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진
『두 번째 페미니스트』 는 임신, 출산, 육아, 가사노동의 과정을 애인과 함께 겪고, 돌봄을 도맡는 ‘남성 아내’로 변화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너무나 확실했던 남성의 세계가 점점 불확실해져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의 언어에 자주 불끈거리게 되면서, 편하게 살았던 세계를 뒤집고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간 저자의 고백이 책에서 펼쳐진다.
‘페미니즘이 열어준 모험의 세계’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요리나 청소 같은 일이다. 작가는 살림을 잘하는 것이,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삶의 작은 단위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집은 엉망이 되고, 텃밭에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해지죠. 작은 일상을 돌보는 일이 자신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것 같아요.”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이야기로 확장한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 집필을 시작할 때부터 책이 완성되었을 때까지의 소감이 어떠신가요?
원고를 쓰기 시작한 건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 난 뒤부터였어요. 그 소리가 정말 경이로웠거든요. 그날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편지를 쓰듯 한편 한편 썼죠. 지금 아이가 28개월인데, 임신 기간 10개월을 합하면 38개월간 이 책을 쓴 거죠. 책을 처음 받아들고 가장 먼저 아이에게 책을 한 권 선물했어요. 읽지는 못하지만 함께 놀 수 있게요. 크레파스로 낙서하고 종이도 맛보고, 페이지들을 구겨가며 책과 놀아요. 왠지 아이와 함께 커나갈 아이의 친구를 선물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이 결정되었나요?
심보선 시인의 「형」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그 시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니까”라는 구절인데요. 태풍의 한복판에 있는 첫 번째로 슬픈 사람들 곁에 있기 때문에 두 번째로 슬플 수도 있는 거잖아요. 곁에 있지 않고서는 두 번째로 슬플 수도 없는 일이죠. 이런 대화를 편집 미팅에서 나누다가 편집자님께서 ‘번쩍’하고 “제목으로 ‘두 번째 페미니스트’ 어때요?”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 뒤로 며칠 동안 이 제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남성으로서 두 번째일 수밖에 없던 날들이 떠올랐죠. 애인과 아이가 모유수유를 할 때 저는 늘 두 번째 사람이었어요. 그 곁을 지켜 서서 모유수유를 마치고 그대로 잠들어 버린 애인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일. 아이를 품에 받아 트림을 시키는 일. 미역국과 회복식을 차리는 일. 그것이 두 번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것이 두 번째 사람이 할 수 있는 윤리라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스트라는 이름 앞에서 15년 가까이 망설였어요. 남성인 제가 그 이름을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애인과 아이를 돌보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나는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젖’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수유를 마친 아이와 아내를 안을 수 있는 ‘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첫 번째 사람들을 향한 응답의 책임과 과제를 떠맡는 두 번째 사람으로서의 몫이 제게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은 어쩌면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책 제목이 결정되고, 책 안에 수록된 표제작이기도 한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의 원고를 가장 마지막에 간신히 썼답니다.
책을 펴면 "나의 세계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여성이 남성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었다."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작가님의 내면에는 어떤 변화들이 생겼는지요.
주변 페미니스트 동료들도 페미니즘을 거치면서 저와 비슷한 경험들을 한 번씩 겪었더라고요. 한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도서관이 와르르 무너지는” 벼락같은 경험이었죠. 정말 와르르 무너졌죠. 남성으로 길러지고 남성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젠더 권력’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세계가 저에게 들이닥쳤어요.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살면서 제가 단 한 번도 ‘젠더 권력’에 대해서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이 세계를 느껴본 적이 없었죠. 이렇게까지 무감각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어요. “가부장제는 남성들이 자신의 느낌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준다.”는 벨 훅스의 말은 제법 정확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느끼려 하지 않아도 별 상관없는 가부장적 남성으로 자란 것이죠. 좀 부끄러웠어요. 어머니, 할머니, 여자친구, 여성 동료들에게 참 부끄러웠어요.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정희진)을 느끼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생각해봐요.
여남을 구분 짓는 젠더 박스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나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무엇인가요?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었어요. 페미니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는 총여학생회에서 활동을 했고, 이후로는 정당에 가입해서 또래의 동료들과 책을 함께 읽으며 세미나를 오래하기도 했죠. 면생리대 만들기 워크숍, 위안부 피해자 지지 서명 운동, 세계 여성의 날 행사 등등. 페미니즘 현장에서 정말 멋있는 페미니스트들을 많이 만났어요. 친구가 아니라 동료를 만난다는 건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언어를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죠. 남녀가 아니라 여남으로. 폐경이 아니라 완경으로. 여성들을 호명하는 은유의 배치들도 바꾸어나갔죠. 사물(여긴 꽃밭이네), 소유물(한 번잡은 물고기)처럼 여기는 은유들을 다르게 고쳐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동료들을 만나고 언어를 바꾸어내는 일을 하면서 ‘한국의 남성’인 저 자신을 여러 번 걸쳐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고, 또 무너뜨리는 일들을 하면서 완전 별로인 제가 조금은 덜 별로인 사람으로 나아갔죠. 그건, 아직도 그래요.
책에는 삶의 작은 단위부터 구체적으로 가꾸고 돌보는 일과 끊임없는 생활의 실험에 대한 도전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님의 다양한 돌봄들(텃밭 꾸리기, 천 짜는 일, 집사람 회의 등) 중에서 최근에 도전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애인과 저는 ‘시대 읽기’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무턱대고 ‘한 번 해볼까?’가 아니라 ‘시대 읽기’를 기반으로 한 생활 실험들(기본소득, 공동육아, 젠더육아)을 떠올려요. 이런 습관은 조한혜정 선생님께 크게 배운 것이기도 해요. 시대 읽기를 하다 보면 시민으로서 살펴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와요. 잃어버린 손의 기술을 회복하는 일, 음식물쓰레기로 거름을 만들어 옥상텃밭을 경작하는 일 등등.
최근에는 두 돌이 지난 아이가 주변을 ‘돌봄’할 수 있게 앞치마를 지어줬어요. 함께 집을 돌보는 일을 할 때면 입을 수 있게요. 매일 아침 아이가 ‘돌봄’해야 할 페트병 화분을 만들어 그곳에서 목화를 키우고 있어요. 가을이면 목화를 수확해서 아이와 함께 인형 만들기를 하려고요. 아이에게 주변을 ‘돌봄’할 수 있게 격려하고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주변을 ‘돌봄’할 수 있는 일이, 어떤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마땅한 의무라는 것을 아이가 자연스럽게 알아나갔으면 좋겠어요.
애인과 아이를 '집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구절이 뭉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나요? 각각의 집사람들에 대한 근황도 궁금합니다.
‘집사람’이라는 말은 작가 존 버거의 문장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원래 집이란 말은 세상의 중심을 말했다. 지리적 의미가 아닌 존재론적 의미에서 그랬다.”라는 문장인데요. ‘집’이란 공간에서 아버지의 자리에 대해 자주 떠올렸어요. 기존 생계부양가족 모델에서의 아버지란 돈을 벌고, 살림과 돌봄을 여성에게 맡겨둔 ‘집’ 밖에 있는 존재잖아요. ‘집’ 밖의 아버지가 아니라 ‘집’에서 삶(돌봄과 살림)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했죠. ‘집’을 존재론적 근거로 삼아 삶을 꾸리는 사람, ‘집’을 길들일 줄 아는 사람으로서의 집사람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저도, 애인도, 아이도 모두 집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거죠. 눈사람이란 말과도 비슷해서 발음할 때도 좋아요. 지금도 그렇게 서로를 부르고 있고, 앞으로 오랫동안 집사람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보살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집사람들 중 가장 어린 아이는 올해 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고요. 저희는 이제야 ‘사회적 시간’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는데요. 애인은 점자교육을 받기 위해 준비하면서 예전부터 해오던 손 작업(마크라메)을 다시 시작했고요. 저는 하청 문필 노동(번역, 카피라이팅 등등)과 글쓰기 워크숍을 통해 학생들을 만나고 있어요. 최근에는〈지옥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열고 있는데요. 세월호, 강남역, 구의역, 밀양, 강정과 같은 현장에서 한 문장을 주워와 그 문장을 받침 삼아 시적인 글을 써보는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연락주셔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페미니즘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상태”라고 아일랜드 시인 브렌덴 케널 리가 말했는데요. 경이로움의 첫 말은, “우와”거든요. 놀라운 것을 두고 우리는 “우와~”하잖아요. 아이는 날마다 “우와~”해요. 아이의 눈에는 이 세계를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열린 상태에서 느끼더라고요. 페미니즘의 언어들은 저에게 “우와~”를 알려준 언어이기도 해요. 페미니스트들의 삶과 말을 통해서 저는 “우와~”할 때가 많아요.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당당한 표정, 세계를 겪고 있는 방식들. 느껴본 적 없는 감각들까지. 저에게 페미니즘은 ‘경이로움’의 장르예요.
보이지 않던 세계를 펼쳐준 페미니즘은 요즘 제 상상력의 근간이 돼요. 사회적 의례들(혼인, 돌잔치, 완모 파티)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일상의 노동 분배(가사노동, 정서노동, 돌봄 노동)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돌봄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등등. 일상적인 부분에서 삶의 태도까지 페미니즘은 관성으로 남아 있는 사회적 형식들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펼쳐볼 수 있게 해주죠. 새로운 삶의 실험, 새로운 언어의 모험, 새로운 관계를 향한 탐험까지 어디 하나 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열렬한 저의 ‘동반자 1인’이지요.
페미니즘이 열어준 모험의 세계 속에서 “한 사람의 남성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가부장적 경계를 용감하게 넘을 때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것”(벨 훅스)을 알아가고 있어요. 고맙죠. 이 세계를 두텁게 살아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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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서한영교 저 | arte(아르테)
남성 페미니스트의 성장기가 담겨 있고, 수유하는 애인의 곁에서 애간장을 태우며 한철을 보낸 사랑의 기록, 속싸개 위에 아이를 눕히고 최상의 섬세함을 다해 자장가를 불러준 육아 일기가 시인의 섬세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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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