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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친구의 말에 나는 주섬주섬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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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즐거우라고 대책 없이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소설을 써본 적 없는 나지만 실제의 나는, 고작 두 돌 지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부디 술 먹고 담배 피우던 공선옥 소설 속 엄마가 이제는 많이 편안해졌기를 밑도 끝도 없이 바라는 환상주의자이기도 하다. (2018. 04. 02)

김서령의 우주 서재.jpg

          언스플래쉬

 


나에게는 오래 전 참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내가 스물일곱 살이었나, 하던 옛날 얘기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네 살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돼지갈비집을 했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 온돌방으로 꾸며진 식당 한켠에 조그만 전기방석 하나를 깔고 장난감이랑 과자 한 봉지 쥐여준 채 재우고 그랬다. 가끔 놀러가면 한구석에서 그렇게 잠든 녀석이 참 안쓰럽기도 했다. 네 살 그 녀석은 잔망스럽게도 이 가게 저 가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참견도 하고 그랬다. 옆집 커피숍에 들러선 문 빼꼼히 열고 주인에게 “이모야, 오늘 장사 좀 했나?” 묻기도 하고 공짜로 아이스크림도 얻어왔다. 식당 금고에 손을 대다 제 아빠에게 엉덩이를 잔뜩 맞기도 했다.

 

식당은 밤 열한 시가 되어야 마감을 시작했고 뒷정리를 끝내고 나면 열두 시 반, 한 시였다.


“우리 어디 가서 술 한 잔 하자. 스트레스 받아 죽겠다.”

 

친구의 말에 나는 주섬주섬 따라나섰다.


“니네 가게에 술도 있고 고기도 있는데 뭐하러 돈 주고 딴 델 가?”


“지랄한다, 가시나. 장사 해봐라. 내가 술 꺼내묵고 내가 안주 만들고 하는 게 제일 싫다. 나도 남이 채려주는 거 먹을란다.”

 

그러면 우리는 조개구이집엘 갔다. 친구는 잠든 아이를 들쳐업고 택시를 탔다. 조개구이집 의자가 편할 리 없어서 좁다란 벽쪽 붙박이 긴 의자에 아이를 누인 뒤 친구는 재킷을 벗어 아이를 덮어주었다. 소주 한 잔 한 잔 들어갈 때마다 그녀는 한숨도 쉬었고 때로 울기도 했고 욕도 했다.

 

“그 새끼가 그래 쫄랐다 아이가. 잠깐만 쉬었다 가자고. 내 스물한 살 때. 내 그 여관 이름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알긴 알았지. 그게 무슨 말인지. 속았다는 게 아이라 괘씸하잖아. 지랑 내랑 아홉 살 차이 아이가. 지도 양심이 있으면 그래 어린 가시나는 건드리지 말아야지. 안 그나? 이기 뭐꼬, 사는 게 힘들어 죽겠다. 내보다 공부 몬하던 가시나들도 지금 다들 잘 사는데.”

 

네 살 아이는 종종 뒤척였고 그럴 때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니도 알겠지만 우리 수야 아빠가 잘 생깄다 아이가. 내 솔직히 그거 하나 땜에 산다. 그냥 보면 흐뭇한 기라. 아, 저 남자가 내 남편이구나, 하면 기분도 좋고. 옛날에 회사 댕길 때 가시나들이 수야 아빠만 보면 환장했었다.”

 

나는 친구의 남편이 그닥 잘생긴 얼굴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끄덕끄덕 동의해주었다. 그렇게 둘이서 소주 두 병쯤 비우고 친구는 다시 아이를 들쳐업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멀리 보이는 모텔 간판을 가리키며 막 소리를 쳤다.

 

“저기다! 저기 아이가, 수야 아빠가 내 끌고 갔던 데. 미친 새끼, 잠깐 쉬었다 가자고 해놓고서는.”

 

그 수야가 벌써 대학생이 된단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아빠랑 똑같이 자랐다. 그 시절, 내 친구는 아이를 들쳐업은 채 나와 같이 조개구이집에서 소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그 때의 강물을 어찌 건넜을까. 새벽의 조개구이집에 아이를 뉘어놓고 재킷으로 덮어준 뒤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들기며 차가운 소주 한 잔 들이켜는 시간마저 없었다면. 다들 견디고, 지키고, 도닥이는 시간인 것을.

 

새삼 꺼내보는 공선옥의 『내 생의 알리바이』 , 그 안의 단편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어느 지친 엄마가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겨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옆자리 남자가 건네는 술을 받아마시고 또 추근거리는 그의 손길을 애써 피하지도 않는다. 독자들 즐거우라고 대책 없이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소설을 써본 적 없는 나지만 실제의 나는, 고작 두 돌 지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부디 술 먹고 담배 피우던 공선옥 소설 속 엄마가 이제는 많이 편안해졌기를 밑도 끝도 없이 바라는 환상주의자이기도 하다.


 

 

내 생의 알리바이공선옥 저 | 창비
`나`는 태림과 무관한 사람이란 알리바이로 "나는 태림을 사랑하지 않았다"란 말을 반복해서 되뇝니다. 여기서 태림은 `나`의 또다른 모습으로 아픈 과거를 지우고 새롭게 살고 싶은 처절한 `나`의 모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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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서령(소설가)

1974년생.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어디로 갈까요』와 장편소설 『티타티타』, 그리고 산문집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를 출간했으며 번역한 책으로 『빨강 머리 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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