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가족’보다 예의를 지키는 ‘남’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광화문역 5번 출구 앞에서 어색하게 헤어지는 길, 어머니가 쐐기를 박았다.
글ㆍ사진 장일호(시사IN 기자)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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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설 명절이 끝나고 첫 기획회의에서는 여지없이 ‘가족’이 아이템의 하나로 올라왔다. 두 아이의 엄마인 동기는 힘든 명절 연휴를 보낸 모양이었다. “고등교육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그이의 한숨을 보며 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의 한 문장을 떠올렸다. “변화가 없는 사회는 아니지만, 변화가 느린 사회라서 친구가 지쳐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웨딩드레스 44」, 22쪽)

 

생각보다 빨리 명절로 대표되는 ‘구시대’가 안녕을 고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한편에 여전히 고집 센 전통이 존재한다. 1984년생인 선배의 엄마는 시어머니에게 ‘맞으면서’ 시집살이를 했다고 했다. 불과 30여 년 전 얘기다. 도무지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한국에 노예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여, 고개를 들어 당신의 ‘어머니’를 보라.

 

우리 시대 며느리들이야 더 이상 맞고는 안 살지만, 차라리 맞으면 문제 제기하기 편하겠다 싶은 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미세먼지’같은 불편과 불쾌는 좀체 언어화하기 쉽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웹툰으로 먼저 연재됐던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 (귤프레스, 2018)가 큰 화제를 모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나 역시 같이 살고 있는 친구와 갈등했던 가장 큰 이슈가 ‘시댁’ 문제였다. 가해자는 딱히 없는데 나는 기분이 정말 너무 나쁜, 애매하고 묘한 상황에 놓일 적을 지날 때마다 무참했다. 악을 쓰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아닐 줄 알았다. ‘그런’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대단히 착각했다. “어쨌든 그게 가부장제야. 당신 눈에는 안 보여도 내 눈에는 보여.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주 많아.”(「웨딩드레스 44」, 30쪽)

 

결혼 전 시어머니를 단 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는 수십 번 연습한 말을 거의 실수 없이 다한 터였다. 나는 집안일에 재능이 없다고, 원하시는 며느리상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라고. 일단, 시어머니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어머니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 드릴 거예요. 어머니도 제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30년 넘게 모르고 살던 사람이 갑자기 가족 관계가 된다는 게 아마도 당분간 납득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엄마니까 예의를 갖추겠지만, 어머니는 제가 선택한 가족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에게 용건이 있으시더라도, 웬만하면 직접 전화하기보다 짝꿍을 통해 전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광화문역 5번 출구 앞에서 어색하게 헤어지는 길, 어머니가 쐐기를 박았다. 왼쪽 눈 아래 눈물점이 좋지 않은 점이니 빼면 어떻겠느냐는 말이었다. 어머니 딴에는 ‘관심’을 표현하고 싶으셨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무례한 말이었다. 오, 하느님. 역시 결혼은 제 갈 길이 아니군요. 나는 소진된 사회성을 모조리 끌어올려 이를 꽉 깨물고 답했다. “제 몸이니까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사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들었지만 그날 어머니는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문자 그대로’ 토하셨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와 헤어진 직후 줄담배를 피우며 짝꿍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네 엄마’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어쨌든 그 후 1년은 이상한 시어머니와 이상한 며느리가 서로 가족이 되느라 애쓴 시간이었다. 아무리 싸워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말로 하기엔 너무 하찮은 자잘한 분노가 수시로 올라왔다. 하지만 모든 게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연민이 생겼다. 내가 며느리가 처음이듯이, 어머니도 시어머니 역할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처음 만난 날 그랬듯, 나는 이 관계에서 최대한 나의 감정과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짝꿍의 도움이 컸다. 그는 시어머니-며느리 관계에서 무조건 내가 약자라는 걸 ‘결과적으로’ 이해했고 지지하며 온전히 내 편에 섰다. 무엇보다 우리는 ‘효도는 셀프’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며느리나 사위로서 할 일의 목록에 효도를 넣지 않으면 서운함이나 다툼의 여지가 정말이지 아주 많이 줄어든다. 우리가 예의를 지켜야 하는 ‘남’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어머니와 나는 이제 서로에게 적정 거리가 있음을 이해하고 꽤 잘 지킨다. 심지어 나는 어머니를 알아갈수록 좋아하게 됐다. 물론 여전히 시어머니로서는 물음표가 있지만, 여자로서 연대하는 마음이 있다. 언젠가 자녀 문제가 화제에 올랐을 때 “우리 두 사람의 일”이라고 선 긋는 내게 어머니가 덤덤히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는 네가 일하는 사람이라서 좋다.” 스무 살에 결혼해 짝꿍을 낳고 뒤늦게 시작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서 두 번이나 낙태를 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짝꿍은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날 들려주신 이야기야말로 여성이 여성에게 할 수 있는 이해와 격려라고 생각한다.

 

이태 전 어머니의 생신을 겸해 1박2일 여행을 간 적 있다. 내 칫솔을 챙겼느냐 묻고, 이내 짝꿍의 칫솔도 챙기라고 말씀하셨다. 욕실에서 씻고 있던 짝꿍이 소리를 질렀다. “내 건 내가 챙기는 거지 그걸 왜 일호한테 물어봐!” 어머니가 무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으이구, 내가 느네 할머니가 했던 거처럼 일호한테 시집살이시키면 아주 난리 나겠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네, 그랬으면 일단 제가 지금 여기 없겠죠.”

 

이번 명절에는 어머니가 먼저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이모님들과 함께 여행을 가신다고 했다. 어차피 명절에 간다고 해도 당일에 점심 한 끼 먹고 올라오는 게 전부면서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수신지 작가는  『노땡큐:며느라기 코멘터리』  (귤프레스, 2018)에서  며느라기』  를 읽은 가족과 인터뷰를 했다. 수신지 작가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네 나이를 겪어봤으니까 내가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완벽하게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그 반대보다는 쉬울 거야. 그러니까 윗세대가 이해하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108쪽) ‘나의 시어머니’도 그 이해의 첫발을 뗐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좋은 시댁을, 좋은 남편을 만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걸 ‘운’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싸울 수 있었던 건 동료 여성들 덕분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결혼’이 ‘착취’의 동의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156쪽)을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열고 있다.

 


 

 

노땡큐수신지 그림 | 귤프레스
추석에 시가가 아닌 처가에 먼저 가는 민사린 부부의 모습을 통해 시가와 처가에 들르는 순서를 바꾸는 것으로 부부가 평등해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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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예의 #남 #노땡큐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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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g999

2019.11.27

딱부러지는 점은 좋치만, 예의는 없다고 보여지네요. 말투에서 웬지 악의가 느껴지네요. 약자와 강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와 여자입니다. 관용과 포용, 차이와 다름을 먼저 배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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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19.03.02

글의 내용이... 같은 여자이지만.. 내겐 좀 낯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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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nmentor

2019.02.24

'제 몸이니까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까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과해 주세요?
굉장히 드라이한 문체로 '문자 그대로 토하셨다고 한다.' 라니, 이건 시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어 보여 참 그렇다.
나도 여자고, 때때로 시어머니한테 입바른 소리하지만, 서로 할 말 다하면서 예의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저렇게 상스러운 방식으로 말해놓고는 꼭 예의를 갖추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처럼 말해서 어처구니가 없다..; '너네 엄마'라는 표현도 참... '당신 어머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건가... 난 저런 표현도 기분 상하던데... 필자가 사회성이 떨어지는건지, 아니면 예의에 대한 민감도가 낮은 건지... 여자 입장에서도 공감해주기 어려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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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시사IN 기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자주 ‘이상한 수치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