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책을 숭배하지 말아요”
책을 읽다가 메모를 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페이지를 찢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읽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연애도 그렇잖아요. 상대를 너무 이상화하면 결말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면 기억에 더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사고가 확장되기도 하죠.
글ㆍ사진 임나리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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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이동진의 ‘명예의 전당’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새로운 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하 『닥끌오재』)을 출간했다. 소문난 애서가이자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진행하며 독서의 기쁨을 전파하고 있는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책을 읽고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공개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 가장 좋아하는 독서 장소,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 책 읽기의 비법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직접 읽은 책 가운데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500권의 추천서 목록도 실려 있다.

 

이 책에서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책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로 바꾸어서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전하려고 합니다. 결국 저의 독서의 역사는 바로 그렇게 책을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즐기면서 사랑하게 된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6쪽)

 

지난 12일 저녁, 한남동에 위치한 블루스퀘어에서 『닥끌오재』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개그우먼 박지선과 함께한 이 날의 행사는 책에 관한 유쾌한 수다로 채워졌다.

 

박지선 : 1만 7천 권의 책을 갖고 계시잖아요. 책을 일일이 세어보신 거예요?


이동진 : 읽었거나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해도 다 기억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엑셀 파일로 책 목록을 만들어놨어요. 책뿐만 아니라 DVD, 블루레이, 비디오, 음반 등도 리스트에 적어놔요.

 

박지선 : 책이 워낙 많아서 다 보관하시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동진 : 친척집에 보관하고 있는 책들도 있고요. 집에는 이중으로 책장을 짜서 넣어놨어요. 책마다 사이즈가 다르니까 단의 높이를 달리해서, 천장까지 높이를 맞춰서 만들었어요.

 

박지선 : 지금은 책을 어떻게 배열해 놓으셨어요?


이동진 :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 분류체계를 외울 정도였어요. 그런데 제 분류 방식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세운 기준에 따라서 책장을 나눠놨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15명 작가의 책은 따로 ‘명예의 전당’ 같은 걸 만들어서 꽂아놨어요. 눈높이에 맞춰서,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자리에 모아놓은 거죠. 그곳에 있는 책들은 가끔씩 바꾸기도 해요.

 

박지선 : ‘명예의 전당’에 김중혁 작가님 책도 있나요(웃음)?


이동진 : 이런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꽂아놨어요(웃음).

 

박지선 : 이번 책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독서가”라고 하셨어요.


이동진 : 책을 많이 사고 읽은 많은 독서 실패도 많이 했죠. 기본적으로 저는 독서에 성공이나 실패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대부분 책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실패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책을 50쪽만 읽었다고 해서 독서에 실패한 건 아닌 것 같아요. 50쪽만큼 성공한 거죠.

 

박지선 : 저는 책을 읽을 때 메모를 하거나 책장을 접지 않거든요. 오늘 가져온 책(『닥끌오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덱스로 표시만 해놔요. 그런데 평론가님께서는 책을 함부로 대하라고 하셨더라고요.


이동진 : 책을 읽다가 메모를 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페이지를 찢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읽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연애도 그렇잖아요. 상대를 너무 이상화하면 결말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면 기억에 더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사고가 확장되기도 하죠.

 

박지선 : 지금까지 쓰신 책 중에서 ‘이건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하시는 책은 무엇인가요?


이동진 : 조금 다른 의미에서 잘 썼다고 할 수 있는 책이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인 것 같아요. 그 책은 판매량이 저조했기 때문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한데요(웃음).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영화사에 미미한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책을 쓰면서 한 명의 감독을 열 시간, 서른 시간씩 인터뷰한 적도 있거든요. 박찬욱 감독의 경우에는 서른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각 작품 별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나중에 누군가 영화사를 연구할 때 사료로써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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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반복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던 두 사람의 ‘책 수다’는 독자들의 참여로 더 풍성해졌다. 즉석에서 묻고 답하는 책 이야기가 펼쳐진 것이다.

 

Q.『닥끌오재』에서 500권의 책을 추천해주신 부분이 좋았습니다. 분류 방법이 탁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노하우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분류의 대원칙이 있다면 소설과 비소설을 나눈 거예요. 외국 소설과 한국 소설을 나누고, 마찬가지로 외국 시와 한국 시도 나눴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 집 서가의 분류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저희 집 책장은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코너를 만들어 놨어요. 시간에 관한 주제, 고통에 관한 주제를 다룬 책들을 한 데 모아둔 거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서로 다른 학문분야라고 해도요. 책에 실린 목록의 분류 기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통적인 책의 분류 방식과 실제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다를 수 있잖아요.

 

거실 이외의 공간에도 작은 서가들을 만들어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A. 모든 책을 완벽하게 분류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고요. 분류하려는 노력은 하죠. 책을 분류하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아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저는 병렬 독서법으로 책을 읽다 보니까 여기저기에 책이 있어요. 작은 공간 박스 가은 걸 활용해서 꽂아두고요. 기본적으로 공간이 협소해서 책장을 이중으로 직접 짰어요.

 

Q. 애정하시는 서점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A. 서점을 일부러 다양하게 이용해요. 인터넷 서점도 이용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 다니던 헌책방도 이용하고요. 오프라인 서점도 찾아가요.

 

Q. 『무진기행』을 필사하셨다고요. 영화의 경우에도 여러 번 보신 작품이 있나요?


A. 책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도 반복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특히 개봉작은 한 번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특정 영화를 좋아해서 반복적으로 보는 일은 없고요. 제일 많이 본 영화는 5번쯤 본 것 같아요. <원더풀 라이프> 같은 경우가 그랬는데, 그것도 너무 좋아해서 본 게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반복해서 봤던 거예요.

 

Q. 한 권의 책을 오랫동안 읽으면 흐름이 끊길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A. 상대적으로 책 읽는 기간이 긴 건 비소설이에요. 『닥끌오재』에서도 순서대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요. 소설과 비소설의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비소설은 몇 년에 걸쳐서 읽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생활의 역사』 같은 경우는 거의 7년째 읽고 있는데, 읽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앞 내용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상관없고요. 그리고 저는 기억날 건 기억난다는 주의이기도 해요.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저 | 예담
1만 7천 권의 책을 갖고 있는 장서가이자 책 읽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설파하는 못 말리는 애서가 이동진의 독서법을 담은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독서법 #이동진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의 빨간책방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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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unhoy

2017.08.01

이동진 작가님의 모순이 발견됩니다

사랑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을 이상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화되지 않는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거짓입니다

완전함의 세계와 불완전함의 세계에서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라는
다소 무거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책이든.사랑이든.삶이든.
나의 완벽하고 친애하는 적이
이 세상에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하는
꿈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좋기 때문에
함께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택과 기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일진대
바라보는 관점에서 참 달라질 수도 있네요
언제나 이념보다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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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unhoy

2017.08.01

날개/고정희

생일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갔습니다
안개비 자욱한 그 거리에서
삼천도의 뜨거운 불 기운에 구워내고
삼천도의 냉정한 이성에 다듬어 낸
분청들국 화병을 골랐습니다
일월성신 술잔 같은 이 화병에
내 목숨의 꽃을 꽂을까, 아니면
개마고원 바람 소릴 매달아 놓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풀어
만주 대륙 하늘까지 어리게 할까
가까이서 만져 보고
덜어져서 바라보고
위아래로 눈인두 질하는 내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지요
손님은 돈으로 선물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있군요
이 장사 삼십 년에
마음의 선물을 포장하기란
그냥 줘도 아깝지 않답니다
도대체 그분은 얼마나 행복하죠?
뭘요...
마음으로 치장한들 흡족하지 않답니다
이 분청 화병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야 하는데
그가 이 선물을 타고 날아야 하는데
이 선물이 그의 가슴에
돌이 되어 박히면 난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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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