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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한국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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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새로운 독자들이 의료화가 가져오는 문제와 결과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 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맥락에서 의료화를 연구하게 되었으면 한다. 이런 연구들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는 의료화 문제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2018.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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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한국어판 발간에 따라, 한국적 맥락을 고려한 몇 가지 첨언을 하고자 한다.

 

나는 1975년부터 의료화와 관련된 주제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해왔다. ‘의료화’란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들이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는 과정을 말한다. 알코올의존증alcoholism,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DHD, 출산, 완경, 우울증, 월경전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 PMS, 수면장애, 노화, 비만, 불임, 학습장애, 발기부전, 성형수술 등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내 관심은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문제들이 어떻게 의학적으로 정의되는지, 그에 따라 어떤 결과들이 나타나는지에 있다.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천착해 온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결과물로, 2007년 처음 출간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의료화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과 개념적 진술을 담은 나의 주요 저작이다.

 

한국의 의료화를 다루고 있는 연구는 많지 않다. 하지만 사회학적 분석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한국의 의료화 상황을 폭넓게 조망하고, 의료화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구글 검색을 해보았다. 영어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어 내 문제 제기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 독자들이 기존의 증거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름의 탐구를 이어 가는 데는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의료화 연구가 한국적 맥락 위에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다음의 사례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즉 ADHD의 의료화다. ADHD는 북아메리카에서 처음 진단되어 치료가 시작됐으며, 이후 더 많은 국가들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도 ADHD의 의료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ADHD 관련 정신의학과 진료 건수가 2002년 1만6,266건에서 2011년 5만6,951건으로, 불과 10년 사이 350퍼센트 증가한 점에서 알 수 있다. 현재 학령기 인구의 4~7퍼센트가 ADHD 진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증가 추세는 정신 질환과 이에 대한 약물치료를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눈에 띄는 현상이다. 한국적 맥락과 의료 제도 안에서 ADHD 같은 질환에 대한 인식과 진단, 치료가 증가한다는 것은, 이제 한국도 의료화에 대한 분석이 절실해졌음을 보여 준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성인 ADHD의 진단이 급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런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에 따른 사회적 결과는 무엇인가?

 

자폐증 역시 한국에서 연구 주제로 삼아 볼 만한 흥미로운 사례이다. 자폐증 진단이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2000년 한 해 미국에서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동은 166명당 1명이었는데, 2015년에는 아동 45명당 1명이 되었다. 2011년 발표되어 화제를 끌었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자폐증 유병률은 38명당 1명꼴이었다(200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기준). 이는 같은 시기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미국의 경우 자폐증이 증가한 주요인은 지적장애를 자폐범주성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로 진단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과 연관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가? 아니라면, 아동 행동의 다양성을 새롭게 의료화한 또 다른 사례인가? 한국적 맥락에서 자폐증 진단의 증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정 수술의 증가 역시 의료화의 또 다른 형태다. 여러 나라에서 대중화되고 있는 성형수술의 경우, 가슴이나 코 성형은 신체의 증강enhancement 1 에 해당하는 사례로, 몸에 대한 의료화라 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널리 시행되는 수술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인의 눈꺼풀을 서구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주는 “쌍꺼풀 수술”이다. 특히 여성이 선호하는 이 수술은 서구식 미美의 기준에 따른 의료화로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제왕절개 분만이 급증하고 있는 것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의 영역에 속했던 출산에서 나타난 또 다른 의료화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제왕절개 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로, 35.1퍼센트에 달한다(제왕절개 분만율이 높다는 미국의 32.3퍼센트보다도 높은 수치다). 한국에서 출산의 의료화가 이처럼 빠르게 진행된 데는 어떤 요인이 숨어 있으며, 이에 따른 사회적ㆍ의학적 결과는 무엇일까?

 

현재 나는 의료화와 지구화를 둘러싼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메러디스 버기와 함께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눈앞으로 다가온 ADHD의 지구화: 의료화된 장애의 성장과 확대에 관한 기록”The Impending Globalization of ADHD: Notes on the Expansion and Growth of a Medicalized Disorder(Social Science and Medicine, 2014)이었다. 모쪼록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의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새로운 독자들이 의료화가 가져오는 문제와 결과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 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맥락에서 의료화를 연구하게 되었으면 한다. 이런 연구들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는 의료화 문제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1) 일반적으로 인간 증강human enhancement(문헌에 따라 ‘인간 향상’ ‘인간 강화’로도 쓴다)은 자연적 또는 인위적(여기에는 생의학적 수단 외에도, 다양한 과학기술이 사용된다) 수단을 통해 인간 신체의 한계를 잠정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기술들을 인간 증강 기술human enhancement technology, HET이라 부르는데, 이는 질병이나 장애를 치료하는 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특성과 능력을 증강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옮긴이 후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과학자였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나에게 과학자가 천직일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각종 적성검사, 성격검사 등에서도 언제나 가장 적합한 직업군으로 과학자를 추천해 주었다. 내 성격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과학자의 이미지에 들어맞았다. 대인 관계에 소극적이고, 혼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대화에 서툴며,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동식물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골방 학자의 모습.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이런 모습이 과학자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과학기술계 학자들이 가진 이런 특성이 아스퍼거증후군Aspergers syndrome의 증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스퍼거증후군은 가벼운 자폐증으로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고, 행동, 관심, 활동 분야가 한정되어 있으며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증세를 보이는 질환이다. 하지만 자폐증과는 달리, 어린 시절의 언어 발달 지연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나 빌 게이츠 같은 과학기술계 인물 중 상당수가 아스퍼거증후군을 앓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는 소위 ‘덕후’ 기질이라 볼 수도 있다. 어느새 과학기술계 사람들의 공통된 ‘성격’은 ‘증후군’이라는 ‘병’이 되었다. 아스퍼거증후군을 자가 진단해 볼 수 있는 사이트도 생겨났다. 해당 분야 전공자들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자신이 가벼운 자폐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약간 자랑스럽게(?) 내보이곤 했다. 하지만 대체로 ‘병’이라는 것은 부정적 의미를 지니며, 심지어 꼬리표로 따라 붙기도 한다. 그런데 왜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가 성격이나 개성이 아니라 ‘병’임을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물론 아직 이런 성향을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적 ‘특성’과 ‘성향’을 의학적 진단의 범주에 포함하고, 그 대상자가 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현상의 병리화에 참여하는 최근의 모습들은 분명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의료화의 한 갈래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책에서 저성과의 의료화에 대해 설명하며, 성인 “ADHD 진단은 이들의 저성과에 의학적 설명을 제공하고 지난 행동들을 재평가할 수 있게 해주며 문제의 책임을 ADHD에 전가함으로써, 자책할 일을 줄여 준다”(141, 142쪽)라고 하는 모습과 겹쳐지기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아스퍼거증후군의 ‘의료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학계 밖 사람과의 대화에 서툴고 사회적으로는 약간 이상해 보이는, 학자들의 여러 가지 특성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질병 탓이라는 ‘설명’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과학자와 아스퍼거증후군의 연관성은 어찌 보면 성인 ADHD의 의료화와도 닮았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질병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지는 것인지, 즉 질병 자체가 가지는 생로병사의 과정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의학의 역사에 관해 공부하면서 ‘징후는 언제 어떻게 병이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병’이란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경험하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다른 병원체에 감염되기도 하고, 노화 과정에서 신체 기능이 저하되기도 하며, 외부 환경에 의해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무엇을 어느 범위까지 ‘병’으로 정의할 것인지는 시대에 따라 항상 변화해 왔다. 기생충 감염처럼 지금은 명백히 ‘병’으로 분류되는 상태도 그랬다. 영조 37년 ??승정원일기??에서 영조는 회충을 토한 뒤 이렇게 말한다. “회충은 사람과 함께하는 인룡이다. 천하게 여길 것이 없다.” 사람들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회충이 ‘천하게 여길 것 없는 인룡’이라니. 존귀하신 왕의 몸에서 나왔으니 회충도 존귀한 몸이 되었던 것일까. 1950년대에도 회충은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모든 기능을 지배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절대 약을 먹어 떼어 내면 안 되는 존재라 여겨졌다. 한국에서 회충은 체내에 당연히 존재하는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회충증처럼 지금은 당연히 ‘병’으로 여겨지는 상태 역시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그저 ‘일상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의료 분야에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현대 한국은 이제 의료화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를 틀면 예능 프로그램에도 의사들이 나와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먹고 마시고 잠들고 활동하는 모든 것을 건강과 관련한 것으로 해석한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부정적인 개념에도 끝에 ‘○○병’ 같은 의학적 맥락이 들어가 있다. 2016년 기준, 한국은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가 1인당 14.6회로, OECD 평균인 6.8회보다 2배 이상 많으며 이는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생애 말기에 의료비 지출도 급격히 늘어 사망 전 3개월 의료비(7012억 원)가 그해 전체 의료비(1조3922억 원)의 절반이 넘는 50.4퍼센트에 달한다.  말 그대로 한국인의 생로병사, 나아가 삶의 전반이 의료의 범위 안에서 일어난다.

 

한편으로는 이 같이 빠르게 확대되는 의료화의 과정 때문에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다. 특히 21세기 들어 진행되고 있는 의료 영리화, 의료 민영화, 영리 병원 같은 논란들은 의료화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킨다. 때에 따라서는 이런 여러 개념이 한데 뒤섞여 사용되기도 했다. 더불어 약품 처방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다국적 제약 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나, 이에 따른 불필요한 약품 처방의 확대 같은 문제들은 의료화 문제를 자본주의의 병폐와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의료화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책들이 국내에도 몇 권 출간된 바 있지만, 피터 콘래드의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듯, 의료화가 꼭 상업화와 영리화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의료화의 과정 또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피터 콘래드는 의료화가 꼭 국가나 자본이라는 거대 조직의 동력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환자 단체 같은 대중 이익집단에 의해서, 또는 사회 전반의 문화적 변화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임을 촘촘하고 다층적으로 보여 준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단어나 병명 중에서는 현재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거나, 정식 질병 범주에서 삭제된 명칭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병명의 변천이 인식의 변화와 의료화의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므로 가능한 원문 그대로 옮기고자 노력했다. 또한 인간의 개성이나 하나의 표현형으로서의 ‘상태’condition가 의료화의 과정을 통해 ‘문제’problem가 되고 정착되면서 ‘질병’disease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상태, 문제, 병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이 역시 한국어의 문맥에서는 일부 어색할 수 있으나 가능한 원문 그대로 옮기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전히 논란이 있는 용어들, 예를 들어, 성소수자와 관련된 용어나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는 병명 등에 대해서는 되도록 성소수자 단체나 환자 단체에서 제시한 용어 기준을 따르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이론적 논의에서 시작해, 탈모, ADHD, 성장호르몬, 성적 지향 등의 사례를 통해 의료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성장해 왔는지를 설명한다. 나아가 사례들을 기반으로 의료화에 어떤 사회적 요인과 힘이 작용했고,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의료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이를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던져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피터 콘래드 저/정준호 역 | 후마니타스
인간의 문제가 질병이나 질환과 같은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사례별로 짚으며, 의학이 관할하는 영역이 늘어나게 된 사회적 기반과 함의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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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피터 콘래드(사회학자, 교수),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피터 콘래드> 저/<정준호> 역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16,200원(1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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