게 아니다. 그는 그저 그 자신으로 살고자 했기 때문에 공격을 당했다.
 
정확히 무엇이 그를 좋지 않은 선택지로 몰아세웠는지 난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우리 곁에 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끊임없이 무례하고 잔인했다는 사실만큼은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다. 2019년 10월 14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려 노력했던 최진리가 만 스물 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예를 갖추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영전에 올린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붙임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다음의 번호로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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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