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하게 옷을 몇 겹 껴입고, 털모자와 목도리, 포근한 장갑을 챙깁니다. 걸음조차 편하게 내딛을 수 없는 통통한 부츠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발자국을 냅니다. 하얀 입김이 흩어지고, 어디선가 놀란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순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하러 가는 산타의 마음을 느낍니다.
모든 것이 반갑습니다.
조용한 겨울 새벽 공기. 이것이 제가 늘 간직하고 싶은 세상의 한 조각입니다.
안녕하세요, 겨울의 생선 김동영입니다. 깊어가는 겨울,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아니, 산타의 선물을 전하는 마음이 좋겠네요. 오늘 방송이 잠깐이나마 여러분께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장수연 PD 편>
김동영 :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장수연 : 저는 MBC 라디오의 장수연 PD라고 하고요. 지금은 MBC FM4U에서 <미쓰라의 야간개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생선 작가님이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시는 중이시죠.(웃음)
김동영 :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장수연 : 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웃음)
김동영 : 제가 사실 MBC에서만 무시를 당하거든요. 그런데 MBC 사람이 오니까(웃음) 걱정을 좀 했었고요. 장수연 PD를 알게 된 게, 이분이 예전에 <써니의 FM데이트>를 했었어요. 그거 하면서 회식 했을 때,
장수연 : 아아, 제가 그게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제가 왜 그랬을까. 그때 생선 작가님의 가게에 회식을 하러 갔는데요. 제가 노래를 하겠다고 진상, 진상을…(웃음)
김동영 : 이 분은 술을 드시면 노래를 하시는구나, 했어요. 사실 방송 시작하기 전에 잠깐 이야기할 시간이 있어서 책 잘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되게 시큰둥한 표정으로 “3쇄 찍었어요.” 그러시더라고요. 바깥에서 얘기했는데요. 찬바람이 쌩쌩 불었는데 제 마음에도 찬바람이 불더라고요.(웃음) 어떠세요, 기분이?
장수연 :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인데요. 책 내고 나서 그동안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되잖아요. 인터뷰를 한다든지,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을 일도 있고요. 그게 한 번도 가지 못한 낯선 땅에 도착한 느낌이에요.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기분이라서 긴장도 되고, 재미있기도 하고, 겁도 좀 나고, 그런 것 같아요.
김동영 : 근데 사실 저는 장수연 PD의 글을 ‘브런치’부터 읽었거든요. 누가 그걸 보내줬는데 그게 노키즈 존이었어요.
장수연 : 이렇게 센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거예요?(웃음)
김동영 : (웃음) 꼭 여쭤보고 싶었어요. 머리로는 이해가 가거든요. 근데 마음으로는 뭔가 불편해요. 그 다음부터 자세히 봤죠. 장수연 PD에게 이런 투사적인 면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바로 그 글. 큰 논란을 일으켰죠.
장수연 : 그 글 때문에 태어나서 제일 큰 욕을 가장 단기간에 많이 먹은 것 같은데요. 얼마 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 결정이 나왔잖아요. 노키즈 존은 차별이라고요. 노키즈 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죠. 식당 운영하시는 분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실 수 있고요.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는 분들 중에는 조용하게 방해하지 않고 공간을 누리고 싶은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경우 노키즈 존, 취향의 문제 아니야? 라고 하실 수 있는데요. 찬성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그 입장을 가지시는 건지 묻고 싶어요. 노키즈 존이라는 건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해 배제를 하는 거잖아요. 아이도 사람이죠. 그 사람을 전면적으로 배제한다는 의미거든요. 흑인을, 장애인을, 유태인을 배제한다는 것과 같은 거죠. 이게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김동영 : 사실 저는 제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곽정은 씨한테 글을 보여줬어요. 그 친구는 되게 잘 쓴 글이라고 했어요.
장수연 : 반갑네요. 관련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넬슨 만델라의 말인데요. ‘한 사회가 아이를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약자를 다루는 태도가 그 사회의 수준이잖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문제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또한 제일 폭력적인 방법이죠. 다른 방법을 궁리하는 게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거겠죠.
김동영 : 궁금한 거 있어요. 유교적 사상으로 보면 성악설과 성선설이 있잖아요. 어느 쪽이에요?
장수연 : 갑자기요?(웃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요. 저는 성선설을 믿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쯤에 아빠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었어요. 제가 보기에 저희 아빠는 인생이 잘 안 풀리시는 분이었거든요. 아빠한테 “세상에 좋은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5대5? 6대4?”라고 물었는데 아빠가 “에이, 9대 1은 돼.”라는 거예요.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고요. 저는 아빠가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게 놀라웠어요.(웃음) 그렇게 많은 배신과, 인생의 농락을 당하신 분이 그렇게 믿고 계시니까요.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요.
저희 엄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셨어요. 아이들을 볼 일이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아이들 세계를 보면 어른들 세계의 원형이에요. 감추지 못하는 악의도 물론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추지 못하는 선의도 있어요. 이건,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김동영 : 그냥 궁금했어요.(웃음) 자, 책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광화문 한가운데, 시내 중심에 있는 카페, 여자화장실. 그곳 쓰레기통에서 임신테스트기를 발견해요. 누군가 했던 거죠.
장수연 : 그렇죠. 화장실 쓰레기통은 대개 흰색 휴지밖에 없잖아요. 임신 테스트기 상자가 분홍색이거든요. 눈에 띄어서 봤더니 그거더라고요. 그때 저는 둘째를 가졌을 때였고, 육아휴직 중이었어요. 책 읽으려고 잠깐 들어간 카페였는데 화장실에 버려진 임신테스트기 상자가 있는 거죠. 다시 자리에 와서 읽던 책을 펼쳤는데 책이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더 이상 머릿속에 뭘 넣을 수가 없겠다 해서 그때 느낀 복잡한 마음을 휴대전화에 썼어요. 그걸 페이스북에 처음 올렸고요. 그 글을 다듬어서 브런치에 올린 게 제 첫 글이었죠.
김동영 : 저도 화장실 많이 청소해봤거든요. 여성용품을 많이 발견하는데 그럴 때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임신테스트기는 더 상징적인 거잖아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지죠.
장수연 : 이건 불안한 마음인 거예요. 빨리 해야 되는 거예요. 보통 임신테스트를 권장하는 게 아침 첫 소변이거든요. 그게 정확하다고 해요. 그런데 이건 지금 빨리 확인해야 하는, 불안함을 참을 수 없는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그 사람이 이 카페 안에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울렁거리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말 걸고 싶은 마음 있잖아요. ‘그렇게 불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건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김동영 :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라는 글을 쓰셨잖아요. 흔히 하는 이야기인데, 정말 그래요?
장수연 :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기보다 어른이 될 기회가 더 많이 열린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시야가 열리는 건 맞거든요. 아이의 눈높이라는 건 100센티미터 미만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거잖아요. 시야가 되게 달라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길거리 흡연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게 돼요. 유모차가 갈 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길을 머릿속으로 파악하게 되고요. 유모차가 가면 휠체어도 갈 수 있어요. 아이를 키우면 약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게 되죠. 제 경우 서울에 살고, 이성애자고, 4년제 대학 나왔고, 정규직으로 회사에 일을 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강자에 속하죠. 여기에 제 남편은 남자니까 저보다 더 강자의 입장이고요. 이런 입장으로 몇 십 년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의 시선으로 어떤 일들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였어요.
김동영 : 진짜 말을 잘 하시네요.(웃음) 제가 오은 작가님 이후로 처음이에요.
장수연 : 이런 인터뷰 재미있네요. 즐거운 대화예요.
김동영 : 여러분,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인터뷰를 보시려면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보세요.(웃음)
장수연 : 그 기사에 여러분, 댓글 좀 달아주세요. 댓망진창이에요.(웃음) 기자 제목이 ‘아이보다 내가 먼저, 이런 엄마는 비정상인가요?’이거든요. 댓글이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아이가 나보다 먼저여야지, 이런 얘기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런 댓글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엄마가 되는 과정은 다양하거든요. 오랫동안 기다리고, 노력해서 어렵게 엄마가 되신 분도 있죠. 하지만 저처럼 어영부영, 어떻게 하다 보니까, 콘돔이 불량일 줄 내가 알았나,(웃음) 라는 식으로 엄마가 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 그때 느꼈던 당혹감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불편해 하는 거예요. 이런 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현실인 거죠.
김동영 : 나중에 아이들이 자랄 텐데요. 잔인한 사실은 책이 남아요. 아이들이 커서 이런 엄마의 솔직한 생각을 보면 어떨 것 같아요?
장수연 : 좋을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이 책이 제 딸들을 더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를 가지는 것,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동영 : ‘김동영의 읽는인간’ 고정질문이 있어요. 이번부터 바꿨어요. 첫 번째, 최근에 구매해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장수연 : 『이상한 정상 가족』 이라는 책인데요. 아직 다 못 읽고, 프롤로그만 읽었어요. 아까 말씀 드린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가 이 책의 첫 문장이에요. 굉장히 궁금하고, 빨리 읽고 싶은 책인데요. ‘정상 가족’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모습이 있잖아요.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된 핵가족이죠. 그것만을 정상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 대해 던지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이상한’ 정상 가족인 거죠.
김동영 : 두 번째 질문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은?
장수연 :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교수님이 쓰신 책이 있거든요. 이 책을 너무 좋게 봐서요.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책이에요.
김동영 : 엄마로 생활하면서 제일 힘든 건 뭐예요?
장수연 : 제 시간을 못 갖는 게 제일 힘들죠. 시간이 되면 저는 실컷 책 읽고 글 쓰고 싶어요. 오랫동안 방해 받지 않고요.
김동영(작가)
김동영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는 '생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였고 마스터플랜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한것이 인연이 되어, 음반사 문 라이즈에서 공연과 앨범 기획을 담당하였다. 델리 스파이스와 이한철, 마이 앤트 메리, 전자양, 재주소년, 스위트 피의 매니저먼트 일을 담당하면서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복고풍 로맨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 「별빛 속에」, 「붉은 미래」등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MBC FM4U [뮤직스트리트], [서현진의 세상을 여는 아침], [K의 즐거운 사생활] 등에서 음악작가로 일했다.『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두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