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게 어렵다면 이런 차선책 어떨까?
스타일로 보자면 경제경영코너의 자기계발서와 인문 코너의 심리철학서적의 경계쯤에 있는 책이다. 양쪽 독자들이 모두 좋아할만한 면이 있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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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해서는 안될 것’을 하지 않는 것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나 쉽지 않다. 난관에 처해서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는 주술을 외우는 정신 승리를 하는 것도 행복의 능력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극단적 주관주의자다. 행복이란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면이 있다. 나 혼자 행복하다고 인식을 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남들도 저 사람은 지금 행복하겠다고 여겨야 비로소 행복은 완성된다. 만일 둘 사이의 간격이 지나치게 크다면 그때가 바로 정신 승리를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내가 행복한 것과 남들이 보기에도 행복한 것까지 다 얻으려 하게 되고, 최고의 행복을 위한 길은 멀고 험해 진다. 세상을 오래 살면 살수록 아는게 많아질수록 더 그러하다.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행복은 내가 아닌 극히 적은 사람들만 얻을 행운의 영역이라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할까. 역발상이 필요하다. 행복해 지는 것이 어렵다면, 최악의 상황인 불행만은 피해보자는 것이다. 이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해야 할 것을 다 하는 것보다 ‘해서는 안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보험을 드는 것 같다. 최선의 삶을 살수는 없어도,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질 위험은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도 마찬가지다. 나도 모르게 빠지게 되는 선택과 마음가짐의 오류들을 알고 피해나갈 수 있다면 불행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나왔다. 롤프 도벨리의 『불행 피하기 기술』 이다. 저자는 스위스의 경영학자이며 실제 여러 회사의 CEO를 역임한 경영자였다. 지금은 지식교류커뮤니티를 운영하며 활발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노이에취르허차이퉁>이란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52개의 짧은 글을 묶은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의 도구 상자를 갖고 있으면 고민과 갈등의 순간에 적시에 그 상자를 열어 영리하게 돌파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각 도구는 세상을 더 객관적으로 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감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후회할 만한 선택을 할 확률을 많이 줄인다. 이런 방식이 곧장 좋은 삶을 보장해주지는 못해도(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 평균적으로 단순히 직관에 의존할 때보다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지혜로운 행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이론적 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사회심리학, 휴리스틱 연구, 행동경제학와 같은 다양한 심리연구들이다. 두 번째는 스토아 철학, 세 번째는 워런 버핏, 찰리 멍거와 같은 성공한 투자자들의 말이다. 이 세 가지가 적절히 섞여있으면서 매 장의 앞자락에는 인상적인 사건이나 일화가 소개되면서 우화적인 원작 일러스트가 함께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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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고 바로바로 수정하기

 

저자가 말하는 인생의 팁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먼저 세팅과 수정의 문제다. 인간의 본성은 한 번 정한 세팅을 고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맨 처음 가능하면 최적의 세팅을 하려고 그 다음에 수정을 해야 할 일이 벌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저자는 그런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만일 삶이 계획대로 어떤 방해도 없이 흘러갈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 유감스럽게도 삶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맞닥뜨릴 수 밖에 없고, 세상의 변수를 개인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부가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불어오는 태풍을 예측하거나 막을 수 없듯이. 그런데도 인간은 설정의 중요성은 과대평가하고 수정의 필요성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수정을 계획상의 실수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수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수정은 바로바로 하는 것이 완벽한 설정의 프레임에 갇혀 고생을 하는 것보다 낫다. 하나의 설정으로 시작해 계속해서 조절하고 조율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란 긴 항해다.

 

두 번째는 좋은 걸 추구하는 것보다 위험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오래된 경비행기를 모는 것이 취미다. 비행기를 운항하면서 여러 가지 삶의 지혜를 깨닫기도 하는 것 같다. 그는 비행기를 몰면서 위험해질 일을 제거하는 것에 집중하면 결국 좋은 삶을 얻을 공산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행기를 몰면서 곡예비행을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추락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실제 많은 연구자와 철학자가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규명하려 애썼으나 구체적인 것을 찾는 것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술, 마약, 만성스트레스, 긴 통근 시간, 외적 평가에 연연하기와 같이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밝혀 져있다. 그러니, 이런 요소를 피하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노력을 해보라는 것이다. 가치투자자 찰리 멍거는 같은 맥락으로 “대단해 지는 건 고사하고 멍청해 지지 않으려고만 노력했는데 이런 태도가 장기적으로는 얼마나 큰 성공을 가져왔는지 놀랍다”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가 보수적일지 모르나, 장기적이며 현실적인 측면에서 좋은 삶을 가져올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알고 보면 90%는 거절해도 되는 일

 

세 번째는 거절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부탁에 덜컥 “네”라고 했다가 감당을 하기 어려워서 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거절못함 병’에 걸렸다고 하기도 하는데, 부탁을 하는 사람은 간단한 일,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상보다 시간도 더 들고, 품도 들고, 내 일의 흐름이 깨지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다. 작은 호의라고 여기고 했다가 진만 빠지기 일쑤다.

 

이런 상황은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제안에 대해 답을 하기 전에 무조건 5초를 세고, 이 제안을 거절해도 큰 손해가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때는 과감히 거절을 하라고 말한다. 알고 보면 90%는 거절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남의 부탁을 쉽사리 거절 못하는 이유는 동물의 세계에서부터 파생된 사회생활의 상호이타주의에 기인한다. 누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도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고, 언젠가 내가 위험에 빠질 때 그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덕분에 즉흥적으로 수락을 하기 쉬운 게 사람의 기본 마음가짐이다. 이를 생물학적 반사작용이라 지적하면서 5초간 생각하고 90%는 거절해도 된다고, 그래야 나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그 반대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능력의 범위를 알고 그 안에 머무를 줄 아는 것, 중요한 것은 능력의 범위를 아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평소 진짜 전문가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세상의 모든 사건사고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는 전문가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에 차서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나 자신이 그런 코멘트와 해석을 요청 받은 적도 많았기에 어떨 때에는 얼굴이 후끈거릴 때도 있었다. 자기애와 자신감이 강해질수록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욕망이 강해질 수 있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능력의 범위를 정확히 알고, 그 한계 안에서 꾸준히 덜 바쁘게, 덜 분주하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다. 그게 불행해지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만일 자랑할 만한 성공을 했다면, 그걸 자랑하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저자는 52가지 삶의 팁을 알려주고 있다. 매 꼭지는 저자 본인의 경험, 역사적 사건이나 일화로 시작해서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입증할 이론, 실험을 제공하면서 구체적 생각의 방법론을 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스타일로 보자면 경제경영코너의 자기계발서와 인문 코너의 심리철학서적의 경계쯤에 있는 책이다. 양쪽 독자들이 모두 좋아할만한 면이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겠지만. 나도 52가지 이야기 모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목차에서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하나씩 열어서 읽는 방식을 권하고 싶다. 불행을 피하는 것도 내게 당장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알아나가면서 위험요소를 제거해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불행 피하기 기술롤프 도벨리 저/유영미 역 | 인플루엔셜
“좋은 삶을 살고 싶은가? 간단하다. 불행은 피하고 행복은 늘려라! 이 간단한 방법이 어려운 것은, 많은 이들이 정작 불행을 줄이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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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8.02.06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칼럼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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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