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작가미팅을 가졌던 때가 떠오른다. 사실 작가님이 제주에 살고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미팅이었다. 첫 만남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해야 했고, 계약이며 진행 방향이며 마감이며 모조리 쏟아냈다. 맞은편에 앉아 계약서를 곰곰이 읽어보고, 또 물어보던 작가님의 모습은 참으로 소녀 같았다. 내 또래인 듯했지만 나와는 달리 결혼을 했고, 또 집도 있었다. 그것도 손수 만든 집이라니.
저자는 어려서부터 제주에 살고 싶어 했고, 그녀의 남편은 어떠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제주의 오래된 집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가진 거라고는 손재주와 시간적인 여유라고나 할까. 그래, 어쩌면 재주가 있고 시간도 많다니 가장 부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능했을지도. 하지만 그 사서 고생이라는 게, 아무리 재주가 많고 시간이 많다 해도 안 할 사람은 안 한다.
그들은 나무 본연의 빛깔을 찾아주려고 수없이 사포질을 하고, 미장이나 스테인 작업은 물론 창문과 현관문까지 만들었다. 그야말로 집 안 곳곳에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자신이 살 공간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어 보인다. 집을 완성하기까지 지났을 지난한 과정을 무시한다면 이토록 낭만적인 일도 없다. 하지만 원고와 함께 사진 속 공사 과정을 보다 보면 그리 낭만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주로 공사에 몰두하고 있는 뒷모습이 담긴 사진들. 책을 만들고자 꾸며진 사진이 아닌,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모습. 아무리 재주가 많고 시간이 많다 해도 나라면 못하겠다.
갑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자면, 얼마 전 책장에 천 쪼가리 하나를 대기로 했다. 햇빛에 책이 바래가는 게 싫어 천 하나를 사다가 양 옆을 바느질했다. 그런데 그 바느질이라는 것이 삐뚤빼뚤 난리가 났다. 진짜 꼴 보기 싫다고 해야 하나? 평소의 나라면 애초의 계획을 뒤엎고 누런 책들과 함께 사는 길을 택했을 거다. 하지만 오래된 집을 고치며 저자가 배운, 그리고 그 글을 읽으며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삐뚤빼뚤하다고 모양이 못나다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거다. 내 공간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은 나에게 맞고 원하는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니까.
‘집’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사람이나 동물이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 뜻과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이라는 뜻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의미 역시 사전적 의미와 다르진 않다. 들어가서 살기 위한 집과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모습까지 담아냈으니까. 그러나 넓게 보면 『오래된 집에 머물다』는 세상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살고 싶던 공간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다. ‘나는 못 하겠다’ 생각이 든다 해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느끼게 되고, 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될 거다. 책장에 걸린 엉성한 바느질의 가림막처럼.
홍은선(상상출판 편집자)
읽고 쓰고 띄어쓰기하는 사람
동글
2017.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