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재밌게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기억하시나요? 베니스의 거상 안토니오는 절친한 친구 밧사니오의 부탁으로 유태인 갑부 샤일록에게 큰돈을 빌립니다. 평소 안토니오와 앙숙인 샤일록은 심장에서 가까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설정하는데요. 불행히도 안토니오는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을 수 없게 되고, 목숨을 내건 재판을 받게 되죠. 연극 무대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던 <베니스의 상인> 이 서울시뮤지컬단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로 공연되고 있습니다. 박근형 연출, 김성수 음악감독 등이 제작에 참여하며 익숙한 고전이 2019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았는데요. 나이가 들었는지, 객석에 앉아 있자니 과거에는 읽히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보이는군요. 어찌 보면 이 복잡한 문제를 만든 장본인이 밧사니오라는 생각도 드는데, 밧사니오를 연기하는 배우는 어떤 생각일지 궁금하네요. 그래서 공연이 시작되기 전 서울시뮤지컬단 소속 배우 허도영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고전을 좋아해요. 학교에서 연극할 때도 고전을 좋아했고. 고전 작품의 말투가 좀 더 편하다고 할까요? 제 음색에 어울리는 것 같고요.
연극에 비해 뮤지컬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많이 다루지 않아서일까요. 음악도 꽤 낯설게 느껴지던데요. 현대오페라 같기도 하고, 법정 장면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 같기도 하고요.
음악이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무게감 있고, 풍성해요. 처음에는 배우들도 많이 어려워했어요. 음정이나 박자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맞대요(웃음). 연습하다 보니 묘미가 있더라고요. <베니스의 상인> 같은 경우 뮤지컬로는 처음이라서 대사부터 몸짓까지 어떻게 잘 풀어낼 것인가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작품을 할 때면 서울시뮤지컬단 안에서도 오디션을 본다고 들었는데요. 처음부터 밧사니오 역으로 도전한 건가요?
네, 밧사니오로 지원했어요. 주변에서도 저더러 밧사니오가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시고, 제가 생각해도 캐릭터가 제 평소 모습과 비슷해서요. 저는 좀 유하고 느긋한 편이거든요. 스트레스 덜 받고 긴장감도 덜해서 공연할 때도 많이 예민해지지는 않아요. 그만큼 연습을 해놔야 가능하지만요.
아, 평소에도 밧사니오처럼 친구에게 목돈을 비롯해 이런저런 부탁을 잘하는 편인가요(웃음)?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웃음)! 물론 어릴 때는 돈이 없으니까 데이트 할 때 친구한테 옷도 빌리고 차도 빌려봤어요. 남자들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그런 부탁 정도는 하거든요. 밧사니오와 비슷한 점은 로맨틱하다고 할까, 사랑에 있어서는 거침없는 편이에요.
혹시 밧사니오처럼 거액을 빌려달라는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한테 그런 돈이 있다면, 그리고 안토니오와 밧사니오처럼 각별하고 친한 친구라면 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안 좋은 경험이 없어서 겁이 없나 봐요(웃음).
밧사니오 캐릭터는 어떻게 접근했나요? 사실 지금을 살아가는 성인의 눈으로 보자면 민폐 끼치는 인물이잖아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안 보여야 극에 설득력이 있을 테고요.
그렇죠. 저도 단편적으로 봤을 때는 밧사니오가 철부지 같더라고요. 특히 안토니오에 비하면.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는 진중하죠. 사실 안토니오는 무게감이 있고, 샤일록도 캐릭터가 분명해서 초반에는 밧사니오가 좀 애매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애매함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단순히 여자 때문에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 ‘밧사니오는 사랑이 전부인 사람이구나’를 이해시키려고 했어요. 사랑을 위해 큰돈을 빌릴 수 있을 정도로 친구와의 돈독한 우정도 강조하고요.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 썼어요.
관객이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무척 다양합니다.
무대에서도 다양한 연령층이 느껴져요. 처음 <베니스의 상인> 을 준비하면서는 진중한 정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중간 중간 유쾌한 부분도 있고 다양한 캐릭터가 갖는 재미도 있어서인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웃어주시더라고요. 나이에 상관없이 두루두루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서 공연 때마다 객석의 다른 반응도 기대돼요.
이번 작품에는 김수용, 주민진 씨가 객원배우로 참여하는데, 소속 단원들과 작업할 때와는 좀 다른 점이 있나요?
처음에는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두 분 다 성격도 좋고 금방 친해져서 편하게 준비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객원배우분들과 작업할 때 신선한 면도 있고 좋은 자극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서로 잘 알지만, 다른 분들과 작업하면서 ‘이런 호흡도 있구나’ 처음 알게 되고 느끼는 점도 있거든요. 연기적인 부분은 개개인의 특징과 색깔이 있으니까 관객 입장에서도 다양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밧사니오는 안토니오와 주로 등장하는데, 두 안토니오는 많이 다른가요?
스타일이 좀 달라요. (이)승재 형은 남자답고 우직한 면이 있다면, (주)민진이 형은 좀 더 유하고 유연한 느낌이에요.
서울시뮤지컬단의 경우 1년에 두 작품 정도 공연하잖아요. 물론 창작이니까 준비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여러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날 것 같습니다.
뮤지컬단 스케줄에 지장이 없으면 외부 작품에도 참여할 수 있어요. 그래서 6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짧게 공연되는 뮤지컬 <만덕>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통 외부 작품을 하려면 4개월 정도는 함께 작업해야 하니까 일정 조율하기가 쉽지 않고 아쉬울 때도 있죠. 한편으로는 서울시뮤지컬단을 좀 더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저도 활동하면서 단체의 성격과 색깔을 더 알아가게 된 면이 있는데, 계속 좋은 역할을 맡으면서 저도 모르게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시뮤지컬단이 더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고, 좋은 작품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오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창작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릴 때 얻는 희열과 보람도 크고요.
그런데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역할들도 있잖아요.
나이보다는 배우가 갖는 색깔이 중요한 것 같아요. 30대에도 20대 연기하는 배우도 많잖아요. 그래서 조급해하지 않고 저만의 색깔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케줄 등 여건이 잘 맞는다면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를 해보고 싶나요?
너무 많아요. 일단 예전에도 많이 얘기했는데 <쓰릴 미>의 ‘그’요. 고등학교 때 처음 봤는데, 음악이나 구도 자체가 정말 좋더라고요. 주제도 매력적이고. 이외에도 유명한 작품은 다 해보고 싶죠. 내공을 더 쌓고 인지도도 높여서 <지킬 앤 하이드>도 하고 싶고요. 제가 이런 느낌의 뮤지컬을 좋아해요, 좀 다크한.
인터뷰로 만난 허도영 씨는 꽤 밝고 명랑했는데, 좀 어두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네요.
그만의 특징적인 표정 연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자세한 얘기는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죠!
배우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도전할 시기일 텐데요.
연기를 비롯해 실력적으로 더 많이 발전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있기를 바랍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변치 않는 모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배우라면 여러 면에서 욕심을 내게 되지만, 도가 지나치면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잘 컨트롤하고, 관객들에게 부담 없이 편안한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작품과 배역으로 만나고 싶고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