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1일이 되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새로운 일기장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작년 일기장에 적어 놓은 버킷리스트와 비교하면서 달성한 목표는 지우고 이루지 못한 목표는 ‘올해는 꼭 해야지’ 다짐하며 새 일기장에 다시 적어 내려가는 게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 그중에서도 몇 년째 지워지지 못하고 해마다 목록 제일 위쪽에 또다시 적히고야 마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래된 목표가 있다. 바로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장면 속 그 장소 찾아가기’.
그런데 내가 몇 년째 이루지 못한 그 일을 부러우리만치 멋지게 해낸 사람을 만났다. 무려 아홉 편의 영화 속 장면들을 찾아 떠난 작가는 주인공이 처음 만난 기차역, 노래를 부르던 길거리, 첫키스를 나누던 관람차, 끊임없이 대화가 오가던 공원 등을 거닐며 현실과 영화 속 시간을 사진이라는 한 장의 순간에 담았다. 그렇게 여섯 개의 도시에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영화와 여행의 감동을 동시에 만끽하고 돌아왔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곱씹으며 길 위 곳곳에 놓인 순간들을 마주한 작가를 따라가는 동안 나에게는 아끼는 영화들을 몇 번이나 돌려보고 또 돌려봤을 작가의 모습이, 그중에서도 또 좋아하는 장면들을 고르고 골라 정성스레 스틸컷을 준비했을 모습이, 행여나 스틸컷이 구겨지고 찢어질까 조심조심 다루는 모습이, 영화 속 장면과 눈앞의 장소가 겹쳐졌을 때 마음에 소용돌이치는 무수한 감정을 느끼며 웃음 짓고 감동하고 눈물 흘렸을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좋아하는 것을 좇아 그 흔적을 남기는 일, 내게 그런 작가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욱 영화처럼 다가왔다.
깊이 아끼는 영화를 마음에 품고 리스본, 비엔나, 파리, 런던, 더블린, 헬싱키 거리를 걸으며 써 내려간 작가의 글은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공감을, 위로를, 추억을,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그 덕분에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책을 작업하는 동안 나는 때로는 1990년대 비엔나에, 때로는 비 내리는 파리의 밤에, 때로는 노을 지는 런던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재생되는 시간만큼은 주인공과 나의, 타인과 나의 시간이 일치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의 감정을 따라가며 나 또한 영화 속에 있는 듯했다.
작가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낭만을 꿈꾸며 기차에 오르고(<비포 선라이즈>), 할리우드 배우와 부딪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상상을 하며 카페로 향하고(<노팅 힐>),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꿈꾸며 홀로 거리를 걷는(<미드나잇 인 파리>) 이유는 단 하나다.
“영화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것, 그러니까 당신과 나 사이의 시차를 줄이는 것이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이며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볼 때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바란다.” (5쪽)
황유라(상상출판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