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를 선택했고, 컴퓨터학과를 졸업했다. 이과 출신 공대생. 체크무늬 셔츠가 잘 어울릴 것 같은 8년 차 사회인이지만, 여러 운이 겹치면서 글을 즐겨 쓰는 개발자가 됐다. 요즘 내가 미는 닉네임은 '글 쓰는 감성 개발자'다.
2009년에 블로그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당시엔 내 글을 누군가 읽어주기만 해도 그저 감사했다. K리그 축구 칼럼을 쓰면서 내 글을 믿고 본다는 팬도 생겼었다. 한 K리그 팬 카페에서는 내 이름을 딴 게시판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시간 많은 컴퓨터학과 대학생은 컴퓨터 언어가 아닌 한글을 가지고 놀았다.
글을 즐겨 쓰던 대학생이었지만, 사회에 나오고 나서는 도통 글을 쓰지 못했다. 틈틈이 축구 칼럼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새로 생기는 업무와 인간관계 등 시간은 한정적인데 할 일은 늘어만 갔다. 책을 읽고 서평만 겨우 기록했다.
설상가상으로 연차가 늘면서 책임도 늘었다. 사회 초년생 때는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마음만 먹으면 됐는데, 이제는 뭔가 포기해야 열심히 할 시간이 생긴다.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열심히 해왔지만, 이제는 열심히 하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밍고컴퍼니> 창업자 시절 한 VC가 내게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대표님.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하셔야죠."
욕심이 많은 편이다. 사실 본업만 제대로 해도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하는 것 아닌가? 커뮤니티 운영과 독서 소모임, 경영 소모임, 아세안 비즈니스 랩(http://aseanbizlab.com/) 등. 교양을 쌓으려,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블루오션이어서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늘 곁에 두고 싶어서. 여러 욕심이 내 시간을 갉아먹는다. 주기적으로 번아웃을 경험하고는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지만, 포기가 된다면 진작 했겠지. 한 인터넷 강의 강사가 그랬다. 포기하면 계속 생각난다고. 차라리 열심히 하는 게 낫다고.
너무 많은 일을 벌였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이유가 있어서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최대한 최적의 시간을 투입해 어느 하나 잃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당신,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인가? 대단한 꼼수는 아니지만, 나름 유용한 도구들을 모아서 소개하려 한다.
욕심은 버릴 수 없고, 열심히는 하고 있고, 번아웃은 걱정되고, 잘하고는 싶은 당신에게 단, 몇 분이라도 아낄 수 있는 작은 꼼수가 되길 바란다.
욕심쟁이가 쓰는 몇몇 생산성 도구를 소개한다.
1. 글쟁이가 쓰는 생산성 도구
최근 내 주말 서식지는 카페다. 어쩌다 보니 늘 써야 할 글이 있었다. 매달 책 1권을 읽고 STEW 독서 소모임에 서평을 쓴다. 또 다른 한 권을 읽고 예스24에 칼럼을 써야 한다. 아세안 비즈니스 랩(이하 아비랩)에는 기획 기사나 단신을 쓰고 있고, 분기별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읽고 경영 소모임 토론을 한다. 모두 글쓰기에 기반한 활동이다.
주말마다 카페에 서식한 게 몇 달째인데, 이제는 본업까지 글쓰기가 침투했다. 지난 5월, 1년 4개월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핀테크 스타트업에 개발자로 합류했다. 내가 합류한 TFT는 서비스 오픈을 앞두고 있어 뒤늦게 개발에 투입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동안 내 커리어 장점도 있어 API 문서 작업에 투입됐다. (API 문서는 쉽게 말해서 우리 서비스를 사용할 개발자를 위한 문서다.) 개발자를 위한 글을 쓰는 개발자가 됐다.
글 쓰는 도구는 너무도 많다. 2009년 블로그를 시작한 뒤로 다양한 글쓰기 도구를 접했다. 한글과 워드는 물론 동시 작업이 장점인 클라우드 기반 도구까지. 다양한 커리어를 거치며 도구를 바꿔갔다. 그리고 최근에는 칼럼과 기사를 쓰며 적절한 도구를 선택했다.
1-1. 워크플로위, 다이널리스트
워크플로위(Workflowy)와 다이널리스트(Dynalist)는 비슷한 컨셉의 도구다. 둘 다 블록 형태의 글쓰기를 제공한다. 이 형태는 개발자들에게 무척 익숙하다. 마치 IDE(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 통합 개발 도구)와 같다. 블록 형태의 글 뭉치를 드래그 앤드 드롭으로 옮길 수도 있고, 다 적은 부분은 잠시 접어둘 수도 있다.
[서평] 모든 기록은 워크플로위에서 시작된다(http://ohseyong.com/?p=2043)
다른 장단점도 많지만, 글 뭉치를 옮기고 접어둘 수 있는 것은 한글이나 워드만 사용한 글쟁이라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신세계일 수도 있다. 매주 글을 쓰는 아비랩 멤버들에게 이 도구를 추천했더니, 금세 이 도구에 익숙해졌다. 한 멤버는 며칠 사용하더니 유료 결제까지 했다.(나는 무료로 쓴다)
워크플로위와 다이널리스트는 글 쓰기 외에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저장하는 데 탁월하다. 워크플로위는 이미지나 별다른 꾸미기 기능이 없는데, 그래서 더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다이널리스트는 여기에 몇몇 기능을 더했다. 특히 폴더별로 글을 나눠서 쓸 수 있는데, 나는 이 기능이 마음에 들어서 다이널리스트를 활용하고 있다.
예스24 칼럼은 다이널리스트로 작성한다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필자의 글을 편집했다. 마무리가 약한 글이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워크플로위와 다이널리스트는 글을 접었다 펼 수 있어서 글의 개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글의 주제가 분산되거나 마무리가 약하다면, 이 도구를 사용해보자. 아, 물론 이 글도 다이널리스트로 썼다.
1-2. 서브라임 텍스트
서브라임 텍스트(Sublime Text)는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맥 애플리케이션 중 하나다. 다이널리스트를 사용하기 전에는 가장 많이 사용했던 앱이다.
한때 개발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최근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Visual Studio Code)나 아톰(Atom) 에디터로 많이 넘어갔다. 특히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들었는데, 제대로 된 에디터가 나왔다며 많은 개발자의 극찬을 받았다.
서브라임 텍스트에서 각 줄에 같은 내용 편집하기
대용량 텍스트 데이터를 다루다 보면 전체 편집이나 모든 줄 앞뒤에 글자를 붙이거나 제거할 때가 있다. 서브 라임 텍스트에서 알트 키(ALT)를 누르고 세로로 드래그를 하면 여러 줄에 커서가 생긴다. 각 줄에 같은 내용을 편집하는 데 굉장한 시간 단축 효과를 가져온다.
또, 대부분 언어 포맷을 제공하는데 텍스트 에디터로 개발하는 것을 즐긴다면 이런 부류의 에디터는 필수일 것이다. 글을 쓸 때 서브라임 텍스트를 사용하면, 어두침침한 바탕에 쓰이는 흰 글씨가 당신을 긱(geek) 하게 만들어준다.
2. 동시 편집과 글쓰기 커뮤니티
혼자서 글을 쓰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함께 쓰는 것은 또 다른 글쓰기의 묘미다. 특히, 커뮤니티를 운영한다면 함께 글을 쓰는 공간은 필수다.
많은 도구가 있지만, 역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멤버들의 소속감은 한층 더 깊어진다.
2-1. 구글 드라이브
내가 속했던 언론사는 구글 앱스를 공식 도구로 사용했다. 이메일부터 드라이브, 독스, 스프레드시트까지 입사 시 구글 앱스 강의를 받을 정도로 구글 앱스에 대한 사랑이 특별했다.
구글 독스 동시 편집 기능을 처음 만나고, 내 활동 반경에서 구글 독스는 뗄 수 없는 소프트웨어가 됐다. 아직 구글 독스 동시 편집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서 사용하라. 무료인 이 도구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STEW는 2017년부터 구글 드라이브에 자료를 저장하고 있다. 회원, 회비, 공식 모임, 소모임 등 자료는 물론 스카이프 화상 채팅을 하면서 독스와 스프레드시트에 동시 편집을 하면 '최종.dox', '최최종.dox' 따위의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도 된다. (나는 100GB를 유료로 결제해서 더 사용하고 있다.)
커뮤니티 STEW 구글 드라이브는 내 보물창고다
최근 독서 소모임 신규 멤버를 모집하면서 구글 설문지를 활용했는데, 설문지 데이터가 스프레드시트로 옮겨져 번거로운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워드나 엑셀을 단순히 텍스트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정도의 수식만 사용한다면 동시 편집이 되는 구글로 옮기자.
동시 편집이 된다면, 번거로운 작업을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내게 있어 정말 큰 혁명이었다.
2-2. 워드프레스
전 세계 홈페이지 30%가 워드프레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커뮤니티 STEW를 운영하며, 2015년부터 워드프레스를 애용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내 AWS에는 워드프레스가 4개 운영되고 있다. 월 2~3만 원 정도로 홈페이지를 4개 운영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홈페이지 하나 만드는 데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디자인이며, CMS(Content Management System), CDN(Content Delivery Network) 등 제대로 된 홈페이지를 만들려면 신경 쓸 게 정말 많다. 하지만, 작은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고민을 하기엔 시간도, 비용도 없다.
STEW 홈페이지, 워드프레스로 만들었다.(http://stew.or.kr/)
워드프레스를 호스팅으로 사용하면, 우선 무료로 기본적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광고 제거, 도메인 등 외부에 노출할 기본 기능은 월 5천 원이면 된다. 이 정도면 대부분 커뮤니티에서 원하는 기능은 다 끝난다.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브런치, 미디엄 등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이 있지만, 커뮤니티에서 좀 더 커스터마이징을 하고 싶다면, 워드프레스를 사용하자. 쇼핑몰로도 활용할 수 있으니 대부분 홈페이지 기능은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커뮤니티 멤버 수십 명이 사용할 조금은 특별한 홈페이지, 워드프레스로 빠르게 배포해보자.
3.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곳에서
생산성 도구는 찾아보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서비스가 있다. 가볍게 사용했던 서비스를 헤아리면 수십 개가 넘는다. 각 서비스가 집중한 분야가 다르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분야와 겹치지 않아 사라진 서비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노션(Notion)은 "All-in-one workspace"라는 문장 아래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블록형 글쓰기, 동시 편집, 데이터베이스 심지어 홈페이지 기능을 노션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집중한 분야가 다르기에 각 기능의 깊이는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는 갖추고 있다.
노션 사용기 기사.(https://www.imaso.co.kr/archives/3810)
기자로 일하던 2018년, 노션을 발견하고 개발자 측면에서 익숙한 부분이 많았다. 에버노트 유료 사용자인 내가 노션 유료 사용자로 옮기면서 크게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굳이 꼽자면,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이 웹 기술(일렉트론) 기반이라 다소 느린 것을 꼽겠다. 최근 투자도 많이 받았으니, 이는 차차 개선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쉬운 사용법이다. 간단한 커뮤니티 STEW 소개 페이지를 노션으로 공유하기도 했다. 웹 기술을 모르는 멤버들도 10여분 설명을 들은 뒤에 노션 페이지를 수정할 수 있었다. 쉬운 사용법은 어느 서비스나 큰 장점이다.
노션 프로가 쓴 노션 가이드 책
둘째로 대부분 데이터를 노션 내 저장할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는 노션이 자랑하는 핵심 기술이다. 데이터베이스는 약간의 학습 시간이 필요한데, 노션 프로(노션 본사에서 선정한 전문가)로 선정된 헤비 유저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생산성 도구의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독서 노트를 저장하고, 기사를 스크래핑해둔 뒤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노션 프로의 세미나를 들으며 냉큼 유료결제를 했다.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지만, 조금 더 고급 기능을 사용하려 노션 프로가 쓴 책을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셋째로 공개형 페이지 사용이다. 노션 페이지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할 수 있다. 즉, 홈페이지로 사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회칙 등 멤버들에게 공유할 자료가 있을 때 빠르게 공유할 수 있다.
노션으로 만든 STEW 소개 페이지(http://bit.ly/steworkr)
4. 마무리
생산성 도구는 정말 많다. 위에 소개한 도구 중 무조건 최고인 것은 없다. 자신의 사용 패턴에 맞는 도구를 찾는 것은 꽤 많은 시간과 학습 비용을 요구하지만, 적절한 도구를 찾은 뒤 절약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생산성 도구를 활용해 욕심을 채우고 있다. 글쓰기 도구와 동시편집 도구 그리고 클라우드가 없었더라면 내 욕심 중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욕심이 많아 일을 많이 벌인 그대, 생산성 도구를 활용하자.
오세용(글 쓰는 감성 개발자)
6년간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했다.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도밍고뉴스>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따뜻한 커뮤니티 STEW>에서 함께 공부한다. http://bit.ly/steworkr
오세용(글 쓰는 감성 개발자)
6년간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했다.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도밍고뉴스>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따뜻한 커뮤니티 STEW>에서 함께 공부한다. http://bit.ly/stew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