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는 일에 관하여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정이현(소설가)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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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심하게 흔들리면 왜 모든 것을 빨아들일까?
바다에서는 부드러운 호박보다 단단한 화강암이 왜 더 동그랗게 깎일까?
양초는 무중력에서 왜 푸른색 불꽃으로 탈까?
넓은 바다에서는 1미터도 안 되는 파도가 왜 해안으로 오면 거대한 해일이 될까?

-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기』  6쪽, 아나톨리 긴, 알렉산드르 카흐트레프 지음, 양철북 

 

최근 나를 울린 문장들이다. 불시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이 눈물의 의미를 분석하려 애썼다. 아마도 그것이 과학의 언어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기 때문에, 정확한 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아름다워서, 부러워서. ‘정확’이라고 쓰고 한자를 확인한다. 正確. 바르고 확실한 것, 정해진 답이 있는 것, 모호하지 않은 것. 설명되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한다는 책의 제목을 다시금 보았다. 나는 포털사이트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검색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한 달 전, 설명할 수 없는 사고가 있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급한 날이었다. 단편소설 마감이 코앞이었고 초고를 써 둔 칼럼의 마무리를 해야 했다. 평소보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주차장 앞에서 망설였다. 걸어 갈 수 있는 동네 카페가 떠올랐다. 몇 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지금은 애매한 시간대였다. 운이 좋은 날엔 손님이 거의 없어 조용하게 일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작은 실내가 단체 손님들로 가득 차 원고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 입장에서의 불운이란 카페 사장님에게는 행운일 것이다. 운이라는 건 얼마나 주관적인가, 그런 생각이 짧게 스쳐갔다. 그뿐이었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자 차키가 만져졌다. 차를 가지고 나간다는 결정은 전적으로 그 순간 이루어졌다.

 

차를 운전하여 10분 거리의 커피전문점으로 갔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일을 했다. 일은 비교적 잘 되었다. 소설 원고의 오래 막혀있던 부분이 해결될 것 같은 기미가 느껴졌으므로 나는 조금 고무되었다. 그것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도 아니었다. 가야 할 시간이 되자 무감하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그잔 바닥에 남은 커피를 버리고 샌드위치 접시를 반납했다. 차에 올랐다. 조수석엔 노트북 가방과 반쯤 읽은 황정은의 새 소설이 놓여 있었다. 시동을 켰다.

 

그 일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에서 일어났다. 상황을 요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렇게 적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았는데 갑자기 차에 가속이 붙더니 혼자 앞으로 나아갔다고. 차가 내 힘으로 통제되지 않았다. 차는 무턱대고 앞으로 달려 나갔고 내가 어떻게 해도 제어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무엇보다 기록해두고 싶은 것은 그 순간 내 정신이 무척 또렷했다는 사실이다. 아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있구나, 나는 둔중하고 급박하게 깨달았다. 동시에 무슨 꿈이 이렇게 생생하지, 라고도 생각했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들이 어쩌면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뉴스도 기억났다. 지금 내 오른발이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는 것이 브레이크가 맞는지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달린 후에야 차는 멈추었다. 정면이 벽으로 막힌 두 갈래 길 앞이었다. 굉장히 긴 시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니 2분 정도였다. 블랙박스에는 내 비명이 녹음되어 있었다. 위급한 때에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를 찾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걸어서 차 밖으로 나왔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날이 맑았다. 분명 어떤 일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는데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이런 일을 겪었다고 말하면 다들 크게 놀랐다. 이어지는 말은 비슷했다. 설령 원인이 차의 문제라도 제조사로부터 ‘인정’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어서 잊으라는 것, 이만하기를 천행으로 여기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 말도 맞았다. 그 골목길은 인적이 드물긴 해도 행인이 아예 없는 길이 아니었다. 마침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도 자동차도 없었다는 점은 기적에 가까웠다. 어깨와 등에 근육통이 생겼다는 것 말고 내게 다른 외상은 없었다. 그러니까 진짜 다 괜찮은 것일까? 괜찮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저 살던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이 끝 모를 두려움은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존 치버의 단편 ‘다리의 천사’에는 어느 날 난데없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된 사람이 나온다. 그는 이렇게 읊조린다. “나의 삶은 끝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은 ‘익숙했던’ 삶이 끝났다는 뜻일 거다. 다리 앞에서 또 다시 숨을 멈출 지경이 된 그에게는 ‘천사’가 나타났지만, 현실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포털 검색창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자꾸 입력해보는 것뿐이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는 실제로 평생 극심한 불안증 속에서 살아온 저자 스콧 스토셀이 ‘거의 모든 분야와 시대의 불안에 관한 지식을 강박적일만큼 완벽히 망라한’ 저작이라고 한다. 그가 왜 이런 작업을 했는지 나는 짐작한다. 불안해서, 너무도 불안해서다. 공부를 하고 근거를 찾고 해석을 하면 내면의 고통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것이다. 헛된 희망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저자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견뎌갔을 것이다. 그 고난의 여정을 차근차근 따라 읽는 일도 견디는 데에 도움이 되려나? 그의 마지막 문장에 힌트가 있다. ‘어찌될지는 곧 알게 되겠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스콧 스토셀 저 / 홍한별 역 | 반비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동물행동학, 유전학과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불안한 기질은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양육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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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