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가 기안하고 우뇌가 결재한다.’ 일인 출판사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곤 한다. 맞다. 한마디로 내 맘대로 결정한다. 좋겠다고요? 책임도 혼자 져야 한다. 그러니 결정은 오래 걸리고 고민의 가짓수도 많다. 그럼에도 ‘어머 이건 사야 해!’ 하고 첫눈에 반해 구매 버튼을 누를 때가 있다. 이 책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가 그랬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 사회학자다. 젊은 사회학자. 야구에 왼손잡이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데리고 온다는 말이 있다는데, 젊은 사회학자 또한 ‘좌완 파이어볼러’만큼이나 탐이 나는 존재가 아닌가. 더욱이 그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한국에도 ‘사토리 세대’ ‘달관 세대’라는 말로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일본 아마존을 탐험하다가 바로 그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신간을 봤다. 제목이 ‘후루이치 군, 사회학을 다시 배우세요.’ 사회학을 다시 배우라고? 그때 떠오른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어머! 이건 내야 해!’
나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워낙 공부를 안 했어서 사회학을 전공했다고 말하기보다 사회학과를 다녔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덧없는 일이지만 20대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종종 있다. 20대엔 역시 배낭여행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때보다 좀 더 넓게 사람을 만나고 경험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엔 돌아갈 수 있다면 공부를 하고 싶다. 요새 부쩍 전공 공부를 좀 열심히 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 뭘 배웠나 하면 텔레토비 노래에 사회학자 이름을 갖다붙여 부르던,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꼬옹트 사회학과 사회학과 아이 좋아’ 이런 노래 따위라 참담한 마음이다. 그런데 마침 책 제목이 ‘사회학을 다시 배우세요’라니. ‘나는 재밌게 읽겠다, 나 같은 사람이 몇 명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도움이 되는 책일 것이다.’ 나 홀로 기획회의는 그렇게 명쾌한 결론이 났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도 비슷한 동기에서 이 책을 썼다. 책을 내고 유명해지긴 했는데, 이곳저곳에 불려다니며 사회학자라고 소개되는데, 정작 본인에게 사회학이 뭐냐 물으면 답이 궁색해지더란다. 그래서 사회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일본의 사회학자 열두 명을 직접 찾아간다. 그리고 묻는다. 도대체 사회학이 뭔가요?
사회학의 거장들, 날카로운 신예들과 대화를 주고받은 내용 덕에 여느 사회학개론보다 편하게 사회학에다가갈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아무말대잔치, 이를테면 우에노 지즈코에게 던진 ‘사회학을 하면 성격이 나빠지나요?’ 같은 질문은 긴장감을 무장해제당하고 유쾌하게 대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묵직한 질문들도 오간다. 최근 나오는 책 제목들이 알려주듯 일본은 인구절벽, 개호, 패러다이트 싱글, 지방 소멸, 극우 회귀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품고 있다. 이 문제에 사회학자들은 내놓은 진단들은 사회학이 결국 무엇을 다루는지를 다양하게 펼쳐 보여주었다.
그래서 제목을 쉽게 정했다. 번역 원고를 받아 저장하며 파일명으로 ‘사회학을 배우긴 했습니다만’라는 가제를 붙였었다. 역시나 지극히 일인칭으로 내 마음을 담은 제목이었다. 그러다가 제목안을 정리하며 내용을 곱씹으니 ‘이런 게 사회학이었지’ ‘이런 게 사회학이 할 일이지!’ 이 두 가지가 내가 이 책에서 얻은 바였기에 이를 중의적으로 담아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로 제목을 정했다.
책을 고르는 일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이 책은 오롯이 나에게 와닿은 마음 그대로를 담았다(표지의 저 개 또한 우리 집 개가 모델이다.) 그렇게 만든 이 책이 사회학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있죠?), 사회학을 배우긴 했는데 여전히 모르겠다는 이들에게(많죠?) 가닿았으면 좋겠다.
이정규(코난북스 편집자)
편집자로 일한 지 5년도 안 됐을 때 덜컥, 출판사를 차렸다. 경력을 다 합해도 아직 10년 미만이다. 그래서 한 권 한 권 만들 때마다 육탄전을 치르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들고 있다.
연필
2017.06.27
jr2008019
2017.05.25
iuiu22
2017.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