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지도자를 배출한 칭화대 정문은 단조롭지만 강인함이 느껴진다.
미국 유학 예비학교로 출발
칭화대는 1911년에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이지만 설립과정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 등 8개국 연합군은 1900년 중국에서 일어난 외세 배격의 의화단 운동을 무력으로 물리치고 청淸으로부터 4억 5,000만 냥의 배상금을 받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경자庚子 배상금이다. 미국은 청나라 학생의 미국유학 기금에 배상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미국유학을 위한 예비학교가 바로 칭화대의 전신 칭화학당으로, 1928년에 중화민국 국민정부에 의해 국립대로 변경됐다. 이후 칭화대는 중국의 개혁ㆍ개방 물결을 타고 공학부문을 확대 개편했으며, 경제, 자연과학, 법학, 인문ㆍ사회, 커뮤니케이션, 의학 등을 아우르는 종합대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칭화대의 모토는 ‘자강불식自强不息ㆍ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함’과 ‘후덕재물(덕을 두텁게 해 만물을 받아들인다)’이다. 이중 후덕재물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 선물한 붓글씨 문구이기도 하다. 『주역』에 나오는 이 경구는 시진핑 주석의 신조로 알려져 있는데 칭화대 캠퍼스 곳곳에서 ‘자강불식 후덕재물’이라는 문구를 만날 수 있다. 시 주석의 모교가 바로 칭화대 화학공학 전공이기도 하다.
오늘날 칭화대는 중국 정부의 과학기술 육성 정책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막대한 자금력과 지원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1,000억 위안을 투자해 기업들과 산학협력을 추진하는 ‘칭화홀딩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 중국 정부가 국가 어젠더로 설정한 ‘창신경제’ 정책의 지원을 받고 있다.
중국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칭화대 학생들은 ‘자강불식 후덕재물’을 이념으로 쉬지 않고 정진한다.
칭화대판 미디어랩 ‘X랩’
칭화대는 2013년 미국 MIT 미디어랩을 벤치마킹해 ‘X랩’을 만들었다. 제2의 샤오미, 알리바바를 꿈꾸는 미래의 기업가들이 활동하는 곳으로, 대기질의 오염지수를 손쉽게 측정하는 휴대용 장치, 손톱 모양을 본떠 네일아트에 활용하는 3D프린터, 아파트 평면을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3D 프린터 등이 개발됐다.
이외에도 X랩을 통해 1년 반 만에 400개 신생기업이 생겨났고, 30곳은 본격적인 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유치에도 성공했다. X랩이 창업열풍을 일으키는 데는 칭화대 동문들의 지원과 사무공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다.
또 칭화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칭화사이언스파크’는 산학연클러스터로 학생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한다. 칭화대 졸업생이 창업을 하면 칭화사이언스파크에서 무료로 사무실을 임대할 수 있고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학교가 일정 지분을 갖는 방식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과 가까워 지리적인 장점도 있다.
“과거 중국에서 베이징대에 입학하는 것이 엘리트로 가는 지름길이었다면 지금은 과학과 기술을 강조하는 세계적 교육 프로그램을 가진 칭화대가 각광을 받고 있다.” - <허핑턴포스트>
한편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 정책으로 많은 중국 학생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가 모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칭화대 역시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해외 우수 교수진을 영입하고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일환으로 중국 정부는 2008년 ‘천인 계획’을 세웠다.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가 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국가적 인재 1,000명을 육성하기 위해 중국계 해외 석학을 영입하는 프로그램이다. 천인계획으로 영입된 석학에는 100만 위안의 정착 지원금과 정부, 산업계에서 연구 펀드를 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 시행 이후 4년여 만에 4,000명의 과학자들이 모국에 모여들자 2012년 ‘만인 계획’으로 바꿔, 10년 동안 해외 고급 인재와 중국 내 인재 1만 명을 키우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2049년에는 중국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만들겠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14년 10월 22일, 칭화대 캠퍼스에 31세 청년사업가인 마크 저커버그가 등장했다. 미국 하버드대 중퇴생인 그는 세계 최대 SNS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CEO다. 저커버그는 칭화대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페이스북의 초창기와 혁신부터 다양한 이슈에 대해 토론했다.
흥미로운 점은 저커버그가 영어가 아닌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뽐냈다는 것이다. 중국계 여성과 결혼한 저커버그는 2010년부터 중국어 공부를 해왔다. 그는 칭화대 학생들 앞에서 “내 중국어는 아주 형편없다”고 말했지만 청중이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때때로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저커버그는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면서 페이스북이 언젠가 중국에서도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중국과 가까워지기 위해 칭화대 경제관리학원 자문위원회에 합류했다.
저커버그가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깊은 관심을 보이는 곳,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이자 중국 정부의 정책을 좌우하는 ‘싱크탱크’인 칭화대는 ‘아시아의 MIT’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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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설성인 저 | 다산4.0
세계 최고 10대 이공계 대학의 면면을 낱낱이 보여 주는 이 책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쓰나미 앞에서 새로운 인재란 누구인지, 인재는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우리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해답이 가득하다. 미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국가지도자ㆍ교육관계자ㆍ기업인ㆍ학부모ㆍ학생들은 꼭 한번 읽어봐야 할 필독서다.
설성인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전자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현재 조선일보 경제·경영 섹션 「위클리비즈」를 만드는 조선비즈 위비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이공계 문제와 대학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해외 명문 이공계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고, 차곡차곡 콘텐츠와 지식을 쌓았다. 첨단 과학부터 실용 학문에 이르기까지 뿌리 역할을 하는 대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