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불안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은 많이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이물질을 내 몸 안에 갖고 있어서 빨리 빼냈으면 하는데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잘 안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불안은 훨씬 커져 버린다. 작은 불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집과 마을 전체로 퍼지는 큰불이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정확히 보면 불안은 내가 만들어서 내가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잠잠하게 만드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시험을 앞두고 적당한 긴장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긴장을 너무 안해도 문제다. 긴장은 내 안의 에너지를 적당히 높은 수준으로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돕는다. 다만 그 반응이 필요보다 지나치게 강하거나,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상당히 위험한 상황으로 인식할 때 문제가 된다. 바로 그것이 불안한 상태다. 즉, 불안은 실제는 없어야 할 이물질 같은 것이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해 대응하는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인식과 반응의 조절실패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는 하지만 정작 불안해지면 힘들다. 불안해져서 예민해지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다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신경을 쓰게 되니, 불안하다는 걸 인식하는 것 자체가 더 불안해지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든 불안을 빨리 줄이기 위해 불안의 핵심에 포커스를 한다. 문제는 그럴수록 불안은 더 커지기 쉽다는 것이다.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물건같이 증식하기 일쑤다. 열이 갑자기 날 때는 해열제를 먹고, 급체에 걸리면 바늘로 손가락에 피를 내는 것으로 응급조치를 하듯이 불안할 때도 잘 듣는 응급키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응급키트 박스 안에는 해열제, 소독약, 붕대, 반창고와 같은 간단한 도구들만 들어있지 왜 열이 나는지,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세균이 증식하는 원리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일단 닥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도 그런 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두껍고 이론적인 내용보다 가볍고 실용적인 실천법만 다룬 책.
최근 딱 맞는 한 권을 발견했다. 멜리사 티어스의 『10분안에 끝내는 불안퇴치 기법』 이다. 부제는 ‘뇌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이다. 저자는 미국 뉴욕의 최면전문가이자 라이프 코치라고 하며 이론적 기반으로 NLP을 이용하기도 한다.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는 두뇌의 사용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태생적으로 이론적 접근보다 행동과 말하기 방법을 실천하게 하고, 이것이 뇌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는 기법이다. 우리나라에도 NLP를 가르치는 곳이 여럿 있는데, 이 책의 번역자도 최면과 NLP의 한국 전문가들이다.
이 책에는 꽤 쓸만한 실용적 방법들을 딱 20가지만 선정해서 소개하고 있다. 문고판 크기에 100페이지 남짓으로 포켓에 쏙 들어갈 정도의 분량이다. 아주 쉽게 실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법을 2-3페이지에 걸쳐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뇌과학적 이론도 좌반구와 우반구 같이 매우 고전적인 이해하기 쉬운 뇌 기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불안을 스스로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불안이란 불씨를 확 키우는 촉발 자극을 중화시키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무술을 배우는 것과 비슷해서 많이 연마할수록 남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게 되듯이, 이 방법을 잘 알게 되면 불안 자체를 맞닥뜨릴 일이 없어지리라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방법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만일 불안한 대상이 있다면 그걸 작은 공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공을 하나 손에 쥔다. 손에 쥔 공을 양손으로 번갈아 오간다. 그렇게 하면 뇌의 양반구가 자극을 받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몸의 중앙선을 충분히 넘나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분정도 오고간후 심호흡을 하고 불안을 체크해보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뇌의 양반구가 자극되어 혈액과 전기자극이 뇌 전체로 퍼져서 불안과 연결된 신경세포의 구조가 해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안해서 똘똘 뭉친 강한 신경망이 느슨해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음은 NLP의 공동 창시자 리차드 벤들러가 제시한 기법으로 몸 안에 돌아다니며 갇혀있는 불안을 빼내는 방법이다. 불안이 내 몸 안에 있어 그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해서 움직이면 견딜 수 없이 불안이 내 몸 안을 휘젓고 다닌다고 느끼게 된다. 이때 이 불안이 몸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는지 느끼면서 손을 이용해서 방향을 따라가게 한다. 그리고 난 다음, 그 불안을 빼내기 위해서 몸 안에서 움직이던 방향의 반대로 회전을 시켜서 손의 움직임을 반대로 바꾸면서 서서히 불안이 나가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불안이 확 올라오면 심상 안에서 불안을 다루는 다이얼이 있다고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이제 수치가 10인 다이얼을 서서히 4나 5 정도로 줄여보는 상상을 한다. 내지는 불안을 주먹 안에 가득 모은다고 상상하면서 꽉 쥐었다가 손에서 흘러내리게 하거나, 바닥으로 떨어뜨린다는 상상을 한다. 이는 바이오피드백을 이용한 자율신경계 이완훈련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이렇게 무척 단순하고 적용하기 쉬운 기법들이 20가지 소개되어있다. 몇 가지를 해보고, 익히면 꽤 유용하게 써먹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몇 가지는 진료실에서 적용을 해보았는데 꽤 설득력이 있었다. 저자도 실험해보고 어떤 기법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체험해보라고 조언한다.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더 순조로운 인생이라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도구상자를 갖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아이, 콤플렉스, 무의식적 갈등과 같은 불안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어렵고 먼 길일 수 있고, 그 과정에 불안은 더 심해질 위험도 있다. 난 일시적 불안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이 그 먼 길을 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해열제나 위장약이 찬장에 보관되어있으면 한밤중에 아플 때 냉큼 꺼내 쓸 수 있어 든든하듯이, 이런 책 한 권 정도 미리 읽어두고 서가에 꽂아두는 것은 실용적 측면에서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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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안에 끝내는 불안 퇴치 비법멜리사 티어스 저 / 설기문 역 | 학지사
불안을 퇴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불안에 대해서나 불안 퇴치에 대해서 거창하고 대단한 이론을 소개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