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박중훈, 최진실 주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에는 조정석, 신민아 주연으로 리메이크 돼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수많은 커플들에게 다시 한 번 큰 공감을 이끌어냈는데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이번에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관객들과 좀 더 가깝게 소통할 예정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는 2015년 11월 결혼해서 실제로도 신혼 생활 중인 배우 김산호 씨가 남자 주인공 김영민 역에 캐스팅돼 현실감 있는 연기가 기대되는데요. 뮤지컬 <그날들> 이후 오랜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무대에 서는 김산호 씨를 연습실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연습 때 제가 연기를 하면 연출님이 ‘맞아, 남자들은 싸울 때 저렇게 해!’라고 좋아하세요.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웃음).”
김산호 씨의 최근작을 떠올리면 <그날들>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웃음). 다른 작품으로는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건데, <나의사랑 나의신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날들>은 3년 정도 했어요. 상구 역이랑 대식 역 하는 친구들이 의리로 나이 들 때까지 하자고 약속했거든요(웃음). 그러다 보니 다른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줄기도 했는데, 작년에 이 극장(자유극장)에서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를 했었거든요. 그때 연극이 처음이었는데, 배우의 힘이 그 어느 장르보다 두드러져서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더라고요. 때마침 정태영 연출님이 <나의사랑 나의신부>를 같이 하자며 전화를 주셔서 참여하게 됐어요.”
<나의사랑 나의신부>는 영화를 토대로 만든 작품인데, 영화와 다른 부분이 있나요? 배우 입장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더 돋보이는 부분도 보일 것 같은데요.
“일단 남녀 주인공의 직업이 달라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동사무소 직원인데 연극에서는 아내보다 돈을 못 버는 무능한 작사가이고, 아내는 미술학원 선생님에서 남편보다 돈을 잘 버는 요가 강사로. 신혼부부가 싸우고 화해하는 큰 틀은 똑같은데, 영화보다 더 리얼한 것 같아요. 격렬하게 싸운다는 게 아니라, 싸우고 화해하고, 사소한 게 불거져서 또 싸우는 그런 모습이 피부에 더 와 닿지 않을까. 오래된 연인이나 신혼, 부부 관객들이 이 공연을 보면 많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김산호 씨의 생활연기가 나오겠는데요(웃음)?
“배우들 중에 결혼한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그래서 다른 배우들에게 신혼으로 살고 있는 남자의 마음을 얘기해 주죠(웃음). 실제로 비슷한 면이 많아요. 집에 가서 아내에게 무슨 얘기를 하면서도 ‘지금 대사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예요. 예를 들어 남자들은 보통 싸우면 상황을 회피하려고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여자들은 뭐가 미안하냐고 물어보잖아요. 남자들이 얼버무리면 여자들은 또 따지고... 무한반복이죠. 또 ‘만약 아내가 나보다 더 돈을 많이 번다면, 눈치를 보고 사는 입장이라면 남편은 이럴 것이다!’라는 접근이 저는 아무래도 빠르죠. 남자들은 경제적인 부분에서 무척 민감하거든요. 만약 아내가 더 능력이 있다면 싸우다 걸리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자존심의 문제라서 괜히 더 격렬하게 반응하거든요.”
경험담인가요(웃음)? 배우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다른 면이 많을 텐데, 실제로 결혼 전후 장단점이 있겠죠?
“아직은 제가 좀 더 벌어서, 하지만 남편들이 눈치 볼 때의 느낌을 아니까(웃음). 결혼 뒤에 달라진 점이라면 아무래도 팬 분들이 많이 사라지셨죠(웃음). 남자 배우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좋은 점이라면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작품 선택에 있어서 다급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영원한 나의 편이 생긴 것 같아서 혼자 있을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연기할 때도 더 여유가 생기고, 할 수 있는 캐릭터도 더 많아지고, 더 깊이 있는 연기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영민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요?
“연애할 당시에는 자신감 넘치고 멋있는 선배였는데, 결혼 뒤에는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사는, 살짝 소심한데 큰소리만 치는 인물이죠. 아내를 정말 좋아하는데 자격지심 때문에 화를 내서 싸우고 애교로 풀어주는 남자예요. 저처럼 덩친 큰 사람이 눈치보고 소심하게 연기하니까 연출님은 재밌게 봐주시더라고요”
실제 성격은 어떠세요?
“둥글둥글해요. ‘좋은 게 좋다’라는 편이에요.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싸우기도 해요. 결정할 때도 ‘네가 좋은 걸로 하자’고 하는데, 상대방은 떠넘기는 것처럼 들리나 봐요. 거절도 잘 못하니까 같이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곤할 수도 있죠. 좋게 보면 유한 거고, 안 좋게 보면 우유부단한 성격이랄까(웃음).”
성격을 여쭤본 게 그동안 참여한 작품을 보니까 이른바 ‘심각한 작품’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성격상 밝고 유쾌한 작품을 좋아하시나’ 생각해 봤습니다.
“시트콤으로 데뷔했고, <막돼먹은 영애씨>을 길게 하다 보니까 정극은 거의 못해본 것 같아요. 뮤지컬도 <쓰릴 미>나 <바람의 나라> 외에는 거의 로맨틱코미디류를 했고요. 원래 밝고 유쾌한 작품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있나 봐요. 그래서 ‘멀쩡하게 생겼는데 장난스러운 캐릭터’에 많이 불러주시더라고요.”
연기 생활 10년이면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법 한데요? 요즘 배우들이 가장 원하는 TV와 무대를 오가는 연기활동을 하고 있지만, 뭔가 확실한 캐릭터가 없는 느낌이랄까요? 배우는 어떤 배역을 맡느냐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막돼먹은 영애씨>를 너무 오래해서 비슷한 역할로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앞으로는 좀 다양한 역할을 해야죠. 정통 사극도 해보고 싶고, 영화는 조연이나 단역이라도 캐릭터가 강한 역할을 해보고 싶고요. 누군가 저는 ‘이완 맥그리거 같은 소년의 이미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청년의 느낌을 가진 중년의 캐릭터도 좋을 것 같아요(웃음).”
매체 연기에 집중할 수도 있는데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데뷔 때부터 무대와 방송을 함께 했어요. 아침 드라마와 <막돼먹은 영애씨>를 촬영하면서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를 한 적도 있거든요. 저는 공연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푸는 것 같아요. 방송도 좋아하지만, 뭔가 내 것을 다 못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장르나 배우의 힘이 중요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편집 등의 기술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잖아요. 공연장에서는 ‘내가 연기를 하고 있구나!’를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공연은 기회가 되면 계속 하고 싶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이른바 ‘꽁냥꽁냥’한 작품을 좀 더 해두고, 기회가 되면 <쓰릴 미>나 <바람의 나라>도 꼭 다시 해보고 싶고요.”
아직 신혼인데, 개인적으로 ‘꽁냥꽁냥’한 바람이 있다면요?
“아내랑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 결혼했는데, 주위에서 ‘결혼하면 지옥이다, 무덤이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아직 좋아요. 여전히 연애하는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친구 같은 부부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 부부에겐 50대에 외국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사는 꿈이 있거든요. 아직은 먼 얘기지만 진짜 그 꿈이 이뤄져서 외국에서 연인처럼 노후를 보내고 싶어요.”
기사에는 다 담아내지 못했지만 김산호 씨의 ‘꽁냥꽁냥’한 신혼 생활 얘기를 들으니까 더욱 연극 <나의사랑 나의신부>가 궁금해졌습니다. 김산호 씨의 생활연기가 돋보일 연극 <나의사랑 나의신부>는 6월 2일부터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되는데요. 극중 영민의 직업이 작사가인 만큼 여느 연극과는 달리 음악적인 부분이 자연스레 더해져 더욱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김산호 씨 외에도 이해준, 황찬성 씨가 영민 역에, 김보미, 이아영, 신윤정 씨가 미영 역에 캐스팅됐는데요. 꼭 부부가 아니더라도 연애를 해봤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커플들의 꿈과 현실의 세계를 객석에서 함께 들여다보시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