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SF소설에서 배운 수많은 것들”
과학기술 얘기가 많이 나오면 보통 어려워들 하시니, 사람이라는 주제에 역점을 두고 파고 드는 작가부터 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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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유미(우주적인로봇적인).JPG

 

 

『우주적인 로봇적인』  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열정적으로 SF소설을 탐닉해 온 ‘SF 열혈팬’의 독서 기록이자 (‘생활 에세이스러운’) 삶의 기록. 조지 R. R. 마틴,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등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을 비롯한 22편의 SF소설에 대한 리뷰를, 저자의 생활과 함께 유머러스하며 간결한 문체로 담아냈다. 좀비들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을 현대를 살아가는 ‘비혼/독거’ 여성의 불안과 겹쳐 보거나, 헬스장에서 여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눈알맨’들에 대한 비판을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의 리뷰에 담아 내는 식이다.

 

저자 이유미는 스스로를 이과생이라고 믿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아직 개화하지 않은 이과 체질이다’라는 자기 최면의 힘으로 카이스트에 진학했지만 전공보다는 과학이 열어 주는 가능성과 인문학적 영감의 교집합인 SF에 빠져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교내전산망에 글쓰기가 취미였다. 학내 영자신문사를 다녔고 카이스트문학상을 받았다. 닷컴 언론사 기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웹 & 앱 서비스 기획자로 정체성을 굳혔다. 짬짬이 친구들과 철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던 어느 날, 공부한 걸 직접 실험해 보자는 취지로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 실정에는 SF적 사고실험이었던 ‘협동조합’을 현실에 적용해 보는 경험이었다. 이제는 그곳에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전자책을 제작하고, 팟캐스트를 만들고, 끌리는 일들을 실험하고 도모한다.

 

책의 부제가 'SF팬의 생활 에세이스러운 SF소설 리뷰'입니다. 책에 간간히 드러나기는 합니다만,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어떤 계기로 책을 쓰게 되셨는지요?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이 저는 제일 어렵더라고요. 먼저, 제 사회적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무래도 기획자 정체성입니다. 오랜 시간 인터넷서비스 기획자로 일을 했고, 그 일을 무척 좋아했어요. 기획자의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경험을 촘촘하게 그려내고, 개발이나 디자인, 마케팅 등 여러 부문과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하나의 완결된 실체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뭉게뭉게 머릿속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어떤 상을 실제로 존재하게끔 구현해낸다는 점에서 벅차게 낭만적인 데가 있거든요. IT업계를 떠난 이후로는 쭉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에서 콘텐츠에 관련된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를 편집해서 송출하고, 강연을 기획하고 주최하거나, 칼럼을 쓰기도 하고, 전자책도 제작하고요. 요즈음 가장 크게 중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일은 패션 프로젝트입니다(동대문시장과 봉제공장을 바쁘게 오가고 있어요). 원래 하던 일과는 크게 달라 보이는데, 본질적으로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결과물의 장르와 협업대상만 달라질 뿐, 머릿속에 그려낸 일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결국 다 비슷한 쾌감이 있거든요.

 

‘기획자’가 제 사회적 정체성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면, ‘SF팬’은 제 개인적 정체성의 큰 축입니다.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오랜 세월 꾸준히 읽어왔고, 그 애정과 관심을 숨김없이 떠들어대고 다녔죠. 그러다 보니 출판사 블로그에 지면을 얻어 SF 리뷰를 연재하게 되었고, 결국 책이 되어 나온 것입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많은 것'은 SF소설에서 배웠다"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SF소설에서 배운 것들에 관해 말씀해주세요.

 

저는 성장기에 표준전과와 수학의 정석을 맹신하는 아이였습니다. 세상이 딱 그런 곳인 줄 알았어요. 전과와 같은 곳. 수학의 정석과 같은 곳. 흔들림 없는 사지선다의 정답이 있고, 만사에 가장 효율적인 답안이 존재하는 곳 말이죠. 경쟁을 자연스럽게 내면화 한 ‘요즘 애들’이었고, 승자독식의 세상에 별다른 유감이 없는 비정한 신자유주의자였습니다. SF소설이 천지개벽 대오각성의 은혜를 내려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긴 세월 끊임없이 제 눈앞에 각양각색의 희한한 렌즈를 들이밀며 ‘정답’을 의심하게 하고, 단정적이었던 마음에 꾸준히 균열을 내 왔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날카로운 선언문이나 어려운 논문으로서가 아니라, 와닿는 풍경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서요. 생각해본 적 없는 다양하고 정교한 사고실험을 통해서요.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약자란 어떤 것인가, 사회규범이라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가, “원래 그런 것”이란 도대체 얼마나 “원래 그런” 것이란 말인가. 제가 지금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쉼없이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준 SF 덕분에 최소한 덜 나쁜 사람이 된 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SF소설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을 이해하는 법, 다름을 인정하는 법, 그런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는 물론 SF소설이 아닌 다른 모든 문학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지만, 저는 SF가 그 미덕을 아주 효과적으로 극대화시켜주는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SF소설은 여전히 비주류 장르인 듯 보이는데요, 비주류 장르의 팬으로서 겪은 설움도 있을 듯 합니다.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사실 제가 살아오는 동안, 이즈음만큼 SF 출판이 중흥한 시대가 없습니다. 요새처럼 행복했던 적이 없어요. 제가 책을 다 사기를 포기해버렸을 정도니까요. 예전에는 정말, 가물에 콩나듯 띄엄띄엄 띄이이이이이이이엄한 주기로 책이 나오곤 했어요. 그나마도 미적거리고 있으면 절판되어 책을 아예 구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왕왕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본의 아니게 고약한 소비 패턴이 생겨 버리고 말았죠. SF 신간이 세상에 나와 있는 걸 보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일단 사놓고 보게 된 겁니다. 제가 뵈어온 SF 팬들 가운데에는 아예 원서를 구해다가 읽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원서 구하기가 요새처럼 쉽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수년 전 인도 배낭여행을 하다가, 히말라야의 헌책방에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단편집 원서를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배낭여행자가 다 읽고 판 거였겠죠. 엄청나게 크고 두꺼운 책이었어요. 도대체 배낭여행에 저런 큰 책을 들고 오는 사람은 무슨 정신머리였던 걸까 어이가 없는데, 미치고 팔짝 뛰게도, 너무너무 읽고 싶어지는 거예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이야기가 한가득일 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크기와 두께가 웬만했어야 말이죠!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하룻밤 내내 그 책이 눈에 밟히고, 누가 채갔을까봐 간담이 서늘해지고...... 결국 다음날 다시 가서 샀습니다. 얼른 읽고 도로 헌책방에 팔면 된다는 계산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날, 팔뚝만 한 민달팽이가 기어다니는 게스트하우스의 안뜰에서 읽은 첫 번째 단편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짧디 짧은 소설 속 광경이 그 저녁의 더운 공기와 석양 속으로 절묘하게 녹아들었죠. 그때의 행복감이 너무 각별했기 때문에, 저는 그 책을 차마 되팔 수가 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여행자의 배낭에, 새털 하나만 더 올려놓아도 어깨가 부서질 것 같은데, 대형 베개만 한 벽돌... 아니 책이 하나 떡하니 들어간 걸 상상해 보세요. 끝끝내 짊어지고 여정을 마친 제가 대견할 뿐이죠! 그렇게 저와 함께 한국으로 온 그 책은 지금도 제 서가의 가장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책 표지만 봐도 그날의 영롱하던 분위기가 눈앞에 떠올라서 행복해져요.

 

전통적인 소설에 익숙한 독자가 맨 처음 읽기 좋은 SF소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과학기술 얘기가 많이 나오면 보통 어려워들 하시니, 사람이라는 주제에 역점을 두고 파고 드는 작가부터 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나 옥타비아 버틀러, 어슐러 K. 르 귄 등의 작품이 읽기 괜찮을 거예요. 이 작가들은 세계관의 설정이 치밀하면서도 과학기술적 엄정함이 작품 안으로 강하게 치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과학이나 기술의 정합성을 깐깐하게 따지기 보다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사람 사이의 역동에 포커스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소설과 비슷한 호흡으로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덤으로, 문장까지 아름답지요. 옥타비아 버틀러의 단편집 『블러드 차일드』나, 어슐라 K. 르 귄의 단편집  『바람의 열 두 방향』 , 로저 젤라즈니의 단편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등으로 가볍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시면 어떨까요. 단편으로 SF와의 낯가림을 끝낸 다음 장편으로 건너가시는 겁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 ,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 ,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를 추천합니다.

 

'SF'라고 하면 대개는 소설보다는 영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도 많고요. 영화로 보았지만, 소설로 읽어도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면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을 때에는 만족도가 떨어진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원작소설을 먼저 읽은 다음 영화를 볼 때는 실망할 때가 많았지만요. 전체 내용이 옹골차게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거든요.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은 300쪽짜리 책 한 권을 읽는 데 드는 시간보다 대개 더 짧잖아요. 어딘가 성글어지는 건 필연적인 일이겠지요. 그래서 보통은, 원작소설 중에서 감독 자신이 사로잡힌 부분에 현미경을 바짝 들이대고 훑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봅니다. 그러면 어떻게든 만족스러운 포인트를 가져갈 수 있어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은 경우 중에서는 『마스』가 참 좋았어요. 주인공이 처한 화성의 풍경이 정말 실감나서요. 과학적인 개연성을 성실히 챙긴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제 깜냥으로야 막연하고 애매모호한 이미지로밖에 그려볼 수 없었을 대목들이 영화의 영향으로 생생하고 풍부하게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책에서 다룬 작품들이 모두 외국 작품들입니다. 돌아가신 분까지 포함해서 꼭 만나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요?

 

단연코, 작년에 돌아가신 어슐러 K. 르 귄을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깊이 있는 성찰과 품위 있는 사유, 아름다운 문장으로써 순문학에도 절대 꿀리지 않게 해주신 분, SF문학 애호가의 자존심을 드높이 세워주신 분이거든요. 실은, 제가 초등학교때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판타지 소설이 르 귄의 작품이었어요. 저작권 개념이 모호하던 시절 동서문화사 전집의 번역본으로 나온 어스시 시리즈 1권이었는데, 그야말로 책 표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후 SF의 세계로 건너와서 또 엄청난 작품 『어둠의 왼손』 을 만나고, 예민한 사유와 고민을 이토록 우아한 방식으로 던져주는 멋진 소설이 내 초딩 시절을 등불처럼 밝혀주던 바로 그 작가의 작품임을 확인하고 나니, 르 귄이야말로 내 생의 등대이시구나 싶었던 거죠. 저는 이분의 모든 작품을 다 사랑해요.

 

지금 당장 딱 한권의 SF소설만 들고 우주의 어느 행성에 가야 한다면, 어떤 책을 들고 가시겠습니까?(책에서 다룬 책 중에 골라주세요.)

 

그렇다면 물론  『당신 인생의 이야기』 입니다. 다른 행성을 여행하게 되건 라마와 랑데부를 하게 되건 혹은 헵타포드와 대화를 하게 되건 간에,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게걸스럽게 축적할 요량이니까요. 물론 시간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선택권이 주어질 때에는 가급적 양질의 기쁨이 예상되는 쪽으로 나아갈 테지만, 어쨌든 앞으로 돌려 살아도 뒤로 돌려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작정으로 세심히 보고 느끼고 겪고 싶어요. 같은 결말이 영원히 반복되리라는 앎을 지니고, 마련된 경로를 잠자코 따라가는 빛의 마음가짐으로요. ‘인생이여, 다시 한 번’을 외치는 차라투스트라의 마음으로요. 그런 마음의 의지처로 삼기에는 사실  『제 5 도살장』 이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둘 중 어느 것이라도 괜찮을 겁니다.  『제 5 도살장』 의 유머감각이 긴 여행에 벗삼기에는 조금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 를 고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 5 도살장』 은 딱 한 편의 장편 소설이 들어있는 책인 데 반해,  『당신 인생의 이야기』 는 중단편집이거든요. 여러 작품이 한 데 모여 있으니, 한 권으로도 여러 권을 가져가는 효과가 있을 거예요. :)


 

 

우주적인 로봇적인이유미 저 | 북드라망
‘시간과 세대를 가로질러’ 공존하고, ‘차이를 넘어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낙관을 또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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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