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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습니다. 너무 덥습니다. 낮에는 더위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 밤이 되어도 휴식은 찾아 오지 않습니다. 에어컨을 켰다 껐다, 조금 잘 만하면 모기가 달려들고, 창을 열면 매미들은 또 얼마나 그악스럽게 울어대는지요. 거의 매일 잠을 설치니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입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몇 배 더 덥습니다. 자기 몸만 챙기기도 정신이 없는데 끝없이 돌봐줘야 할 일이 생깁니다. 업계 비밀인데요, 육아 칼럼을 쓰는 사람에게 여름철은 쉬운 계절입니다. 배탈과 설사, 일사병과 열사병, 벌레 물렸을 때 대처 요령 같은 거 조금 쓰면 금방 지면이 채워지지요.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날씨와 기후는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1996년부터 제주도에 살았습니다. 20년 전이네요. 병역 대신 3년을 근무했지요. 서울에 살던 제게 제주는 정말 천국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기후가 좋더군요. 여름에는 습도가 좀 높을 뿐 그리 덥지 않고, 겨울에도 혹독한 추위는 없었습니다. 공기 좋지, 경치 좋지, 먹을 것 많지, 서울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습니다. 작은 병원을 열어 10년쯤 그곳에 살았습니다. 감귤과 돌담과 한라산이 어우러져 정겨운 올레길 대신 흉물스런 4차선 도로가 놓이고, 세계 최고의 천연 생수가 만들어지는 곶자왈 지역에 골프장들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10년 사이에 여름은 계속 더워지고, 겨울은 계속 추워졌으며, 태풍은 점점 커졌습니다. 해충은 점점 늘고, 신선한 먹거리는 점점 줄었습니다. 특히 여름이 고통스러웠습니다.
2008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 삽니다. 처음 왔을 때 천국인 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여름이 덥지 않으니 살 것 같더군요. 에어컨은 고사하고 5년간 선풍기를 딱 한 번 돌렸습니다. 모기도 없고, 매미도 없었습니다. 가까이로 울창한 숲이 우거지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눈길을 돌리면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빙하를 하얗게 머리에 이고 선 산꼭대기들이 시원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여름이면 매일 선풍기를 돌립니다. 에어컨 견적을 받을 생각입니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엄청난 산불이 나기 때문에 시 전역이 연기로 부옇고, 해와 달이 벌겋게 보입니다. 제한급수의 여파로 꽃과 잔디가 말라갑니다. 빙하는 6월 중순이면 녹습니다. 무늬만 빙하인 거죠. 세계적 관광지라는 록키나 휘슬러도 여름에 가면 빙하가 녹아 볼 것이 많지 않습니다. 외신을 보면 이제 지구 상에 천국은 없습니다.
왜 기후가 날씨처럼 변할까요? 인간의 활동 때문입니다. 여름에 시원하게 지내려고 무분별하게 에어컨을 틀어댄 결과 우리는 점점 더운 여름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려고 비행기로, 자동차로 지구 반대편을 옆집 드나들듯 돌아다닌 결과, 아름다운 곳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편하자고 아무 생각 없이 일회용품을 써댄 결과, 태평양에는 제주도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쓰레기가 떠다닙니다. 좀 더 싸게, 좀 더 많이, 좀 더 쉽게, 좀 더 빨리, 좀 더 편하게…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을 너무 쉽게 만족시키는 데 길들여져 이제 거기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운동을 안 하면 점점 몸을 움직이기 싫고 힘들어지지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생각하기가 귀찮아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누구한테요? ‘돈을 손에 쥔’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기후 변화가 인간의 활동 때문이란 걸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을 손에 쥔 사람들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기후가 변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이제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그런 말은 못 합니다. 기후가 날씨처럼 변하니 아무도 속지 않죠. 그래서 레퍼토리를 바꿨습니다. “기후가 변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인간의 활동 때문이 아니다. 지구 자체가 원래 더워졌다 추워졌다 하는 거다!” 거짓말입니다. 이 문제는 이미 과학적으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돈을 손에 쥔 자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쉽게 돈을 벌고 싶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를 매수하고, 언론인을 사고, 정치인에게 자금을 댑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고 갑시다. 기후는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인간의 활동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정치와 세상에 관심을 가지세요. 앞서 얘기했지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속기 쉽습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약을 탈퇴했다고 비난이 빗발치잖아요. 왜 그럴까요? 사실 인류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안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소매를 걷어 붙이지 않고 미적거리다 최근에야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각국 정상들이 모여 앉았습니다. 그리고 ‘지구 온도를 2도 이상 상승시키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2도면 별 것 아닌 것 같지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살기 어려울 정도로 길고 더운 여름, 툭하면 내려지는 오존 주의보와 미세먼지 경보, 사상 유례 없는 여름 태풍과 겨울 한파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일입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 보면 곡물 생산 급감, 기근과 전염병, 해수면 상승, 해양오염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지구의 온도는 얼마나 올랐을까요? 0.8도입니다. 2도면 두 배 반이네요. 지금보다 두 배 반 살기 어려워지겠죠? 그런데 트럼프는 그 약속조차 지키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대로 가면 몇 십 년 후에는 지구 온도가 섭씨 4도 상승할 거라고 합니다. 아시아 남부와 아프리카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거라고도 합니다. 현재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겁니다. 일회용품을 덜 쓰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실내온도를 너무 낮거나 높게 두지 않는 겁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를 덜 먹어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걸 입증한 책도 있습니다.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작은 일들을 실천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달라집니다. 일단 누구나 선거와 투표를 통해 나라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돈이 좀 들고 불편해도 환경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각국 정부도 그렇게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알게 된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우리처럼 실수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육아 칼럼에 왠 공자님 말씀? 글쎄요.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과연 뭘까요? 우리는 아이를 너무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최고로 키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최고가 뭔가요? 지금까지 우리는 경쟁에서 이기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자식이 자신의 욕망을 되도록 많이, 쉽고 편하게 만족시키며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온 것 아닐까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아이의 몸과 마음을 경쟁에 최적화되도록 '기획’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이제 그런 세상은 끝났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생태의 위기는 자신의 욕망을 양보하고, 다른 사람과 생명을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것만이 생존과 번영과 행복을 지키는 길이란 사실을 끊임 없이 일깨워줍니다. 그걸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사는 겁니다.
우리는 열을 미워합니다. 하지만 열은 적이 침입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열이 나는 걸 보고 우리는 몸에 들어온 세균에 적절히 대처합니다. 우리는 기침을 미워합니다. 하지만 기침 역시 침입자를 기관지에서 몰아내려는 방어작용이자, 적의 침입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더위를 미워합니다. 하지만 이 불볕 더위는 혹시 지구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이와 함께 잠시 지구가 건네는 말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우리 아이들은 덥지 않은 세상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여름이라지만 너무 덥습니다. 어디 가면 뭐해요? 시원한 곳에서 책 읽는 것도 훌륭한 피서법입니다. 좋은 책 두 권을 권해드릴게요. 환경운동가 최원형 선생님의 『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 캐나다의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입니다. 앞의 책은 자녀와 함께 읽기 좋고, 뒤의 책은 조금 두껍지만 전체적인 시각을 갖기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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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 최원형 저 | 철수와영희
《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는 기후, 먹을거리, 물, 쓰레기, 에너지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알기 쉽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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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저 / 이순희 역 | 열린책들
이 책은, 오늘날 기후 위기의 본질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문제임을 역설한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iuiu22
2017.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