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만난 시민들과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최근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 대학생은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를 염려하면서도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물었다. “공부하다 힘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대학생은 주저없이 답했다. “공부를 더 하면 됩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시청자도 모두 그 장면을 웃으며 넘겼지만, 그 대학생의 말이 앞에 닥친 막막함을 타파해 나가는 데 꽤 괜찮은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우리 사회 안에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과 현상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 힘들다고 호소한다. 누군가는 힘들다면 당장 생각을 멈추라고 말하겠지만, 그게 능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간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자존과 관종의 감정 사회학』 은 사회문화에 대해 생각이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이로써 당신이 생각을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우선 책 제목이 눈에 띄는데요. 어떻게 이런 제목을 짓게 되었나요?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낯설지 않으실 텐데요. 이 말은 몇 년 전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했던 밈(meme)에서 출발했습니다. 책 전체를 통해 오늘날 미디어와 대중문화 뒤에 숨은 사회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했는데요. 마침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의 속내를 대변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되뇔 수밖에 없는 시대의 양가성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거든요.
책 안의 글들이 다루는 내용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포괄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어떤 배경에서 탄생한 글들인가요?
전에 한 학자 분이 논문을 두고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기 위해 방어진을 계속 치는 것’이란 표현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 나름의 의미가 분명히 있지만, 이따금 그런 논문의 생리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자괴감을 갖고 있었어요.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죠.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 안에 담긴 글들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출발해 일상 문화에 말을 거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논리의 방패는 잠시 뒤로 하고, 현실의 감각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물론 이 시도가 성공했는지는 보시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평소 미디어ㆍ문화를 연구하고 대학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와 같은 일상이 이 책을 쓰는 데 영향을 끼쳤나요?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다 보니 항상 20대와 함께 생활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저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지만, 매번 새로운 감수성과 만나면서 기존의 생각이 깨지고 새로 덧붙여지는 환경에 놓이는 셈이죠. 특히 미디어ㆍ문화는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일종의 흐름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런 흐름을 파악하는 데 저 스스로 갖고 있는 특성들을 의도적으로 흔들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제가 대학 내에서 만나는 다양한 세계들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나 현상을 자꾸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사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해오셨는데요. 작가님에게 마음의 문제, 그중에서도 ‘사회의 마음’의 문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흔히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정신과 전문의도 심리학자도 종교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의 마음이나 그와 연결되어 있는 사회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서문에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마음의 문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이런 것 같아요. 비단 정신이나 심리와 같은 범주로만 국한되지 않은, 좀더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양상을 되짚어보고 그 안에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추측해보는 거죠. 사회 도처에 놓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처럼 말이죠.
책이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을 만나보실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7월 중에 한 독립서점에서 작은 북 토크를 준비 중입니다. 제 얘기를 많이 늘어놓기보다는 독자 분들의 이야기를 더 들었으면 해요. 9월에 부산의 한 대안공간에서도 조촐하나마 독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려고 논의 중입니다. 제가 책을 통해서 ‘제 이야기만 들어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독자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고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같이 쓴 책은 있었지만, 단독 저자로 참여한 책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험이었나요?
다른 저자들과 함께 책을 낼 때도 부담이 되었던 건 사실이었는데요. 이번에는 무엇보다 흔히 하는 우스개소리로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달까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책을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책을 쓰는 행위가 갖는 진중함이 있고 또 그 책을 읽는 이들의 기대가 있기에 이 책의 쓸모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책이 세상으로 나온 다음 얻게 되는 시간인데요. 말하자면 ‘책의 생애주기’랄까요? 그게 어떤 모양을 띠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기획이 있나요? 계획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좀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지난 5년 동안 여러 예술가들, 그리고 예술가 지망생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볼지, 그 형태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고민을 좀 하고 있어요. 또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 안에 있는 ‘먹방’이나 ‘먹스타그램’ 관련 글에서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음식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재도 아직 거친 아이디어 수준이긴 하지만, 향후에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즐겁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KAIST, 연세대학교에서 영상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계간지 『1/n』에서 에디터로 일했으며, 『한겨레21』의 ‘마음 비추기’ 코너에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대학에서 미디어 관련 강의를 하는 한편, 미디어와 문화 현상 뒤에 숨은 사회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 최근에 건강과 먹거리를 둘러싼 미디어 지식의 문제(「건강 먹거리 담론의 수용에 관한 연구」), 팬 문화 내부의 역학과 사회적 의미(「20대 여성 팬덤의 감정 구조와 문화 실천」), 소셜미디어상의 이미지가 생산되는 맥락(「SNS상의 이미지 생산과 의미에 관한 연구」) 등에 대한 논문을 썼다. 함께 쓴 책으로는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2018), 『The Korean Wave: Evolution, Fandom, and Transnationality』(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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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잘되게 해주세요강보라 저 | 인물과사상사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가만두지 않을 테야’라고 으르렁거리는 것만 같은 뾰족한 시대를 살아가느라 그 어디와도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아주 납작하게 줄여버린 이 시대의 마음들이 되뇌는 자기최면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