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불완전과 상처 받기를 두려워 말고 몸으로 부딪혀 나갈 때 찾아오는 부산물이 의욕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파고들 때 의욕은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글ㆍ사진 김병수(정신과의사)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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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올해 초 개업하고 난 뒤부터 “귀찮다, 의욕이 없다, 하고 싶은 게 없다. 꼼짝하기 싫다.”는 젊은이들을 예전에 대학병원에서 진료할 때보다 더 자주 보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곳 근방에 재수학원이나 젊은 직장인이 많다는 지리적 이유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요즘 보면 청년 무기력은 사회적 전염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겉으로만 보면 공부 열심히 하고 성적도 뛰어난 학생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간 젊은 회사원이 “번아웃에 빠진 것 같다.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 같다”고 한다. 꾸역꾸역 출근해서 맡은 일을 해내지만, 퇴근하고 나면 퍼져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취준생들이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겠지만,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청년층에서 늘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일개 정신과 의사에 불과한 내가 나라의 미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할 자격은 없지만, 활기가 사라진 청년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염려가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다.

 

무기력을 호소하는 청년의 마음에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창시절부터 성적 경쟁에 시달리다 입시와 취업까지 좌절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제대로 딱지도 앉지 않은 상처에 피가 또 날까 봐 잔뜩 움츠려 있는 게 아닐까. 지금껏 큰 상처 없이 살아와서 좌절과 실패에 따르는 고통에 대해 미리 겁먹고 두려워하는 사례도 있었다. 활기가 생기는 것도 좋지만, 마음과 몸을 그냥 놔두면 상처 받을 일도 없으니, 무기력은 일종의 방어기제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 아플 일도 없잖아’라는 무의식적 소망이 의욕을 꺾어버린 것이다. 의욕이 생겨서 세상으로 파고들면 또다시 실망하고 좌절할 수 있으니까.

 

완벽주의가 무기력을 부른다. 빈틈없이 잘 메워진 카펫이 아니라 듬성듬성 구멍 뚫리고 조각 천으로 때워가며 만드는 것이 보통의 삶인데, 완벽하려는 갈망이 긴장을 부르고 실수를 만든다. 그러다 지친다. 잘 하려는 욕심이 탈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완벽하면 좋지만 현실에 완벽은 없다. 실수와 실패, 예상치 못한 좌절도 인생의 한 부분이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의욕 저하는 ‘비활동성의 덫(Inactivity Trap)’에 걸려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활동이 줄면 긍정적 정서 경험을 못 하게 된다. 의욕은 더 떨어진다. 긍정적 강화물에 접근해야 의욕이 생기는데, 지쳤다며 침대에 누워 있으면 즐거움이나 성취감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무기력은 의욕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회피 반응으로 본다.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이것은 심리학의 오랜 주제였다. 지금도 끊임없이 동기에 대한 이론이 새롭게 (정말 새로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등장하는 것도 무기력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동기를 설명하는 다채로운 이론들을 쭉 모아놓고 보면, 근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자기결정이론’의 원리가 가장 그럴듯하다. 원리는 단순하다. 스스로 결정할 것, 내재적 동기에 따라 선택할 것, 자신의 감정과 가치를 인정해주는 타인과 연대할 것, “자기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말 것. 요약하니 식상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자율성, (2)연결성, (3)자기효능감 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해서 꽤 그럴듯한 이론으로 내놓았다. 교육현장에서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자기주도학습”이란 것도 자기결정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기를 부여하려면 자신의 행동과 그 행동으로 나타날 결과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을 확신하지 못하면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한 사람들은 행동의 동기를 얻지 못한다.” (『마음의 작동법』 에드워드 L. 데시, 리처드 플래스트. 이상원 옮김. 에코의 서재)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존감이 아니라 자기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문제다. 자신의 능력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일상의 무기력으로 일반화된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한두 번쯤 들어봤을 ‘학습된 무기력’도 비슷한 원리다. 취직 시험에 자꾸 실패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애써도 어차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인식이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의욕마저 완전히 놓게 만든다. 좌절이 반복되면 무기력도 학습되는 것이다. 

 

무기력을 극복하는 치료의 원리로 내가 활용하는 것 중 하나는 “연민집중치료Compassion Focused Therapy”이다. 이 이론의 창시자 폴 길버트 Paul Gilbert는 인간의 정서 조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이 불안을 느끼면 누군가의 위로를 통해서 안정화를 이루려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충족되면 목표와 가치를 향한 행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타인과의 연결감이 결핍된 상태에서 술, 도박, 폭식 같은 즉각적인 자극 추구 행동에 몰두하면 불쾌감이 증폭되고 종국에는 무기력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자기 존재를 수용해주는 타인과의 연대감과 함께 장기적인 가치 목표에 부합하는 행동이 반복되어야 생동감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Just Do It”이다. 완벽할 수 없더라도,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상처 받고 괴로울지라도… 가치 목표에 부합하는 활동을 그냥 하라는 것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가치에 부합하는 작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기운 없는 사람에게 이 이론을 갖다 대면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기력이라는 덫에 걸렸을 때 자신을 더 무기력한 상태로 몰아가지 않으려면 기본을 지켜야 한다. 의욕이 없다고 침대에만 누워 있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기 싫다며 인간관계를 피하거나, “기운이 없는데 어떻게 움직여요”라며 저항하면 회복의 속도는 더뎌진다.

 

의욕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공부와 일로 탈진해버린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활력이 솟아나지 않는다. 불완전과 상처 받기를 두려워 말고 몸으로 부딪혀 나갈 때 찾아오는 부산물이 의욕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파고들 때 의욕은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마음의 작동법에드워드 L. 데시 저 | 에코의서재
'어떻게 해야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조건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동기부여와 보상에 관한 진지한 해법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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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정신과의사)

정신과의사이고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스트레스와 정서장애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9년 했고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