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 Red
이제라도 나에게 다시 묻고 싶어졌다. “나의 색깔은 무엇이냐?”라고. 자본주의가 생산한 브랜드의 상징색에 속지 않고, 정치인들이 던져 대는 선동의 색깔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발산해내고 싶은 색깔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글ㆍ사진 김병수(정신과의사)
201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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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곡이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콜드플레이의 를 사랑한다. 차에서 시디로 주로 듣는데, 낙담의 기운이 몸에 차오를 때는 이 곡 하나만 반복해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듣는다. 내 차에 종종 타는 딸이 지겹다며 짜증 낼 때까지 틀어놓기도 한다. 멜로디도 훌륭하지만, 내가 이 노래를 사랑하는 이유는 감정의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해석되는 ‘Yellow’의 상징성 때문이다.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And everything you do
Year, they were all yellow

 

크리스 마틴은 곡을 다 쓴 뒤 옆에 있던 전화번호부책 표지에서 영감을 받아 “yellow”라고 제목 지었다고 한다. 노란색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상징성을 떠올려 보면 제목과 가사를 참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인 의미야 별처럼 빛나는 사랑의 대상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에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검정 바탕에 가장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색은 노랑이고, 당연히 밤하늘에 빛나는 별도 흰색이 아니라 라야 한다. 삶이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희망과 온기를 주는 색이며, 혼란한 세상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불안할 때 빛을 그려주는 색도 노랑이다. 금을 연상시키는 노랑은 예로부터 고귀함과 신성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동시에 노랑은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는 존재의 상징이다. 이 색은 현실에 막 던져진 겁먹은 존재를 표현한다. 유치원과 스쿨버스가 노란색인 것도 그런 이유다. 눈에 잘 띄어서이기도 하지만, 막 피어나는 생명체에게는 노란 상징을 붙여주곤 한다. 마치 봄철의 개나리나, 병아리처럼 말이다. 첫발을 내딛는 이는 어색해하고 두려워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손에 잡힐지 확신할 수도 없는 그런 희망을 향해 내던져져야 하는 존재에게 입혀진 색깔이 바로 노랑인 것이다.

 

노랑은 그래서 모순의 색이다. 빛과 온기, 희망과 고귀함의 상징이지만 약하고 겁먹고 흔들리는 존재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1774년 9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발표된 뒤, 주인공을 따라 자살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노랑의 모순적 상징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2-3년 전에 한 고등학생을 꽤 오랜 기간 동안 상담했다. 그 학생과의 만남은 정신적 일식을 경험하는 것과 같았다. 달이 태양을 가릴 만큼 지구 근처로 가까이 다가와도 그 강렬한 빛을 절대 다 막지 못 하고 본영(umbra)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마음의 고통이 아무리 막아 서려 해도 그의 내면에서 뻗어 나오는 독창적인 강렬함은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무엇인가를 창조해낼 게 분명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빈약한 나의 언어로는 다 묘사할 수 없는 독특함이 언젠가 예술로 승화될 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섯 살 무렵 아들에게 꿈이 뭐냐, 라고 물었는데 아들은 ‘나는 커서 빨강이 될 거예요’라고 하더군요.”

 

어린 아들이 초롱한 눈빛으로 “빨강이 되면 소방관도 될 수 있고, 장미꽃도 될 수 있고, 피도 될 수 있고, 불도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빨강이 될 거예요”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그 학생은 나에게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술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고, 감각적이던 그 학생이라면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빨강이 될 수 있다면 세상에 못 이룰 일이 어디 있으랴. 빨강은 열정과 에너지,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의 상징이 아닌가. 의사, 변호사가 아니라 빨강이 되고 싶어 했던 그 학생은 지금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다섯 살의 나는 어떤 색이 되고 싶었을까?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꾸준히 파란색을 좋아했다. 셔츠도 파란색, 아우터도 파란색이 제일 많다. 심지어 바지도 짙은 청색만 잔뜩 사들였다. 어찌 보면 옷장에 있는 그 많은 청바지도 파란색이기 때문에 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흰색 셔츠만 입고 다니고, 바지는 짙은 회색만 산다. 어느새 나의 색깔이 변해버렸구나. 서글프지만, 색깔이 변하듯 나도 변했다.

 

이제라도 나에게 다시 묻고 싶어졌다. “나의 색깔은 무엇이냐?”라고. 자본주의가 생산한 브랜드의 상징색에 속지 않고, 정치인들이 던져대는 선동의 색깔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발산해내고 싶은 색깔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김중혁 작가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모든 게 노래>와 <미스터 모노레일>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내 책장에 꼽혀 있는 두 권의 책 표지 색깔도 모두 “Yellow”였다. 그것도 밝은 샛노랑. 아, 마흔을 훌쩍 넘겼는데 나는 아직도 새내기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여전히 빛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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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과거의 우리가 응답할 수 있다면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모든 게 노래』  김중혁)


 

 

모든 게 노래김중혁 저 | 마음산책
자신과 남 사이에서, 꿈과 실패 사이에서, 초조함과 인내 사이에서 고민할 청춘의 일상을 큭큭거리는 웃음과 느낌 있는 노래들로 따뜻하게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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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정신과의사)

정신과의사이고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스트레스와 정서장애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9년 했고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