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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때문에 죽는 여자들

혼자 있는 남편의 밥을 걱정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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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성이 ‘나쁜 놈’은 아니더라도, 이 나쁜 놈 덕분에 남성은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 아내를 살해했거나 살해를 시도한 남편에게 법이 관대한 이유다. (20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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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엘가 힉스George Elgar Hicks, <여성의 임무 : 남성의 반려자>, 1863

 

점심 초대를 받아 풍성한 식사를 한 뒤 작은 농장을 둘러보기 위해 일어났다. 식탁 위에는 우리가 먹다 남은 스끼야끼 국물이 흥건한 냄비와 접시들이 널려있었다. 일어서며 나는 습관적으로 빈 접시들을 포개기 시작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아주 좋은 아내가 있어요.”라며 나이가 지긋한 점잖은 남자 집주인이 한사코 분주한 내 손길을 막았다. “우리는 아주 좋은 식기세척기가 있어요.”라고 했다면 훨씬 자연스러운 문장이겠지만 ‘식기세척기’의 자리에 ‘아내’가 있었다. I have a good wife라는 이 짧은 문장이 음절별로 또박또박 내게 콕콕 와서 박혔다. 굿 와이프!!! 오, 아내란 대체 ‘무엇’인가. 냉장고가 있어 행복한 식기세척기인가.


영화 <카트>에는 파업하면서도 애들 밥걱정에 전전긍긍하거나 아예 파업 현장에 아이를 데리고 온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여기 나와았으니 밥 달라는 사람이 있나 물 달라는 사람이 있나”면서 오히려 발 뻗고 자겠다는 우스갯소리들을 한다. 자본주의와 싸우며 가부장제에 종속된 여성들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내가 장기간 집을 비우면 혼자 있는 남편의 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출몰한다. 이런 사람들은 반대로 남편이 장기간 집을 비우면 내게 ‘밥 안 해서 좋겠다’고 한다. 정말 해괴하지 않은가. 부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담긴 말이다. 여자는 밥 ‘하는’ 사람이고 남자는 밥 ‘먹는’ 사람이다. 나도 먹는데? 내가 왜 밥 ‘하는 사람 입장’이야? 게다가 평소에 식사 준비는 같이하고 같이 치우며 같이 장을 본다. 아내의 수발을 받아 공부하고 자리를 잡은 남성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무리 별별 문화적 충격을 겪어도 ‘여자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사는 경우가 있다.


여성에게 꾸준히 전달하는 이런 종류의 말은 결코 무심결에 튀어나오지 않는다. 식사 준비는 너의 몫이라고 가르쳐주려는 결연한 의도가 담긴 행동이다. 얼굴 예쁜 여자는 3년이지만 음식 잘하는 여자는 평생 간다는 버르장머리 없는 말이 있다. 여성에게 성역할로 밥하는 임무를 정해놓고 이를 잘하는지 못 하는지 굳이 확인하려 드는 이유는, 성을 빌미로 굴복시키겠다는 의도다. ‘밥하는 여자’라는 너의 본분을 알려주겠다는 의지 표명, 일종의 훈육이다. 이런 마음의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늘 여자들이 필요했던 남자들 입장에서 이 본분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을 던진다. 정체성의 상실, 나의 위치의 붕괴, 나는 여자(의 몸과 밥)가 필요한데 여자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 엇갈림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의지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런 남자들은 역시 집안일 하는 ‘같은 남자’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래서 감정노동을 하거나 집안일 하는, 통념적으로 여성의 노동이라 여겨지는 노동을 수행하는 남성을 업신여기려고 작정한다. 기생오라비 같은 게, 남자 새끼가, 기집애처럼, 쫀쫀하게 등등.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집에서 설거지 안 한다며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이 다 하늘에서 정해져 있다고 발언한 이유는 결코 ‘그냥’이 아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이 좋아할 소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드라마가 비슷한 시기 연이어 등장하길래 모니터링을 한 적 있다. 이 드라마들을 보면 엄마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여성의 서사를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아내의 역할’을 시청자에게 가르치고 있다. 2015년 방영된 <엄마>의 대사다.


# 세령(홍수현)의 집
세령의 엄마 : 나, 당신 밥 공짜로 먹은 적 없어.
세령의 아빠 : 당신이라는 여자가 밖에 나가 돈 벌어본 적 있어?


극 중 이 아빠는 아주 현명하고 좋은 사람으로 나온다. 이 좋은 사람이 집에서는 밥상을 뒤엎고 아내에게 ‘밖에서 돈을 번 적이 없다’며 소리 지른다. 이는 드라마에서 모순된 인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또 다른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아버지는 딸에게 “밖에 나가서 일하는 남편. 새벽에 먹는 뜨끈한 밥, 저녁에 집에 오면 차려주는 밥, 그걸 안 하려면 왜 결혼했어?”라고 한다. 이 딸도 밖에 나가서 일한다. 신기하게도 여성의 노동은 모두 투명해진다. 맞벌이 부부지만 남편 밥 챙기는 몫도 여자의 몫이며, 심지어는 디저트 가게를 하는 시어머니의 영업장에 와서 일을 돕는 며느리의 역할까지 한다. 이제 남편의 주변 사람들을 보자.


# 영재(김석훈)의 직장
직장 상사 : (속이 아프다는 영재를 보며) 그거 새 신랑 증후군이야. 엄마가 챙겨준 밥 먹다가 밥 대신 커피 먹고 그러니까.


# 시누이가 올케에게
윤희 (장서희) : 너 살림을 제대로 하는 거냐? 니가 해준 반찬으로 밥상 차린 적 있어? 와이셔츠 한번 다려준 적 있어?


가족과 직장에 있는 남편의 주변 사람들은 ‘엄마 밥’에서 ‘아내 밥’으로 안전하게 갈아타지 못한 새 신랑을 연민한다. 실제로 이러한 연민이 여성을 향한 남성의 각종 폭력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활용된다. 상추를 봉지째 상에 놨다고 죽이거나, 밥을 안 차려줬다며 살해 시도를 한 남편이라는 이름의 폭군들.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면 밥 안 줘서 아내를 살해하는 남자들 덕분에 여성일반을 조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쁜 놈’을 남성연대는 꼭 필요로 한다. 모든 남성이 ‘나쁜 놈’은 아니더라도, 이 나쁜 놈 덕분에 남성은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 아내를 살해했거나 살해를 시도한 남편에게 법이 관대한 이유다.


수전 브라운 밀러가 말했듯, 모든 강간은 권력의 표현이다. (화학적 거세를 신뢰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남성이 끊임없이 밥을 강조하는 태도는 정확히 권력의 표현이다. 여성에게서 가장 필요로 하는 두 가지가 밥과 섹스이기 때문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지적대로 “어떻게 아내를 하녀인 동시에 반려자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남자들이 해결하려고 애쓰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환상이 바로 ‘사랑’이다. “이 ‘문명화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기에, 여성은 한 남성을 위한 가정주부이거나 자본가를 위한 임금노동자로, 혹은 둘 다로 훈련되었다. 이들은 수 세기 동안 자신에게 사용된 실제적 폭력을 자신에게로 돌리면서 내면화했다. 그들은 이를 자진해서 한 것으로, 사랑으로 규정했다. 자기억압에서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적 신비화였다. 이런 자기억압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소품을 교회, 국가, 가족이 제공했다.”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70쪽)


여성을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임금 없는 ‘가정주부화’ 시키기는 가부장제의 전략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밖에서 돈도 벌어오고 안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가정주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중노동의 삶을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받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남편 집안의 죽은 사람들 밥상까지 차리는 여자들이 밥 때문에 맞아 죽기까지 하다니. 밥 때문에 남편에게 맞아 죽은 여자들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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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마리아 미즈> 저/<최재인> 역26,100원(10% + 5%)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1986년에 초판이 출간된 후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오늘날 이 책이 제기하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실감나게 다가온다. 가부장제를 이용한 자본주의적 착취는 한 세대 동안 더욱더 노골적이 되었으며,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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