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한 살짜리 아이와 20년을 사는 일’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일견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반려동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다. 보호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아이의 생존이, 행복이, 모두 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불안은 건강에 관한 것이다. ‘내가 잘 몰라서, 아이를 아프게 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면 어쩌나’ 걱정을 떨치기 힘들다. 수의학 관련 서적을 보자니 용어부터 너무 어렵고, 인터넷에 기대자니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좋은 병원을 찾기도 어려운데, 반려동물을 데리고 자주 가는 건 더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책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많은 보호자들이 환호했다. 이름하여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 .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반려견의 ‘증상’을 보고 문제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쉽게 썼다. 텀블벅 펀딩 당시 목표 금액 900%를 달성했고, 요청에 따라 추가로 2차 펀딩까지 진행하며 총 1600%를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대학교 학생 세 명(공현철, 김민기, 문건기)으로 이루어진 ‘우주와 아이’ 팀과 김보윤 수의사가 함께 진행했다. ‘우주와 아이’는 “반려동물 입장에서 보호자는 세상의 전부, 즉 ‘우주’와 같다”는 의미를 담아 팀의 이름을 정하고,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서로를 더 이해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반려묘 증상 상식 사전』을 만드는 게 이들의 다음 목표다.
김보윤 수의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래이동물의료센터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에서 안과 전임수의사로 진료를 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해 반려동물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고, ‘우주와 아이’ 팀의 김민기 학생과의 인연을 계기로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호자분들이 동물병원에 오기 전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고, 병원에 급하게 가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전문가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냄비 받침으로 쓸 수 있는 책’ 만들고 싶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우주와 아이’ 팀의 김민기 친구가 수의과대학 학생인데요. 저와는 학부 때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사람과 반려동물이 어떻게 같이 어우러져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했고, 작년부터 ‘길고양이 집 지어주기’ 프로젝트도 함께 했어요. 그러다가 김민기 학생이 공현철, 문건기 학생과 같이 ‘우주와 아이’ 팀을 만들고 동물과 사랑하며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는데요. 팀원 중 한 명이 노령견과 살고 있어요. 그 친구가 제안했던 게, 보호자가 빨리 반려동물을 병원으로 데려가서 처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수의사와 같이 집필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면서 제가 참여하게 됐어요. 저도 평소에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라 너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같이 하게 됐어요.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 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은 무엇이었나요?
네 사람이 모여서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했을 때, 의학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상식 사전’을 만들자고 의견이 모아졌어요.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는데, 이전까지는 수의학 사전이 질병 별로 설명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보호자 분들은 질병 종류도 잘 모르시잖아요. 보시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죠. ‘증상’ 별로 정리가 되어 있다면 아이가 이상하다는 걸 더 빨리 알아차리고 동물병원에 더 쉽게 오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집필 과정은 어땠나요?
제가 의학적인 내용을 쓰면 다른 친구들이 감수를 해줬어요. 어쩔 수 없이 의학적인 용어를 쓴 부분이 있으면 보호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을 해주는 거죠. 그러면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바꿔줬어요. 김민기 친구가 수의학을 공부하니까 다른 두 친구가 질문을 하면 의미를 알려주고, 그렇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교정하는 작업을 같이 했어요. 대신 두 친구들은 보호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들을 정리해줬고요. 글의 내용 정리도 많이 도와줬어요. 제 이름이 저자로 올라가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이 나오기까지 세 명의 친구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펀딩이 연장 요청에 따라 2차까지 진행됐고, 총 1600% 달성됐어요. 이런 반응은 예상 못하셨을 것 같아요.
네, 이 정도까지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앞으로 이런 책들이 점점 많아질 것 같고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생각도 바뀌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어요.
지금까지 반려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책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할 거예요. 어떤 점에서 갈증이 있었다고 보세요?
일단 의학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어렵잖아요. 질병, 질병에 대한 설명, 치료법, 관련 증상, 이런 식으로 풀이되어 있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설명 자체도 어려운 것 같고요. 저도 의학 공부를 하고 있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드리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희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건 ‘이 책을 라면 받침대로 쓸 수 있게 만들자’는 거였거든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랐어요. 아이가 조금 이상한 것 같으면 바로 펼쳐서 볼 수 있도록. 또 증상에 따라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바로바로 찾아서 볼 수 있고요.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용어와 문장을 다듬었어요. 그 세 가지가 반려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맞아요. 가나다 순으로 병명을 정리해 놓은 의학 사전은 어디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하거든요. 이 책은 ‘먹을 때’, ‘볼일을 볼 때’, ‘눈’, ‘입’ 등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찾아보기가 쉬워요.
맞아요. 사실 저도 수의학 공부를 하면서 그게 불만이었거든요. 책을 읽기가 어려워서요(웃음). 병원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저희 아이가 췌장염에 걸려서 왔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가 구토를 해요, 설사를 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구토와 설사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의 목록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어야 돼요. 그 정도가 되도록 공부를 해야 하는데, 수의학 공부할 때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사전에서 ‘췌장염’을 찾으면 여러 증상과 치료법이 나오지만, 그 질병을 찾을 수 있는 연관성을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항상 그런 부분에 갈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책을 만들자고 이야기했을 때 너무 좋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보기에도 편하고,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수의사를 찾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발병 초기에 보이는 행동 증상, 신체 증상이 정리되어 있는데요. 그걸 알아차리려면 평소에 규칙적으로 체크해야 할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게 있을까요?
이미 중증 환자라면 호흡수, 심박수를 체크해 주시는 게 좋고요. 크게 증상이 없는 아이라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식욕, 식사량, 음수량, 배뇨와 배변 횟수를 체크해 주시면 좋아요. 노령견, 노령묘일수록 호흡 양상을 같이 봐주시는 게 좋고요. 예를 들어서, 평소에도 헥헥 거리던 아이라면 상관없지만, 요즘 들어 가만히 있다가도 헥헥 거리는 경우가 많아졌다든지, 기침을 한다든지, 코골이가 늘었다든지, 이 세 가지를 체크해 주시는 게 좋아요. 만약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예를 들어 설사를 한다든지 변 색깔이 이상하다든지, 그런 때에는 바로 체크하시고 병원에 오시는 게 맞는데요. 사실 평소에 체크하지 않으시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시거든요. 자주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아이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거죠?
네. 그래서 아이가 7~10살 정도 됐으면 평소에 이런 것들을 봐주시는 게 좋고요. 수의사에게 그런 정보를 주시면 빨리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만약 열 살이 넘었거나 앓고 있는 질환이 있다면 조금 더 구체적인 면을 체크해 주시면 좋아요. 심장이 안 좋다면 혀의 색이나 호흡수, 호흡 양상을 조금 더 봐주시고요. 신장이 안 좋다면 배뇨 횟수나 양을 자세히 체크해 주시면 좋고요.
혀의 색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건, 산소가 부족할 때 청색증이 나타나기 때문인가요?
맞아요. 청색증일 때 혀의 색을 보시면 보라색, 파란색으로 변하는 걸 확인하실 수 있고요. 빈혈도 혀의 색으로 아실 수 있어요. 빈혈이면 빨갛지 않고 창백해지거든요. 선홍빛이 아니라, 약간 흰색에 가까운 핑크빛이에요. 혀보다는 잇몸을 보시고 더 자세하게 아실 수 있어요. 점막 부분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정보를 주거든요. 눈 흰자를 봐도 빈혈을 알 수 있어요. 빈혈이 있으면 기본 혈관조차 없어 보여요. 너무 새하얀 것도 이상한 상태인 거예요. 또 눈을 통해서 황달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응급 상황 판단할 땐 ‘증상의 변화도’를 보세요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인지, 며칠 더 두고 봐도 되는 상황인지’ 고민이 돼요. 바로 병원으로 뛰어가야 할 증상에는 어떤 게 있나요?
호흡 문제가 제일 커요. 무슨 질병에서 기인됐든 호흡 문제는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이에요. 평소에도 호흡 양상을 살펴봐 달라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그거예요. 또 호흡 문제만큼 당장 병원에 뛰어가셔야 하는 상황은 아니더라도 급하게 오셔야 하는 게, 오줌을 못 싸는 경우예요. 많이 싸는 경우는 당장 와야 할 일은 아닌데, 아예 소변을 못 본다면 빨리 병원에 오셔야 돼요.
소변의 경우, 상황을 얼마나 지켜봐야 할까요?
하루 중에 한 번도 소변을 안 보면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될 것 같아요. 보통 하루에 한 번은 소변을 보거든요. 24시간이 지났는데 한 번도 안 싼다면 오셔야 해요. 어떤 상황이 응급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데요.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의료 지식이 없는 보호자님이 보시기에도 ‘정말 이상하다,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 것 같다’ 생각되시면 응급일 거예요. 단순히 설사를 한다면 아마 보호자님도 ‘뭘 잘못 먹었나?’ 싶으실 거거든요. 그건 응급까지는 아닐 거예요. 배뇨의 경우도 하루에 세 번 싸던 아이가 한 번 반 정도만 싼다면, 보호자님도 ‘병원에 가야 되나?’ 생각하실 거예요. 그 정도면 응급 상황은 아닌 거예요. 일단 지켜보셔도 되는 거죠. 그런데 하루에 한 번도 소변을 안 보면 정말 이상한 거잖아요. 병원에 오셔야 하는 상황인 거죠. 누가 봐도 아이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고 바이탈 사인이 확 달라지면, 그때는 응급 상황인 거예요.
증상을 일반화해서 말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일 것 같아요. 같은 병이어도 아이마다 상태가 다를 테니까요.
네. 특히 개는 다른 반려동물보다 종 간의 차이가 커요. 크기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 생김새 차이도 있으니까, 종마다 생길 수 있는 질병의 목록 자체도 달라져요. 그래서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이 책을 보면서 다른 수의사나 보호자가 ‘이건 아닌데? 우리 아이는 이렇지 않은데?’ 하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걸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고요. 그래도 일반적인 내용은 거의 다 담겼다고 봐요. 실제로 많은 보호자님들이 병원에 오기 전에 먼저 전화로 물어보세요. ‘아이가 설사를 하는데 응급 상황인가요, 병원에 가야 되나요?’ 하고 물어보시는데 ‘걱정이 되시면 오셔야 돼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죠. 직접 아이의 상태를 보기 전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니까요.
맞아요. 그런데 보호자님들은 병원에 자주 오실 수 없잖아요. 아이가 걱정되지만 출근도 하셔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연차를 내고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 건가?’ 고민되시는 거예요. 정답은 없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보호자님이 느끼시기에 ‘아이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싶으실 때는 반드시 오셔야 된다는 거예요. 약간 애매하다고 생각되시면 일단 몇 시간 정도는 두고 보시고요. 그때 증상의 변화도를 보시는 게 제일 중요해요. 얼마나 빠르게 나빠지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증상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면서 빈도가 빨라진다면 병원에 오셔야죠. 변화도, 진행 양상을 보시면 병원에 언제 가야할지 판단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아이마다 생활 습관이나 행동 방식이 다르잖아요. 수의사보다 보호자인 내가 더 잘 아는 부분도 있는 건데요. 그만큼 보호자가 수의사에게 주는 정보가 중요할 것 같아요. 반드시 전달해야 할 정보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앞서 말씀드렸던 식욕, 식사량, 음수량, 배변 배뇨 상황도 있고요. 증상이 언제 시작됐는지를 알려주시는 게 좋아요. 그 시점 전후로 다른 이벤트가 없었는지도요. 안 했던 산책을 나갔다든지, 안 가던 길을 갔다든지, 이사를 갔다든지, 화장실의 위치가 바뀌었다든지, 그런 이벤트를 알려주시는 게 중요해요. 두 번째로는 아이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셔야 되는데요. 바르는 약, 먹이는 약, 안약, 보조제 등 아이 몸에 들어가고 있는 약이 있다면 빠짐없이 알려주셔야 해요. 그리고 행동학적 변화를 이야기해주시는 게 좋은데요. 아이들이 아파서 밥을 안 먹거나 잠만 잘 수도 있어요. 그런 정보도 주시면 진단에 도움이 되죠.
구토는 얼마나 자주 하면 문제가 되나요?
일단 구토를 하는 것 자체는 정상은 아니에요. 공복일 때 토하는 ‘공복성 구토’를 가장 많이 하는데, 그걸 자주 하는 아이들은 구토를 쉽게 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셔야 돼요. 그리고 개체 차이가 있어서, 원래 구토를 잘 안 하는 아이들은 한 달에 한두 번 구토하는 것도 질병 때문에 그런 걸 수 있어요. 반면에 어릴 때부터 공복성 구토를 했던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정상이라고 볼 수 있죠. 사람도 구토를 잘 안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식했을 때 구토를 유발해서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반려견이 어렸을 때부터 키우신 분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맞는 횟수를 잘 알고 계세요.
산책 가는 걸 싫어하는 이유가 큰 병 때문일 수 있다고요.
몸이 안 좋은 거죠. 산책 가기 싫어한다는 것은 곧 활동성이 떨어지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평상시에는 산책 가자고 하면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럴 수 있어요. 전염병에 걸렸다든지 전신 질환이 있다든지, 그런 경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데요. 그게 가장 먼저 활동성이 떨어지는 증상으로 나타나요. 어딘가 아프니까 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죠. 그런데 원래 활동성이 별로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평상시 모습과 비교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나이가 들수록 집중해서 봐달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산책 가자고 리드 줄만 들어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고, 먼저 산책 가자고 떼쓰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 반응이 평소와 다르면 지켜보셔야 돼요. 그 상태가 지속되는지, 점점 활동성이 떨어지는지, 아니면 하루 이틀 그랬다가 다시 나아지는지.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하시면서 보시면 되고요.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 번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으시면 좋아요. 점점 안 좋아진다면 더 빨리 병원에 오실 필요가 있고요.
수의사의 딜레마
무심코 지나치는 증상들도 있을 것 같아요.
잠을 많이 자는 경우도 그런데요. 이 경우는 유의해서 보셔야 돼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통증 호소로 잠을 자는 경우가 많거든요. 눈이든 배든 다리든, 어딘가 아파서 잠을 많이 자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프니까 별로 안 움직이고 싶고, 누워만 있다 보니까 계속 잠만 자는 거죠. 지나치기 쉬운 증상이지만 많이 신경 써주시는 게 좋아요. 통증 반응 중에서도 큰 거니까요.
잠을 많이 자는 경우, 하루 이틀은 지켜봐도 될까요?
네, 하루 이틀은 괜찮아요. 그 정도의 통증 사인이면 당장 급한 건 아니에요. 하루 이틀 더 일찍 병원에 온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기지개를 켜는 건 예사로 넘길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그런데 복부가 불편해도 이 자세를 취한다면서요?
사실은 기지개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자세인데, 이 사인을 보호자들이 기지개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고개를 들고 척추를 안으로 숙이는 자세인데요.
요가할 때 ‘고양이 자세’랑 비슷하네요.
네, 그런 자세를 취하는 거예요. 호흡이 불편할 때도 이 자세를 취할 수 있어요. 고개를 들고 기도를 펴려고 하는 거죠. 이걸 기지개 자세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은 기지개를 켜려고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기지개를 켤 때의 자세와는 조금 달라요. 또 일반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빈도수는 낮잖아요. 자고 일어났을 때 또는 누워 있다가 일어났을 때 하고, 가만히 있을 때나 앉아있을 때는 하지 않는데요. 이 자세는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해요. 많이 움직이지 않고요. 가만히 서서 서성거리다가도 해요. 그리고 이런 자세를 자주 한다면, 점점 다른 사인이 동반될 거예요. 소화기 질환이라든지 비뇨기 질환이 같이 보일 텐데, 그러면 빨리 병원에 오셔야 돼요.
수의사이기 이전에, 보호자이기도 하시죠? 반려견, 반려묘와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반려견과 함께 산지는 12년이 됐어요. 열세 살 된 리트리버가 있고요. 반려묘는 3년 전부터 키우기 시작했어요. 지금 같이 사는 고양이는 두 마리예요.
반려견을 키우면서 성장하신 건데, 그 시간이 수의사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네, 영향이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엄청 좋아했는데, 그때는 야생동물 수의사가 꿈이었어요. 그러다가 반려견과 함께 살면서 조금 더 강아지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같이 살을 맞대고 사는 동물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게 됐고, 그게 소동물 수의사가 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수의사가 되시기 전에 ‘반려동물에 대해서 잘 몰라서’ 안타까웠던 적이 있으셨어요?
그렇죠. 수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일 때도 그런 부분이 많았어요. 예전에 토끼를 키웠었는데, 구토를 하고 아팠던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제가 따다 준 꽃사과를 먹고 탈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터넷에도 토끼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었고, 그때 처음으로 수의사가 되면 이런 동물들을 꼭 치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저희 반려견의 경우에는 열 살 때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요. 제가 수의사가 되기 전에는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에 대해서 부모님을 설득시키지 못하다가, 수의사가 되고 나서 직접 해줬어요. 저희 반려묘도 제가 다 중성화 수술을 했고요. 수의사가 되고 나서 부모님께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제가 직접 수술하겠다고 말씀 드리면서 설득이 됐던 것 같아요.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가 되셨지만, 동물들이 떠나는 모습도 많이 보셔야 하잖아요. 특히 서울대 동물병원은 중증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손을 쓸 수 없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딜레마예요. ‘나는 동물들을 치료해주려고 수의사가 됐는데 죽는 걸 더 많이 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왜 수의사가 됐지?’ 싶었어요. 보호자한테 ‘이 아이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수의사가 됐나 싶기도 하고요. 거기에서 오는 딜레마는 아마 평생 겪으면서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병원에서 당직 설 때 보면 응급 상황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아요. 가장 흔한 증상이 경련, 폐수종인데요. 경련이야 당장 생명과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폐수종은 제일 위험한 호흡 문제를 동반해요. 그런데 열에 여덟은 이미 안 좋은 상태로 병원에 오는 경우예요.
그럴 때 정말 착잡하시겠어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고, 보호자 분께 ‘아이에게 쓸 수 있는 약은 다 썼습니다, 약의 효과가 어떻게 작용될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당장 1분 뒤에 숨이 멎을 수도 있고, 약 효과가 있다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CPR 동의서를 받는데요. 정말 슬퍼요. 그렇게 저희가 손 쓸 수 없는 상황일 때는... 그런 게 저의 가장 큰 딜레마이고, 아마 모든 수의사 분들의 딜레마일 거예요. 평생 이어지겠죠.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 그런 힘든 순간은 어떻게 견디셨어요?
같은 일을 겪은 수의사들끼리의 공감대 형성과 위로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새로운 아이들이 나아가는 걸 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걸 보면 저도 힘든데, 좋아지는 아이들도 있고 보호자님들이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면 또 기뻐지니까요. 그러면서 이겨내는 것 같아요.
가을 겨울에 주의해야 할 질환들
안과 전임수의사로 일하고 계신데요. 안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안과 질환으로 인해서 죽는 아이들은 없거든요. 제가 수의사가 되고 나서 1년 동안 일반 지역 병원에서 수의사로 일했었는데, 아이들이 죽는 걸 보는 게 제일 마음 아팠어요. 가능한 그런 순간을 안 보고 싶었고요. 안과 질환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은 시력 소실과 안구 소실이에요. 안구를 적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최악인데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죽지는 않잖아요. 못 봐도 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우리 생각보다 강아지들은 보지 못해도 잘 살아요. 오감이 다 잘 발달했기 때문에 사람만큼 시력 의존도가 높지 않거든요. 물론 시각도 있으면 너무 좋지만, 시각을 잃어도 보호자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안과를 선택한 것이기도 해요.
안과를 찾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
1순위를 꼽으라면 조금 어렵기는 한데요. 응급으로 오면 대부분 궤양이에요. 각막에 상처가 난 걸 각막궤양이라고 하는데요. 안과 질환에서 가장 흔한 게 각막궤양, 백내장, 녹내장이에요.
궤양이 쉽게 생기는 편인가요?
생각보다 되게 잘 생겨요. 아이들이 무심코 비비다가 긁힐 수도 있고. 안검염이 있다거나 귀가 간지럽다거나 눈물샘 때문에 긁다가 생기는 경우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눈을 감고 긁기는 하는데, 실수라는 걸 하잖아요(웃음). 그밖에도 지나다니다가 다른 물체나 다른 강아지와 부딪혀서 생기는 경우도 있고요. 이건 보호자님들이 많이 간과하실 수 있는 부분인데, 안구건조증 때문에 생기기도 해요. 개들도 안구건조증이 정말 많거든요. 마른 땅은 갈라지기 시작하듯이, 안구 표면도 마르면 쉽게 갈라져서 상처가 생길 수 있어요. 안구건조증이 있는데 치료가 안 된 아이들은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궤양이 생길 수 있는 거죠. 또 특발적으로 개만 걸리는 궤양이 있어요. 자발적, 만성적으로 생기는 궤양인데 개에게만 주로 특발성으로 생겨요. 아직 원인은 규명되어 있지 않고요. 긁힌 상처가 그런 궤양으로 번질 수 있어요. 이 경우는 그냥 두면 낫지 않고 처치가 필요해요. 궤양은 생각보다 흔하게 잘 생기고, 특히 봄이나 가을에 건조할 때 잘 생겨요.
눈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요?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건, 눈 흰자가 빨개지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는 거예요. 이 두 가지가 일반적으로 눈이 아프다는 사인이에요. 추가적으로 눈물을 많이 흘리는 증상이 있을 수 있고요. 이런 증상만 보고 녹내장인지 백내장인지 궤양인지 염증인지 알 수는 없어요.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돼요.
반려견이 눈물을 많이 흘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유의 깊게 봐야겠네요.
네. 그리고 눈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거라면, 양쪽 다 흘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궤양이 생겨서 눈물을 흘린다면 아픈 쪽 눈의 눈물이 많이 흐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 보고도 알 수 있죠. 양쪽 다 많이 흐르는 경우는 눈물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유전적, 선천적으로 눈물샘에 문제가 있는 경우죠. 일반적으로 질환이 있어서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경우에는 반대쪽 눈과 차이가 생겨요.
그렇겠네요. 두 쪽 눈이 다 아플 가능성은 낮을 테니까요.
맞아요. 두 눈에 동시에 궤양, 녹내장, 백내장이 생기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한 쪽이 아프고 난 다음에 다른 쪽도 아픈 경우는 있겠지만요. 눈물샘과 관련한 문제는 양쪽 다 생길 수는 있어요. 그 부분도 같이 체크해 주시면 좋아요. 일반적으로 눈 질환에 있어서는 눈이 빨개지고 잘 못 뜨는 게 가장 대표적인 사인이에요.
지금 시기에 많이 발병하는 질환이 있나요? 어떤 증상을 유의해서 보면 좋을까요?
눈 쪽에서는 안구건조증이 심해질 수 있으니까 주의해서 보셔야 해요. 말씀드린 것처럼 안구건조증에 기인한 질환들이 많거든요. 궤양, 각막염, 결막염도 잘 생길 수 있으니까 아이 눈이 건조하지 않게 신경 써 주셔야 돼요. 그리고 겨울에는 산책을 잘 못 나가기 때문에, 산책할 때 오줌을 싸는 아이들이 요로기계, 배뇨기계 질환이 생길 수 있어요. 집에서 싸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전까지는요. 오줌을 참다가 약해져 있는 방광을 건드리면 그 자체가 방광염이나 결석 같은 걸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배뇨 유도를 잘 해주시는 게 중요해요. 또 겨울이라고 해서 고지방 고단백의 보양식을 함부로 주시면 췌장염에 잘 걸려요. 평소대로 먹게 해주시는 게 좋고요. 온열기 다루실 때도 조심해서 아이들이 화상을 입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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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김보윤 저/우주와 아이 편 | 북라이프
보호자가 반려견의 건강 상태를 빨리 파악해, 반려견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