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모 포털 사이트에 연애, 결혼과 관련한 영화 칼럼을 매주 한 편씩 연재하고 있다. 누구나 관심 있는 ‘사랑’이 주제인 까닭인지 인기가 아주 높... 은 건 아니고, 가끔 직접 반응을 들을 때가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 나는 과거에 사귀었던 이들과의 관계와 추억, 그리고 최근에 좋아하게 된 사람을 향한 고백과 거절 등등의 사연을 공개했다. 이를 접한 주변 사람들이 ‘이거 실화냐?’의 반응을 보여 읽어줘서 고맙기 이전 좀 당황했다. 내 딴에는 직접 경험한 사연을 실감 나게 전달하여 공감대를 사려고 했던 것인데 진짜 여부를 묻는 듯한 뉘앙스가 전혀 예상 밖으로 다가온 것이다. 굳이 수치로 밝히자면, 사실 70%, 과장 20%, 거짓 10% 정도 되는 것 같다. 수치에 거짓 항목이 포함되어 좀 놀라시려나. 그럼 이걸 ‘비밀’로 바꾸면 어떨까.
개인적인 내용으로 머리글을 연 건 <완벽한 타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에 출연한 모 배우의 음주 논란과 상관없이 <완벽한 타인>은 재미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영화가 끝나는 즉시 100% 솔직한 나로 사회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에 관해 생각의 꼬리를 늘어뜨리게 한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제목도 이와 관련이 있을 텐데 이의 ‘트리거’를 당기는 상황은 대부분 한 대씩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다.
핸드폰 속의 통화 내역와 문자와 카톡 전송 내용과 사진 등을 모두 공개해야 하는 자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남자 동창들의 부부 모임에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한 이가 “아마 여기도 핸드폰 보여달라고 하면 못 보여줄 사람 많을 걸?” 부드러운 음성 아래 비꼬는 의미를 숨겨 일종의 게임을 제안한다. “우리 게임 한 번 해볼까? 다들 핸드폰 올려봐. 저녁 먹는 동안 오는 모든 걸 공유하는 거야. 전화, 문자, 카톡, 이메일 할 것 없이 싹!”
부부 동반의 자리인지라 누구 하나 손사래 치는 이가 없다. 그랬다가는 배우자로부터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볼멘소리 들을까 봐, 게임 참여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다가 드러나면 안 되는 비밀이 공개되어 심하면 부부 관계 파탄 날까 봐, 친구 사이 멀어질까 봐, 순간 이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웃음 만연한 표정의 기저에 불안감의 파동으로 전달된다. 아니나 달라, 재앙의 원인이 될 온갖 비밀의 사생활이 봉인되어 있던 현대의 판도라 상자가 하나둘이 뭐야 우후죽순으로 열리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무한다.
이상의 소설 『실화 失花』(1939)의 첫 문장은 이렇다. ‘사람에게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나는 이 문장을 ‘비밀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해한다. 고독의 시간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래서 나와 나를 가장한 나, 두 개의 가면을 쓰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시인 아르투르 랭보가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비밀은 인간의 페르소나다. 관계의 최소 형태인 둘만 되더라도 사람은 각자 ‘나’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며 살아간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것만 같은 가족, 친구, 부부 사이라도 어느 순간, 남이라고 할 수 있는 ‘완벽한 타인’처럼 느껴지는 건 이러한 인간의 조건에서 기인한다.
<완벽한 타인>이 사생활의 비밀로 다루는 내용이 대개 신체적 결함을 숨기기 위한 수술, 배우자 몰래 나누는 떳떳하지 않은 연애 등과 같은 뒷담화의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에 비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면 이 영화의 설정이 그렇게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그와 같은 비밀이 드러날 때 행하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포장 혹은 과장 혹은 공개된 비밀을 감추려 다시금 거짓말을 동원해 만드는 비밀이다. “우리 중에 비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부인의 말에 “당연하지” 호언장담했던 남편이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을 가리키며 “최소한 이것들하고는... “ 꺼져가는 별똥별처럼 말꼬리를 늘이는 화법에는 자기 포장으로 과장된 비밀이 거짓말의 형태로 깔려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이해관계가 넝마처럼 얽힌 사회 환경에서, 더군다나 이 영화 속 핸드폰처럼 인터넷이 개인의 사생활을 반(半)강제적으로 오픈하게 하는 현재의 사회적 조건에서 꼭 솔직한 것만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연애ㆍ결혼 칼럼만 해도 그 글 속의 개인적 경험이 행여 과거 사귀었던 이들이 밝히기를 동의하지 않을 묘사가 될 수도 있다. 나의 연애담을 솔직하게 밝힌다고 해도 내가 생각했을 때 소위 ‘쪽팔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미화와 같은 거짓의 방식으로 써야 나의 사회적 자아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너무 자기변명 같나?
<완벽한 타인>의 인물들도 그럴 테도 나 또한, 밝히고 싶지 않은 내용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늘 사는 게 불완전해서 누군가의 구원을 갈구하는데 그것도 마땅하지 않아 자기 보호 차원에서 비밀을 페르소나 삼아 거짓으로 구원을 포장하고는 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아시다시피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뚜껑을 열어 상자 속에 갇혀 있던 온갖 죄악과 재앙이 세상에 퍼진다는 그리스 신화다. 모든 악들이 빠져나간 상자 속에는 오직 희망만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현대의 인간관계에서 사생활 노출과 같은 비밀의 폭로가 전달하는 삶의 교훈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관계의 거리감이다. 물론 그 비밀이 자신을 비롯하여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만한 내용이나 행위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만 차 있으면 곤란하겠지만, 여하튼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는 건 평화로운 관계를 보장하는 일종의 희망이다. 비밀은 있다! 하지만 그 비밀을 타인이 모두 알 필요는 없다!! 아, 여기까지 쓰고 나니 그래도 자기변명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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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찻잎미경
2018.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