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점을 열 거라고 말했을 때, “축하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그래서 서점은 어디에서 할 거야?”였다. 사실 나는 서점의 위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문화적 소비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20-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선별한 책을 판매하는 서점을 계획했기 때문에 접근성과 상관없이 어디든 찾아올 수 있다고 보았기에 위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채광이 좋은지, 넓은 창이 있는지, 주변 풍경은 어떤지, 내가 상상하는 서점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공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루는 서울에서 비교적 월세가 싸다고 하는 몇몇 지역을 후보에 올리고 남편과 부동산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한눈에 이거다 싶은 곳은 없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남편이 나에게 따져 물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너는 분위기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공간을 구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일단 월세부터 정하자. 내 생각에는 월세가 매출의 15퍼센트를 넘으면 안 돼. 네가 낼 수 있는 월세는 얼마야?”
“나는 그냥 공간이 마음에 들고 가격이 나쁘지 않으면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뭐든 잘 될 것부터 생각하는 긍정적 낭만주의자가 나라면, 뭐든 안 될 것부터 생각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우리 남편이다. 더군다나 그는 부모님을 도와 다양한 업종의 가게를 운영해 본 경험이 많은 까마득한 자영업 선배였다. 두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혀를 쯧쯧 차더니 숙제를 내주었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네가 벌어야 하는 돈(a)을 먼저 계산해. 가게 월세와 유지비, 네가 월급으로 가져갈 인건비가 여기에 포함되겠지. 그 다음엔 책 한 권을 팔았을 때 남는 순수익(b)을 대략적으로 계산하는 거야. a를 b로 나누면 네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팔아야 서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수치가 나와. 그 수치에 따라 월세의 마지노선을 정해 봐."
조언대로 먼저 한 달에 내가 벌어야 하는 돈부터 생각해 보았다. 월세와 공과금, 소모품 구입비를 다 합쳐서 100만 원. 내 월급은 소심하게 100만 원. 그러면 합해서 200만 원이 나온다. (내가 얼마나 숫자 뭉뚱그리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다음은 책 한 권을 팔았을 때 나에게 남는 순수익. 나는 참고서나 잡지 없이 일반 단행본만 취급하는 서점을 열고 싶었기 때문에 책값의 평균 가격을 15,000원으로 잡았다. 책은 출판사에서 직접 받는 방법도 있고 도매상에서 받는 방법도 있지만 작은 서점의 규모상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도매상에 확인해 보니 공급률은 가장 낮은 게 70퍼센트였고 때에 따라 85퍼센트도 있었다. 평균 공급률을 75퍼센트로 잡고 계산기를 두드리니 15,000원짜리 책 한 권을 팔아서 서점에 남는 건 3,750원이다. 그럼 200만 원 나누기 3,750원은? 533권이라는 충격적인 수치가 나왔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8권을 팔아야 맞출 수 있는 숫자다. 그렇게 팔아서 내가 버는 돈이 100만 원이라는 건 차치하고 하루 18권을 팔 수나 있을까 싶었다.
‘너 하루에 18권 팔 자신 있어? 혼자 운영하는 손바닥만 한 책방에서?’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온라인 서점보다 구색도 적고, 할인이나 적립도 안 되고, 배송도 안 되는 작은 책방에서 매일매일 18권을 파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게 어느 정도로 어려운 일인지 서점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으니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 계산대로라면 월세 50만 원을 넘기면 안 됐다. 권리금이 없고 월세 50만 원을 넘지 않는 곳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은 땡스북스를 그만두기 전에 고민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내 서점을 하고 싶다는 부푼 마음에 가려 현실적인 문제를 살피지 못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땡스북스에서는 모든 거래가 출판사와 직거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매상의 공급률이 그 정도로 나쁜 줄 미처 몰랐다. 서점에서 일하긴 했지만 금전적인 부분을 직접 담당하지 않았기에 서점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어도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서점을 여는 일은 쉬워 보였다. 자격증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카페나 식당처럼 설비를 갖춰야 해서 목돈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나는 서점에서 일한 경험도 있으니 적당한 가격에 공간을 구하고 책을 들여놓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책방을 여는 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나답게, 즐겁게, 지속 가능하게 하고 싶어서 선택한 독립이었다. 책방을 열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만큼은 확실히 대비하고 시작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서점이 오픈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 용기 없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여서였다. 서점주인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같이 몰라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일한 경험이 오히려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이게 현실일지도 몰랐다. 새로 생긴 서점도 많았지만 조용히 문을 닫는 서점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었다. 현실과 용기 사이에서 뭐가 정답인지 도저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때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건 비파크의 공간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비파크는 서울시가 사회혁신과 관련된 인프라들을 모아 만든 서울혁신파크 안에서 책을 매개로 한 사회적 연결을 실험하는 프로젝트다. 올해 말까지 기한이 정해져 있는 일이고, 서점이 아닌 도서관의 형태이지만 이것 역시 책으로 공간을 꾸려가는 일이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3월부터 비파크에서 도서관 지기로 일하면서 서점의 수익구조를 어떻게 풀지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기로 했다.
주제에 맞게 책을 선별하고 소개하는 일은 땡스북스에서도 늘 해오던 일이니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비파크 일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인문을 통해 삶을 공부하고 세상을 사유하는 책들과 만나는 생각 도서관, 저성장 시대의 생존법을 고민하는 책들과 만나는 다른삶 도서관, 내 몸에 정직한 일상을 꾸리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들과 만나는 몸 도서관, 자연을 이야기하는 책들과 만나는 숲 도서관까지, 비파크는 시민들에게 책을 매개로 서울혁신파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혁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공간이었다. 책을 다루는 행위는 나에게 익숙한 것이었지만, 그곳에서 다루어야 할 책의 주제는 나에게 생소한 분야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책을 선별하고 진열하고 소개할 순 없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모든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보고 고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회의 시간에 누군가 관련 분야에서 화제가 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데 나만 혼자 멍하는 일이 잦았다. 땡스북스에서 비슷한 관심사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있을 땐 느껴 본 적 없는 소외감이었다. 대출 업무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책을 읽다 가는 방식의 열린 도서관이다 보니 독자와 직접 마주칠 기회가 적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분기마다 새로운 주제에 맞춰 책을 교체하러 도서관에 나가 있는 시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무실에서 머무르며 업무를 보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도서관 문을 닫으려고 나가보면 몇몇 책이 원래 위치와 다르게 꽂혀 있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 이 책을 읽어 주었구나, 하고 혼자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내가 다룰 ‘책’만 보았지 그 책이 놓일 ‘장소’를 간과했다.
그러고 보면 편집자, 서점원, 도서관 지기 모두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이었지만 일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그 안에서 느낀 재미도, 힘들었던 점도 제각각 달랐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면서, 서점에서 책을 판매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관리하면서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점들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편집자일 때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을 만드는 게 너무 싫었다. 정작 나는 관심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읽을 책을 만든다는 게 독자를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 서점원일 때 나는, 내가 느낀 책의 재미를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전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서점 안에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민해 보았지만 내가 일하는 서점의 규모나 성격상 실행에 옮기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비파크 일은 내가 편집자로 일할 때와 서점원으로 일할 때 힘들어했던 점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들을 다루는 일이었고, 독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없는 일이었다. 뒤집어 얘기하면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다루고 독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환경에서 내가 가장 나답게 즐겁게 자신 있게 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100퍼센트 펼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놓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주체가 되어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 그제야 내가 서점을 열어야 할 이유가 또렷이 보였다. 이제 나에게 남은 숙제는 단 한 가지, 수익구조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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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백창화 ,김병록 공저 | 남해의봄날
시골 책방에서 벌어지는 초보 서점 주인장의 좌충우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작은 책방들이 “책 쫌 파는” 그 날을 위해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응원의 목소리를 전국 180여 작은 책방 리스트와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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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산책자강예린 ,이치훈 공저 | 반비
국내 도서관 100년의 역사 속에 켜켜이 쌓인, 우리 도서관들의 뜻밖의 정보와 매력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정지혜(사적인서점 대표)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 '사적인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의 만남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고만고만하게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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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