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로 수많은 독자를 잠 못 들게 했던 이도우 작가가 돌아왔다. 롱 스테디셀러가 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을 펴낸 지 14년만, 두 번째 소설 『잠옷을 입으렴』 출간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오랜 기다림에 끝에 출간된 신작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독립서점 ‘굿나잇 책방’을 운영하는 ‘은섭’과 그가 한때 짝사랑했던 동창생 ‘해원’, 그녀의 이모 ‘명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펜션 ‘호두하우스’를 운영하는 명여의 곁에서 지내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해원은 우연한 기회로 은섭의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마을의 소중한 문화공간으로 자리한 굿나잇 책방과 호두하우스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든다. 그들이 들려주는 시시콜콜하고 이따금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은 따사롭고 애틋해서 마치 절반은 꿈같고, 절반은 현실 같다.
이도우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녀의 작품을 ‘두고두고 꺼내 읽는 소설’이라 평한다. 어느 날 문득 다시 꺼내 읽으면 이전과는 또 다른 감상이 일어난다는 것. 그래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를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은섭과 해원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실컷 설렜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해원과 명여의 관계에 가슴이 저릿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지 며칠이 지난 지금은 등장인물들의 비밀스러운 사연들이 자꾸 마음을 맴돈다. 저마다 말 못할 아픔이 있지만, 자신의 상처를 탓하지 않고 기꺼이 살아가는 단단한 사람들. 아무래도 이 뜨거운 여름이 가기 전,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오래 참아온 이야기들
『잠옷을 입으렴』 이후 6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이에요. 소감이 어떤가요?
완성했다는 게 너무 기뻐요. 책이 못 나올 줄 알았거든요. 독자분들이 정말 오래 기다려 주셨기 때문에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커요. 전작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과 『잠옷을 입으렴』 의 성격이 워낙 다르다 보니 제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크게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과 ‘순수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뉘거든요. 이번 책이 출간되고 나서 많은 분들이 슬쩍 물으시더라고요. “작가님, 이건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소설이에요?”라고. (웃음)
저는 두 작품의 독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소설이라 생각했어요. 은섭과 해원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시에 모종의 사건으로 멀어진 가족, 친구의 이야기도 큰 중심을 차지해요.
이미 독자 분들께서도 결론을 내리셨더라고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모인 사이트에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가 로맨스 소설인지, 일반 소설인지 묻는 질문이 올라왔는데 어떤 분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과 『잠옷을 입으렴』 을 섞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라는 답변을 달아주셨어요. 그걸 보고 ‘와 정답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분류를 나누기보다는 ‘이도우 작가다운 소설’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오랜만에 나온 신작인 만큼,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의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리뷰나 댓글은 살펴보세요?
안 본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웃음) 모든 말씀이 다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을 찡하게 했던 리뷰가 있어요. 책을 사놓고 떨려서 페이지를 못 넘기겠다는 거예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정말 오랜만에 나왔는데, 내용이 실망스러워서 내 소중한 추억이 사라지면 어쩌지? 이 작가가 망가져서 돌아왔으면 어쩌지?’라는 애틋함과 염려가 마치 저를 걱정해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 따뜻한 애정에 코끝이 찡할 만큼 고마웠어요. 앞으로는 좋은 작품으로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싶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13년에 채널예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물 위의 책방’을 제목으로 하는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씀하셨었어요. 하나는 소설의 제목이 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주인공 은섭이 집필하는 글로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단편을 집필 중이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작업을 중단했어요. 그러다 작년에 6개월간 제주에 머물면서 이 소설을 썼거든요. 무더운 제주에 있다가 제가 사는 파주에 올라오니 일주일 뒤에 첫눈이 내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지난해의 제게는 봄, 가을이 없었어요. 덥고, 춥고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잊고 있던 단편의 제목이 불현듯 떠오르더라고요. 처음 정한 제목은 ‘밤의 벨롱’이었는데, 제목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로 바꾸고 나니 비로소 틀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덕분에 마무리를 할 수 있었죠. ‘물 위의 책방’은 은섭이 쓰는 소설의 제목이잖아요. 사실 제가 은섭에게 마음을 두고 이 소설을 썼거든요. 은섭이 책방일지에 쓰는 말들은 사실 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예상했어요. ‘작가의 말’조차 은섭의 글 같더라고요. (웃음)
은섭의 마음이 제 마음이었거든요. 그의 책방일지는 제 일기장 같은 이야기들이었고요.
이건 판타지 소설이에요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추운 겨울이에요.
해원이도, 명여 이모도 마음이 스산했잖아요. 추운 겨울왕국에서 시작해서 봄이 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어요. 실제로 소설을 쓰는 작업도 아카시아 향기가 자욱할 무렵엔 끝나길 바랐고요. 초고는 여름에 썼지만, 제목을 바꾸고 글을 본격적으로 수정해나간 건 겨울이었어요. 제주에서 올라와 일산의 작업실에서 수정 작업을 했는데, 추워도 너무 추운 거예요. 그래서 작업실에 난방 텐트를 치고 들어가 그 안에서 글을 썼어요. 그리고 바라던 대로 봄이 와서 텐트를 걷으면서 비로소 탈고를 했죠.
와, 텐트에서 쓰는 글이라니. ‘굿나잇 책방’과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그렇죠? (웃음) 덕분에 은섭이에게 더 잘 빙의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 소설은 날씨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럼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역시 은섭인가요?
쓸 때는 은섭에게 가장 마음을 줬는데,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 해원이 마음에 짠하게 남아요. 은섭은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면이 많은 인물이고, 명여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제 역할을 하는데 해원은 여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존재감이 약하잖아요. 하지만 은섭과 명여 사이에서 해원이 드러나지 않게 자리를 지켜줬기 때문에 이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어요. 많이 챙겨주지 못한 인물이어서 그런지 지금은 해원이 자꾸 생각나요.
책을 읽으면서 계속 ‘관계’에 대해 생각했어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려면 수많은 시간과 추억이 필요한데, 그 사이가 틀어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게 마음 아프더라고요. 해원과 그녀의 친구 보영, 그리고 해원과 명여 이모의 사이가 그랬어요.
소설 속에서 보영이 말하죠. “금이 가면 어때? (중략) 늘 흠 없는 우정이어야 해? 그런 게 세상에 있기나 해?(308쪽)” 사실 이 말은 저에게 하는 말이었어요. 예를 들어 무척 아끼는 꽃병이 있는데 금이 가면 어떤 사람은 잘 붙여서 쓰지만, 어떤 사람은 버리잖아요. 저는 후자였거든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친했던 사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실수로 관계가 어긋나면 상대방을 보지 못했죠. 완벽했던 사이가 틀어진 것에 대한 상처가 견디기 힘들어서 만나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것도 오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흠결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게 완벽하지 않은데 왜 사람의 관계는 늘 완벽하길 바랐던 건지…. 누군가와 다투고 화해한다는 것은 사실 스스로와 화해를 하는 것이기도 해요. 어떤 관계든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틀어지진 않잖아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용서하지 못해서 관계를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오해는 없어, 누군가의 잘못이 있었던 거지. 그걸 상대방한테 네가 잘못 아는 거야, 라고 새롭게 누명 씌우지 말라고.(132쪽)”라는 해원의 말에 공감했어요.
제가 굉장히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에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오해하셨네요”라는 말. 제 장점 중 하나는 사과를 잘한다는 거예요. 사과를 못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에요. 미안하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으니 오해를 풀어달라고 하는 거죠. 마음이 약한 거라 생각해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의 영향인지 은섭과 해원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읽는 독자들이 많지만 결코 로맨스 소설은 아니에요.
저는 이번 작품이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은섭과 해원의 사랑은 거들 뿐이죠. (웃음) 시골의 한 기와집에서 월세도 내지 않고 독립서점을 운영하는데 연애도 하고, 책방도 잘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독서모임과 북스테이도 하잖아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판타지 아닐까요? 꿈같은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마냥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꿈꿔볼 수 있고, 이번 생에서 이뤄볼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를 쓰고 싶었어요.
깊은 사랑을 믿어요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 잠들어 있던 연애 세포가 살아나는 기분이에요. 유독 사랑 이야기에 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사랑을 믿기 때문인가 봐요. 연인들의 지고지순한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등 인간과 인간 사이의 깊은 사랑을 믿어요.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냉소적인 부분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이 세상이 굴러간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으로 글을 써요.
특히 달콤한 말들이 마음을 간지럽게 해요. 은섭이 책방일지에 쓴 ‘눈동자 뒤에 그녀가 살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다. (192쪽)’ 같은 문장이요.
은섭에게 빙의해서 소설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어요.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된 상황에서, 은섭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하다 보니 저절로 그 말이 나오더라고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의 한 구절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역시 주인공 ‘이건’의 마음을 생각하다 툭 나온 말이었거든요.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걸 보면 제가 연애편지를 잘 쓰나 봐요. (웃음)
실생활에서도 이렇게 달콤한 멘트들을 잘하는 편이세요? (웃음)
애정표현을 부끄러워하진 않아요. 남편과 아이에게도 그렇고, 친구들에게도 사랑한다고 잘 이야기하죠. 우리 모두 오래 살아봤자 평생 100년도 채 못 살잖아요. 사랑하는데 뭐 하러 부끄러워하나 싶어요. 저는 순간의 진심이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이 우러나오면 “알러뷰~ 사랑해~ 좋아해~”하고 막 이야기해요. 사랑한다고 말하고 죽은 귀신이 얼굴도 편하지 않을까요? (웃음)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의 주인공들은 따지고 보면 굉장히 염세적일 수밖에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그들의 태도가 너무 따뜻해서 작가님 마음에 사랑이 많은 걸 거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사회 고발적이거나 슬픈 소설을 쓰면 너무 아파요. 아픔이 있는 사람과 함께 눈물 흘리고, 집회에 나가는 일은 할 수 있지만 그걸 제 글에 담지는 못하겠어요. 작가로서 저의 콤플렉스이자 한계죠. 그래서 쓰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걸러내고, 남은 부분을 글로 쓰려다 보니 항상 따뜻한 이야기, 해피엔딩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픔에 기꺼이 동참하면서, 그 아픔에 동화되어 작품을 써내는 작가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오히려 그 점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슬픔을 가지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아파하지 않는 인물들의 꿋꿋한 태도가 좋았거든요.
저는 순수한 사람을 사랑해요. 물정 모르고 순진한 것은 원치 않고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래선 안 되잖아요. 다만 세상이 나를 괴롭히고, 속이는 것을 알지만 기꺼이 속아주는 사람, 그래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심지 곧은 사람이 좋아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요.
이번 생은 ‘트리뷰트 인생’
아픈 할아버지를 걱정하던 승호가 책 『집에 있는 부엉이』 를 가져오는 장면에서 ‘마음이 힘들 때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이 진짜 ’인생책‘ 아닐까 싶었다’고 쓰셨어요. 작가님에게 인생책은 무엇인가요?
‘인생책’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저는 그런 책을 ‘원점책’이라고 불렀어요. 읽으면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책이라는 의미에서요. 꼭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워터멜론 슈가에서』 가 저의 인생책이에요. 그 외에 김채원 선생님, 엘리너 파존, 최승자 시인 등도 좋아해요. 모두 20대 초반에 만났던 작가들인데, 힘들 때 이 분들의 작품을 읽으면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가게 돼요. 이번 인터뷰에서 처음 밝히는데요. 사실 ‘명여’라는 이름을 김채원 선생님의 단편집 『초록빛 모자』에 실린 소설 「아이네 크라이네」에서 따왔어요. 같은 인물은 아니지만, 김채원 선생님을 트리뷰트(tribute)하는 마음을 표현한 거죠. 『초록빛 모자』가 지금은 절판됐는데 정말 좋은 책이거든요. 제발 다시 출간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제주에는 왜 내려갔던 건가요?
아들이 대학을 갔거든요. ‘이제 다 키웠으니 엄마는 글을 쓰러 가겠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가족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집중하며 소설을 쓰고 싶었거든요. 미리 장소를 정해둔 건 아니었는데 되도록 멀리 가려고 하다 보니 선택된 게 제주였죠.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에 등장하는 ‘경혜’라는 친구가 해녀시험에서 똑 떨어지고 독립출판을 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거든요. (웃음) 그 친구 옆집에 방을 얻고, 함께 독립서점을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모여 제주 신화를 읽고 공부하는 모임을 했어요. ‘시스터필드’라는 이름의 빵집을 왔다 갔다 했고요. 이런 경험이 아니었다면 아마 다른 소설이 탄생했을 거예요. 제주에 간 게 인연이었나 봐요.
작가후기에 ‘책방을 열고 싶은 대책 없는 워너비’라고 하셨어요. 정말 책방을 운영한다면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나요?
당연히 굿나잇 책방이죠. 한쪽은 만화책, 한쪽은 그림책, 한쪽은 재미있는 소설 등 제가 좋아하는 책만 갖다놓고 싶어요. 은섭의 굿나잇 책방처럼 키핑(keeping) 책장도 만들고 사랑방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까지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월세 내면서는 못해요. 아무래도 건물주가 돼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이 작품을 쓰면서 어느 정도 대리만족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리고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애썼어요. 자칫 독립서점 운영이 너무 쉬운 일처럼 보일까 걱정스러웠거든요. 소설이 완성되고 독립서점 운영자 분들이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그 어떤 유명인이 써준 것보다 영광스러웠어요. 굿나잇 책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너그러이 품어주신 것 같아 너무 고마운 마음이에요.
쓰고 싶지만, 아직 쓰지 못한 주제가 있으세요?
판타스틱한 걸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제 취향이 가득한 픽션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요. 저는 너무 재미있는 걸 보면 그 일부가 되고 싶거든요. 20대 때는 『슬램덩크』 를 읽고 내가 북산고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억울해서 엉엉 울었고, 인생책이라고 밝혔던 『워터멜론 슈가에서』 를 읽었을 때는 책을 찢고 들어가고 싶었어요. (웃음) 워터멜론 슈가 마을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투명한 관에 넣어서 꽃과 등불로 장식하는 ‘무덤조’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일을 너무 하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할 수 없어서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마 덕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는 제 삶을 ‘트리뷰트 인생’이라고 정의해요. 좋아하는 걸 평생 트리뷰트하다 가는 삶. 사랑하는 것을 더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다가 이번 생이 끝날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쓰고 싶은 말을 소설로 쓰기 때문에, 세부적인 주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걸 하나로 집약한다면 ‘트리뷰트’가 되지 않을까요? 지금 구상 중인 작품 ‘책집사’에 이런 생각과 경험을 녹여낼 예정이에요.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으면 하나요?
그냥 이도우 소설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꼭 ‘어떤 종류의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저에게 재미있고, 제 취향이 반복되는 작품을 쓸 뿐이니까요. “이도우 작가가 썼어? 그럼 뭔지는 몰라도 재미있겠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영광이겠죠.
글 쓰는 사람에겐 최고의 찬사죠.
그래서 ‘이도우 월드’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우리 편집자가 “월드라고 하기엔 작품수가 너무 적어요”라고 돌직구를 날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다시 고쳤어요. “하긴 내가 무슨 월드야. 소소하게 빌리지 하자! 하하하.” 저는 마을 이야기를 좋아해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도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잖아요. 저 다운 작품들로 ‘이도우 빌리지’ 하고 싶어요. 독자 분들이 그 안에 머물면서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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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이도우 저 | 시공사
그날은 좀처럼 오지 않고 날씨는 계속 맑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며, 맑아도 흐려도 지금 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에 대해 특유의 다정다감한 문장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전하고 있다.
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
찻잎미경
2019.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