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소개하지 않고서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 늙은 ‘나’는 지하실에서 녹색 버튼을 눌러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작업실 천장에서 빛과 함께 쏟아지는 것은 버려진 종이더미와 주인 잃은 책들이다. ‘나’는 작업 중에 고전과 희귀서적들을 발견하면 환희로 가득차 보물상자 속에 모은다. 모은 책들은 틈날 때 마다 게걸스럽게 읽어 치운다. ‘나’의 독서와 사고는 수 리터의 술과 함께 더욱 풍요로워진다.
지하 세계에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하수구와 그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쥐떼들이 있다. 폐지를 팔러오는 어린 집시 여자들도 있다. 집시 여자. 그가 스스로에게 도취될 정도로 젊었던 시절에 그녀가 있었다. 잠 잘 곳이 필요했던 여자는 그에게 소박한 음식과 꺼지지 않는 불을 주었다. 연에 날려갈 것 같던 여자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진다. 게슈타포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이 먼 훗날 들려온다.
전쟁은 끝났고 세상은 변했다.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의 것보다 몇 배는 큰 압축기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 폐지 꾸러미들을 뱉어 낸다. 책에 대한 예의 따위는 갖출 겨를이 없다. 그들은 노란 유니폼을 입고 밝은 태양 아래서 맥주 대신 우유를 마신다. 그는 이제 아무짝에 쓸모 없는 노인이다. 푸줏간 종이에 딸려온 색색의 파리들이 짓이겨졌던 것처럼 그는 기꺼이 압축기 속으로 들어간다.
고독이란 자기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이니 고요함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혼자 남은 지 너무도 오래 되어 자기만의 생각이 끊임없이 몰아치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모순이 허용될 것도 같다. 그는 이 시끄러운 고독 속에 살다가 겨우 압축기 속에서 죽으려고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마지막 장을 덮으며 화가 났다. 그래, 문학은 애초에 희망 같은 것을 보여준 적이 없다. 문학이 보여주는 것은 끝이 없는 절망, 그리고 그에 맞서는 인간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환영일지 모를 집시 여자의 이름을 본다. 소설의 도입부는 새롭고 지적인 묘사들로 가득하여 단숨에 그의 작업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의 사고와 환상, 기억과 고독들을 따라 가다 보면 남는 것은 무수한 ‘왜’라는 질문이다.
유서영(외국도서 MD)
어릴적 아버지가 헌책방에 다녀오시면 책을 한아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보통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이었는데 몇 권이 됐든 하루 이틀이면 다 읽어버리곤 했습니다. 다 읽은 책들은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어른이 된 지금은 책 한 권 끝까지 읽는 일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침대 옆 책상위에는 항상 읽고 싶은 책들을 몇 권 씩 쌓아 놓지만 그저 쌓여 있기만 합니다. 가끔 가슴 뛰는 책을 만나면 몇 줄 씩 읽고는 멈추고 곱씹고, 다 읽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일부러 아껴 읽습니다.
문장
2017.07.30
sfdhsjkg
2017.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