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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사회

알코올 사용장애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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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부쩍 더 많이 마신 건 회사 생활을 하면서부터였어요. 이때부터가 중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장이 술을 엄청 좋아하는 분이라 매주 두세 번씩은 부서 회식이 있었습니다. (20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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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뭐 이따위 병원이 다 있어?”

 

김희정 씨는 진료실에서 터져 나오는 큰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들어갈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에는 술을 마시고 오는 환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방문할 때마다 술 냄새를 풍기는 환자도 있는데 지금 진료를 받고 있는 남성도 그중 하나였다.

 

박진국 48/M. 예약 화면에 떠 있는 그의 이름이었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당뇨병 처방을 받는 환자로, 반딧불 의원에 온 것은 오늘이 네 번째였다. 유난히 목소리가 커서 진료실에서 하는 말이나 웃음소리가 바깥 대기실까지 들리곤 했다. 김희정 씨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박진국 씨는 진료실 책상 앞에 서서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의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니, 당신이 뭘 안다고 그딴 말을 지껄여? 의사면 다야? 동네 의원이나 하는 주제에 멀쩡한 사람을 폐인으로 몰아?”

 

위협적인 말투였지만 의사는 냉랭한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박진국 씨가 우리 병원에 온 게 오늘로 네 번째입니다. 매번 술을 마시고 오셨고, 그때마다 술을 줄이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지키지 못했죠. 좋은 날에는 기분이 즐거워서, 힘든 날에는 견디기 위해서 술을 드셨다고 했어요. 그게 중독입니다.”


“의사들은 술 마시면 당뇨병이 심해지고 간경화도 생긴다며 겁을 주는데, 그건 나도 다 아는 뻔한 얘기야. 당신이 술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아? 흥. 제대로 마셔보기나 했어야 알지.”


“술로 인해 당뇨병이 심해진다는 걸 알면서 술을 계속 먹는 것도 중독에 해당하는 증상입니다. 그런 이야기 듣기 싫으면 술 끊고 오세요. 드시던 약은 처방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못할 것 같아?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그까짓 것. 술은 끊더라도 이 병원엔 다시는 안 와. 쌔고 쌘 게 병원인데.”

 

환자가 분을 풀려는 듯 진료실 문을 쾅 닫고 나가자 김희정 씨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의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젠 이런 일에 이골이 날 때도 됐잖아요. 괜찮아요.”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손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그가 말했다.

 
“좋아졌는데 지금도 가끔 신경을 많이 쓰면 떨리네요. 자주 그런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내가 좀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봐요. 뒤에 대기 중인 환자 있으면 잠깐 기다려달라고 해주겠어요? 5분만.”

 

그는 눈을 감고 머리를 의자에 기댄 채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눈 밑이 평소보다 퀭해 보였다. 김희정 씨는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내 진료실을 나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술을 처음 배운 건 대학교 신입생 엠티 가서였어요. 선배들이 권하는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죠. 술자리가 많은 편이었어요. 처음엔 선배들이 주는 술을 억지로 마셨지만 어느새 내가 옆 사람에게 술을 권하고 있더라고요. 원래 내성적인 편인데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고 활달해졌습니다. 술을 마시다 보면 억눌려 있던 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대학 때는 매일 술을 마시진 않았습니다. 술을 부쩍 더 많이 마신 건 회사 생활을 하면서부터였어요. 이때부터가 중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장이 술을 엄청 좋아하는 분이라 매주 두세 번씩은 부서 회식이 있었습니다. 매번 2차, 3차까지 술자리가 있었어요. 회식이 없는 날은 제 사수 역할을 하던 대리와 술을 마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대리님도 중독이었던 것 같네요. 매일 그렇게 마시면서 어떻게 업무를 했나 싶은데, 다들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또 회사는 돌아갔습니다.

 

필름이 끊기는 횟수도 늘어났고 기억을 잃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에 상처가 난 걸 발견하는 일도 종종 있었어요. 언젠가부터 주말엔 집에서 소주병을 따고 있더군요. 그렇게 2년 정도 하루도 빼지 않고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음주 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면허 취소를 받은 다음이었습니다. 필름이 끊긴 채로 운전대를 잡는 일도 많았거든요. 2년 동안 운전을 못 하니 출장을 다닐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서를 바꾸었는데, 이젠 동료들도 저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음주 운전을 하면 교도소에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회사에서도 더 이상 일할 수 없겠죠.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에요. 인생이 망가질 것 같아 두렵습니다.”

 

커피 향이 은근한 작은 사무실 가운데에 둥그렇게 놓인 철제 의자에는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일어선 사람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남성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내내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둘러앉은 사람들은 나이도, 차림새도 제각각이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중간 공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그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망설이는 듯하더니 엉거주춤 다시 의자에 앉았다. 다음에 일어난 사람은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가 말을 시작하자 김희정 씨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잠깐 바깥 공기를 쐬고 싶었다. 계단을 내려온 그녀가 건물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겨있을 때 누군가가 그녀 뒤에서 말을 건넸다.

 

“안나 자매님. 오늘도 수고가 많으시네요.”


“안녕하세요, 마르타 수녀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지 못해요. 여기 사무실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임대료를 올려달래요. 망할 놈의 건물주 같으니라고. 이런 쓰러져가는 건물에 코딱지만 한 사무실도 월세가 매번 오르는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


수녀는 성호를 그으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수녀가 입에 담기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김희정 씨는 놀라지 않았다. 마르타 수녀의 이런 말투를 듣는 것은 그녀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여전하시네요, 수녀님은.”


씩씩거리던 수녀는 금세 선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꼬리와 눈매의 주름이 도드라져 보였다. 수녀님도 많이 늙으셨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수현 선생님은 잘 지내요? 오늘은 같이 안 온 것 같던데.”


“네, 해림이와 오래전에 해둔 약속이 있다고 해서요.”


“딸과의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까. 해림이도 많이 컸겠네요.”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 마르타 수녀는 그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김희정 씨가 이수현 선생을 만난 것은 삼 년 전 이 사무실을 처음으로 방문한 날이었다. 그녀는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고, 이곳에는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다. 철제 의자에 멍하니 앉아 다른 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한 의사가 일어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의사라니, 평생 다른 사람 치료하는 일은 못 하겠군. 그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녀 역시 무조건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뒤였는데도 말이다. 술은 다시 마시지 않았다. 일 년가량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았고, 한 달에 한두 번쯤 그를 만났지만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작년에 재활 보조 봉사를 위해 이곳에 다시 왔을 때 역시 강사로 참석한 그 의사를 다시 만났다. 반딧불 의원에서 그를 도와 일을 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여기 와서 사람들을 보는 거, 힘들지 않아요?”


“오래된 일인걸요. 이제 저는 괜찮아요. 저도 이곳에서 수녀님께 도움을 받았잖아요. 어떨 땐 이곳에서의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져요. 정말 있었던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평소엔 잊고 지내죠. 그런데 그 기억이 갑자기 살아날 때가 있어요. 술 냄새를 맡을 때요.”


김희정 씨가 2층으로 돌아왔을 때 사무실 안에서는 오늘 모임의 중재 역할을 하는 50대 남성이 모임을 정리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 과거에 알코올 중독자였고, 술을 끊은 지 십 년째였다.


“오늘 딱 하루만 더 마시자는 생각을 버리세요. 오늘 하루만 안 마시자고 생각하세요. 한 잔만 더 마시자가 아니라 한 잔도 마시지 말자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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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2011년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만 18세 이상 만 74세 이하 인구 중 알코올 사용장애 평생 유병률은 13.4%였으며, 특히 남자의 유병률은 20.7%로 남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알코올 사용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알코올 남용과 알코올 의존(중독)을 합친 개념이다. 알코올 의존(중독)이라 하면 흔히 금단 증상으로 인한 손떨림, 불안, 환청 등을 호소하는 환자를 떠올리지만, 술을 줄이거나 끊으려는 시도를 했음에도 애초의 의도보다 많은 양을 마시는 일이 반복되거나 음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함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술을 마신다면 알코올 의존으로 진단할 수 있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는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며 한탄하는 지식인이 등장하는데, 음주 관련 문제에 상당 부분 사회의 책임이 있음은 분명하다. 2011년에 발표된 <대학생의 음주 실태와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의 85%가 월 1회 이상 음주를 하며, 42%가 수시로 폭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신입생 환영회나 MT에서 생긴 음주 사망 사고가 보도되지만 대학 내 음주 문화는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2차는 기본이고 3차는 선택이라는 술자리 중심의 직장 회식 문화 역시 음주 문제에 기여하는 주된 원인이다. 폭음은 알코올 의존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대학에서 씨를 뿌리고 직장에서 물을 뿌려 알코올 의존 환자를 키우는 셈이다.

 

알코올 사용장애가 있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이것은 술을 권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술을 잘 마시는 것을 남성성의 상징쯤으로 여기는 문화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알코올 의존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알코올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완전히 술을 끊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병원에서의 전문적인 치료 외에 환자들 간의 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술을 끊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이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지역별로 그룹이 조직되어 있으며, 모임을 기록하거나 신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원칙이므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국내에 약 3,000여 명의 참가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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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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