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긴 프롤로그_꿈이 있나요?
아주 어렸을 적에는 “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선뜻 과학자가 되겠다고 했다. 그것도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왜 그런 꿈을 꾸었는가라는 물음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때는 주변에서 보이는 것들이 모두 신기해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어김없이 한눈팔던 대장간에서는 빨갛게 달구어진 쇠가 호미로 둔갑을 했고, 아버지가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선풍기의 날개를 분해하는 일은 정말이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 중 가장 압권으로 기억되는 것은 동네에서 가장 깊은 우물을 자랑하던 우리 집에 어느 날 ‘한일자동펌프’가 설치되면서 꽐꽐 수돗물이 나왔던 순간이다.
호기심이 너무나도 많았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여 과목별로 선생님이 바뀌는 것마저도 아주 신기했는데, 특히 ‘물상’ 과목을 가르치던 총각선생님이 좋아보였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대던 사춘기 소녀에게 ‘물 1g을 1℃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을 비열’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과학이 너무 분명하고 똑똑해보였던 것이다.
물리학자라는 과학자가 되려했던 나의 꿈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되어 왔다.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와의 타협점에서 물리교육과에 진학했고, 이후 영국으로 유학하여 장학금 이슈와 직면하면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런던과학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과학적 지식이 대중과 만나는 접점에 대한 연구에 흥미를 느껴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박물관을 주제로 한 과학문화 전공 박사논문을 쓰게 되었다.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자가 된 나는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활동에 정진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서둘러 한국과학문화재단(현 과학창의재단의 전신)에 취직을 했고, 길어야 2년 정도일거라 생각했던 직장생활이 13년이나 지속되었다. 그것은 당시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정책기획자라는 명성을 얻던 최영환(전 과기부 차관) 이사장님이 ‘도달하기 어려운 미션(Mission impossible)’을 주셨고, 그것이 결국 나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이다. 2002년 당시,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제 7차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회의(Public Communic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PCST)에 참석하여 4년 후에 개최될 제 9차 대회를 한국으로 유치해오는 일을 해낸 것이다.
과학문화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2006년의 PCST-9은 전 세계 35개 국가에서 약 700명이 참가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세계시민의식과 과학문화(Scientific culture for Global Citizenship)’라는 주제 아래 ‘어떻게 과학적 소양을 지닌 시민(Informed citizen)’을 격려하고 또 ‘어떻게 글로벌한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실천가(Global problem solver)’로 안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중요한 이슈다. 이 엄청난 행사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어느 새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문화 전문가로 성장해 있었다.
과학문화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근무를 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정보과학기술의 현황과 발전 방향에 대해 보고하고 의견을 제시하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당시는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사회적 이슈였고, 그 장기적 해결책으로 과학교육과 과학문화가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보좌하던 당시의 가장 큰 결실 중 하나는 노무현 사료관에 남아있는 298개 대통령보고서에서 <과학기술과 인류발전>을 직접 작성한 것이다.
파견업무를 마친 뒤 이제는 연구와 교육활동에 전념하고 싶었던 나는 2013년에 또 한 번의 도전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과학박물관을 주제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책임감으로 새로 개관하는 국립광주과학관에 새롭게 취직을 한 것이다. 국립광주과학관이 우리나라 대표 과학관이 될 수 있도록 나름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소명의식으로 주말마다 광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때로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내려와 고군분투 하고 있나 심각한 회의도 들었지만, 매일 매일 변하는 4계절의 자연 풍광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는 중 어느 날 문득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 50대가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인가? 그리고는 순간 깨달았다. 꿈이라는 것은 저기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꿈이라는 것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만남이며, 그 만남을 통해 쏟아내는 열정과 경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의 교감이며 그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스토리라는 것을!
이 책은 ‘꿈’이라고 불렀던 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만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어느 눈 내리는 날 오후, 〈광주MBC〉의 곽판주 편성제작국장과 ‘시선집중’ 프로그램 담당 황동현 PD가 불쑥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코너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쓴『잡스가 워즈워드의 시를 읽는 이유는』 과 『세계의 과학관』 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망설였지만 방송을 통해 국립광주과학관을 조금 더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방송을 시작했다. 생경하던 라디오 녹음을 할 때마다 등에서 땀이 솟아났지만, 당시 기관장과 동료들, 특히 광주시각장애인협회 김갑주 회장님 등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격려로 큰 힘을 얻었다.
이 책은 바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코너로 〈광주MBC〉 라디오에서 진행되었던 1년 반의 시간에 대한 기록들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특히 근래에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던 9편의 영화를 과학의 시각으로 보고, 과학자의 시선으로 읽어낸 것이다. 지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광주MBC〉 프로그램 ‘시선집중’의 모토처럼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과학의 시선으로 그리고 과학자의 시각으로 우리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위대한 쇼맨〉은 ‘특이하고(peculiar) 이상한(abnormal) 인간들’을 모아 볼거리를 제공하던 서커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에 서커스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성장과 사이버 등의 대체매체가 등장한 결과다. 사실상 자연사박물관이나 과학박물관은 ‘특이하고 이상한 동물과 식물과 광물, 그리고 과학기구와 도구와 발명품’을 모아 사람들에게 볼거리로 제시하던 공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제 과학은 더 이상 ‘특이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다. ‘평범하고(ordinary) 일상적인 것(normal)’이 되었다. 이 책은 바로 이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된 과학이 우리의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를 어떻게 디자인해야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장으로 기획되었다.
2018년 12월 광주에서
조숙경
조숙경(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