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만을 보고 지나치기에 플레이밍 립스의 우주는 더 없이 아름답다. 이들의 사이키델리아는 은근하고 느릿하게, 하지만 넓고 깊게 멋을 내왔다.
웨인 코인과 친구들은 사운드 실험을 계속해 나간다. 는 쉽지 않다. 난해하고 복잡하며 불친절하고 자기중심적이다. 말랑말랑한 신디사이저 사운드에서부터 까칠한 노이즈에 이르는 다양한 음향들이 마구 뒤섞이고 날아다니는 이 만화경에는 편히 기댈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복잡하기 그지없는 전작 보다는 간편하다. 앨범 내 사운드 공간의 온갖 곳을 다 집어삼킨 로 파이의 퍼즈 톤이 다수 가신 덕분에 쉬어갈 수 있는 여백이 작품에 많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와 , 에서의 접근성 높은 사이키델릭 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엄밀히 따져보면 는 감상의 난도가 높은 직전의 두 앨범, 와 과 가까이 닿아있다. 플레이밍 립스는 이번에도 실험적으로 사운드를 주조해가며 그림을 그려간다. 트랙 리스트 후반부에 위치한 「The castle」에서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Do you realize??」와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Pt. 1」과 같은 플레이밍 립스 특유의 아름다운 사이키델리아를 재현한다마는, 앨범 전체를 어지럽고 장황하게 뒤덮는 사운드 조형에 너무도 쉽게 가려진다. 잘게 쪼개진 비트, 글리치 사운드, 드럼이 조심스럽게 긴장을 형성하는 오프닝 트랙 「Oczy mlody」과 둔중한 베이스, 각양의 신스음, 우주적인 사운드 톤에 느릿하고 몽롱하게 반복되는 멜로디가 결합된 「How??」, 「There should be unicorns」, 버스에서의 차분한 선율을 거대한 부피의 사운드 콜라주로 단번에 뒤덮어버리는 「Sunrise (eyes of the young)」 등의 혼잡한 곡들이 주의를 뒤흔든다.
약간의 에너지를 들여 를 들여다보자. 21세기의 시드 배릿과 그 친구들이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어떻게 제조해내고 있나. 자신들의 시그너쳐 컬러인 사이델리아와 전작에서의 앰비언트를 바탕에 두어 앨범의 큰 골자를 형성하고 약간의 챔버 팝과 일렉트로니카, 아주 조금의 펑크와 힙합, 아방가르드 팝을 이곳저곳에 변칙적으로 투하해가며 혼란스러운 몽환의 장면을 여러 모양새로 수차례 직조해낸다. 트랙의 전면에는 이들이 있다. 그럼 그 뒤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복잡한 사운드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밴드는 몽환의 늪지대 밑바닥에 조금은 우울하면서도 잘 들리는 멜로디를 감추어놓고 이따금씩 수면 위로 노출한다. 「How??」의 노이즈, 「Nigdy nie (never no)」의 급작스런 편곡 전환, 「Listening to the frogs with demon eyes」의 프로그레시브한 전개, 「One night while hunting for faeries and witches and wizards to kill」이 연상시키는 에서의 브라이언 이노 식 아트 팝 사운드를 걷어내 볼까. 남는 것은 선율이다.
플레이밍 립스의 미는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난해한 사운드와 부드러운 멜로디 이 두 요소의 비대칭적이고 불균형적인 조화가 자아내는 흡인력이 앨범에 대한 소구를 높인다. 난잡한 사운드의 한복판에서 작품에의 집중을 놓치지 않게 하는 이유이며, 낯설게 하는 장치들로 가득한 광경의 품 안으로 계속해 파고 들게 하는 까닭이다. 자극적인 소리들로 가득한 「How??」와 곡 전개 과정에서 긴장감을 보이는 「Sunrise (eyes of the young)」, 부담스러운 사운드 혼합을 지닌 「One night while hunting for faeries and witches and wizards to kill」, 끝 모르고 윙윙대는 「The castle」은 그렇게 매혹을 발산한다. 웨인 코인과 밴드가 펼쳐 보이는 세계는 요란하고 번잡하다. 얼핏 보면 횡행하는 소리들과 갖가지 감정들을 얽어 만든 이 세상에는 편하게 이목을 둘 곳은 없다. 그러나 그 표면만을 보고 지나치기에 플레이밍 립스의 우주는 더 없이 아름답다. 이들의 사이키델리아는 은근하고 느릿하게, 하지만 넓고 깊게 멋을 내왔다. 이는 그 전에도 그랬고 이번 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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