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란 도시가 있는 거 알아?” 2015년 초가을,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대학생 때 미술 공부를 하면서 캡션으로 읽었던 이름이었다. 나는 그곳의 풍경을 보기 위해 이번 여름 휴가로 독일을 질렀다. 10년에 한 번씩 그 도시에서는 조각 프로젝트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다른 여행지와 다르게 맛집, 명소 검색이 수월하지 않았다. 여행 글보다는 뮌스터에서 살고 있는 유학생들의 몇몇 포스팅만 눈에 띄었다. 결국 여행을 가기 전, 남편이 연애시절 그토록 읽으라고 권했던 『너 없이 걸었다』를 폈다. 허수경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하면서도 개구리 심보마냥 보지 않았던 에세이였다. 첫 장을 읽으며 지금까지 우겼던 내 고집을 후회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시인의 목소리와 함께 뮌스터를 걷기로 다짐했다.
뮌스터에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를 탔다. 직행이었지만 피곤했다. 잠시 목을 축인 후, 시간에 맞춰 프랑크푸르트 페르반호프로 가는 기차를 탄다. 기차를 타고 4시간 정도를 가야 뮌스터에 도착할 수 있다. 시인의 말대로 나는 창가에 앉았다. 하이네가 사랑하는 황금빛을 띤 라인 강을 보기 위해서. 눈 앞에 라인강이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했다.
허수경 시인 덕분에 뮌스터는 처음부터 무척 익숙하게 느껴졌다. 독일에 20여 년간 거주한 그녀가 시를 읽으며 걸었던 길목이 눈 앞에 펼쳐졌다. 게르트루트 콜마르와 뮌스터 기차역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숨을 돌렸다. 숙소로 가 급하게 짐을 놓고 나왔다. 갈 길이 멀었다. 뮐러가 있던 칠기 박물관과 보리수 벤치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점심을 대강 커리부어스트로 때우고, 푸른 반지를 지나서도 한참 걸어야 하는 츠빙어로 향했다.
뮌스터의 옛 방어벽이 허물어진 자리에 남은 츠빙어. 사연을 드러내놓은 폐허는 ‘그 안에 고여 있는 시간’을 더듬으며 상처를 오롯이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며 다시 도심으로 돌아왔다. 숙소 근처인 소금길, 나팔을 부는 람벨티 성당, 중세 시장과 옛 시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세 시대부터 여러 시대를 많은 시들과 함께 패스츄리처럼 겹겹이 머금고 있는 도시가 부러웠다.
다음날은 미술작품을 보러 아호수로 출발했다. 도심과 거리가 있어 자전거를 빌렸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타지도 못한 두발 자전거다. 비틀거리다가 잠시 멈추고, 다시 출발하고를 반복하며 호수로 달려갔다. 이곳을 오게끔 한 시인의 마음과 사랑이 고여 있을 호수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푸르른 가로수길을 지나 다정다감해 보이는 시민들과 가끔 눈을 마주치며 페달을 밟았다. 올덴버그의 <자이언트 풀 볼(Gaiant Pool Balls)>가 보였고, 그 뒤로는 커다란 아호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숨이 벅차 올랐다.
뮌스터에서 수십가지 조각들을 보았는데, 가장 먼저 생각나는 순간은 아호수에 도착하기 1분 전이다. 딱 봐도 서툴어 보이는 내 자전거를 뒤에서 지켜봐 주던 남편을 믿고 페달을 밟던 15분. 그리고 시인이 벤치에 앉아있을 것만 같았던 호수를 상상하며 “얼마 안 남았어!” 하고 외치던 순간. 돌아오는 길엔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야만 했다. 흘러 넘치는 감정을 오래 걸으며 기억하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뮌스터에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간다면 좀 더 깊고, 단순한 길을 찾아 함께 걸어 볼 것이다. 허수경 시인이 걸었던 몇 년간의 길을 3일만에 걷기란 시간이 너무 짧았다.
-
너 없이 걸었다허수경 저 | 난다
시인 허수경이 독일로 이주하여 23년째 살고 있는 뮌스터를 배경으로 그네가 천천히 걷고 깊숙이 들여다본 그곳만의 사람들과 그곳만의 시간들을 독일 시인들의 시와 엮어 소개하고 있다.
김유리(문학 MD)
드물고 어려운 고귀한 것 때문에 이렇게 살아요.
woojukaki
201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