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5일, 이스탄불.
생경한 장면이었다. 지옥 같은 시리아에서 혈흔도 탄흔 도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수수께끼 같은 사진 한 장.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벽에 둘러싸인 두 남자의 옆모습. 한 명 은 고개를 숙이고 펼친 책을 들여다본다. 또 한 명은 책장을 주의 깊게 살핀다. 둘 다 20대의 젊은이로, 한 명은 운 동복 윗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나머지 한 명은 머리에 모 자를 눌러썼다. 창문 하나 없이 폐쇄된 이 비밀 공간에서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인공의 불빛은 사진 속 장면의 생경함을 더욱 부각했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내쉬는 가냘픈 숨소리처럼.
이 사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시리아의 젊은 사진작가 모임인 ‘시리아 사람들(Humans of Syria)’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우연히 이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전설 같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다라야 한복판에 있는 비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였다. 크게 소리 내어 제목을 따라 읽었다.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 다라야라는 세 음절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다라야, 반군. 다라야, 포위된 곳. 다라야, 기아에 시달리는 곳.
나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Damascus) 외곽에 있는 이 반군 지역을 다룬 기사를 많이 읽기도 하고 쓰기도 했다. 그곳은 2011년 평화적 시위의 발원지 중 하나로, 2012년부터 시리아의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의 정부군이 포위하여 폭격한 곳이었다. 바로 그곳의 젊은이들, 총알이 빗발치고 감옥처럼 봉쇄된 도시의 지하에서 책을 읽고 책을 구하러 다닌 청년들의 발상이 나의 호기심을 사로잡았다.
이 사진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 이면에 어떤 모습이 있을까?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장면이 있을까? 나를 사로잡았던 사진 속 장면은 이제는 거리를 활보하기에 너무 위험해진 통행 불가인 시리아로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스카이프(Skype)와 왓츠앱(WhatsApp)으로 전해진 호소의 메일 중에서 그 사진을 찍은 아흐마드 무자헤드(Ahmad Moudjahed)의 흔적을 마침내 찾아냈다. 아흐마드는 이 비밀스러운 아고라의 공동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인터넷 접속이 열악하여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흐마드는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인터넷을 통해 황폐해진 자신의 마을과 무너진 집들, 화염과 폭발로 분진이 자욱한 현지의 소식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소란한 가운데서도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수천 권의 책을 구해내어 모든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곳에 모아 만든 ‘책으로 된 피난처’ 이야기도 해주었다. 아흐마드는 잿더미가 된 어느 저항자들의 도시에서 문화유산을 구해내고자 탄생한 이 프로젝트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상세히 들려주었다. 쉴 새 없이 퍼붓는 폭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허기짐에 대해서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책으로 만든 수프. 정신을 살찌우려고 미친 듯이 읽어댄 그 모든 책. 이 도서관은 포탄에 맞서는 그들만의 은밀한 요새였다. 책은 대중 교육을 위한 무기였다.
아흐마드의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 평화의 노래는 다마스쿠스의 대통령이 그토록 억압하려 애쓰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다에시(Daesh)의 지하디스트(jihadist)들이 제거하고 싶어하는 지하세력의 일원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분쟁이 영원히 지워버릴지도 모를 그들의 목소리는 반체제 혁명의 초기부터 평화적 시위의 확성기에서 터져 나온 제3의 목소리였다. 그들이 혁명에 관해 쓴 일기는 나에게 그것을 책으로 펴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위험했다. 내가 겪기는커녕 보지도 못한 일을 어떻게 이야기한단 말인가? 어떻게 제대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쌓아 올린 책 너머로, 이 젊은이들이 세운 정치적 계획은 무엇인가? 아사드 정부가 바깥 세상을 향해 쏟아냈던 말처럼, 이들은 과연 이슬람의 군사인가? 아니면 그저 억압에 저항하는 군인인가?
이스탄불에서 다라야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계산해보았다. 1,500킬로미터. 이스탄불에서 다라야에 이르는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해보았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2010년 내가 레바논 베이루트(Beirut)에 살 때 여행한 이후로 다마스쿠스에 갈 수 있는 언론인 비자를 받지 못했다. 설령 간다고 한들 포위된 수도 다마스쿠스의 근교까지 어떻게 접근하겠는가? 2015년 가을,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하려던 유엔조차도 그곳에 접근하는 데 실패했다. 터널이나 지름길, 숨겨진 오솔길이 있을까? 아흐마드는 나와 통화하면서 모든 접근 통로가 봉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이웃 마을인 모아다미야(Moadamyeh)로 통하는 좁은 길이 남아 있는데, 가장 공격적인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 길을 주로 밤에 통과해야만 했으며, 저격수와 포탄의 위협 아래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이 쳐놓은 철의 장막을 탓하며 이 이야기를 그대로 묻어야만 할 것인가? 텔레비전 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폭력의 현장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무기력한 증인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인가?
컴퓨터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동네의 모습에 눈을 뜨는 것, 그것은 현실을 부정확하게 전달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반면에 눈을 감는 것, 그것은 그 마을의 말문을 틀어막는 것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다라야에 괄호를 치고 싶어 하고, 그곳을 꺾쇠괄호에 넣어 감금하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따옴표를 달아주고 싶었다. 그 첫 번째 사진 한 장과는 또 다른 그림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금지된 마을의 대략적인 윤곽만을 그리는 데 만족해야 할지라도 이 불완전한 선의 흔적을 좇는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든 문이 이중으로 단단히 잠겼다고 해도 일러줄 말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
쓴다는 것, 그것은 부조리를 알리고자 조각난 진실을 모으는 일이다.
며칠 뒤, 아흐마드에게 전화를 걸어 내 계획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아흐마드의 대답이 궁금해 조바심이 났다.
스카이프 전화선 너머로, 먼저 긴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다라야 도서관에 대한 책을 써도 될까요.”
갑자기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위협과 공포의 밤을 지내온 아흐마드에게 이 프로젝트는 한심한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한바탕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지나가고, 아흐마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흘란 와 사흘란!(Ahlan wa sahlan, 기꺼이 승낙해요!)”
흥분에 싸인 아흐마드의 말을 듣고, 나는 화면 뒤에서미소를 지었다. 아흐마드는 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세심한 귀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아흐마드에게 한 가지를 약속했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이 세상에 나와 그 도서관에 있는 다른 책들과 나란히 놓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그것은 다라야의 살아 있는 회고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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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델핀 미누이 저/임영신 역 | 더숲
시리아 내전에 대한 살아있는 투쟁의 역사이자 기록이면서 동시에 책을 통해 자유와 비폭력, 인간다운 삶을 꿈꿨던 작은 도시 다라야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델핀 미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